언론 공작 보고서 '7대 의혹'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1999.11.1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종찬은 문건 읽었나? 대통력에게 보고되었나? 정형근이 가진 도 다른 문건은 무엇?

'문건 작성자와 제보자가 다 드러났다. 처음 문건이 폭로될 때만 해도 사건은 한동안 미궁에 빠질 듯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문건 사건은 누구나 한마디씩 논평할 수 있을 만큼 '너무' 밝혀진 사건이 되어 버렸다.

  검찰에 출두한 이도준 기자가 이종찬 국민회의 부총재 사무실에서 문건을 복사한 것이 아니라 가지고 나와서 복사한 뒤 원본은 찢어버렸다고 진술한 것도, 하루 만에 다시 기자회견을 자청한 정현근 한나라당 의원이 이기자에게 돈을 준 때가 4~5개월 전이 아니라 지난해 11~12월이라고 번복한 것도, 이젠 사소한 정정 사항일 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작성자와 제보자만 드러났을 뿐 사건이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은 아닐까.

  문건 파문은 10월18일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정형근 의원이 '정부의 언론 장악 공작을 입증할 문건을 입수했다"고 말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정의원이 10월25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의에서 '성공적 개혁 추진을 위한 외부 환경 정비 방안'이라는 7쪽짜리 문건을 폭로하면서 1주일 가까이 파문은 숨가뿐 곡예를 계속했다. 일격을 당한 국민회의가 이틀 만에 문건 작성자가 정의원이 주장한 이강래 전 정무수석이 아니라 문일현 <중앙일보> 기자라고 밝혀 1차 번전이 일어났다.

  그러나 당일 오후 정의원이 문건 수령인이 이종찬 국민회의 부총재라고 밝히자 사태는 다시 역전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형근 의원이 판정승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겨우 하루 뒤 다시 이도준 평화방송 기자가 제보자로 드러나고, 정의원과 이기자 사이에 금전이 오간 사실이 연이어 밝혀지자 이번에는 정의원이 궁지에 몰렸다.

  양측의 폭로전은 왜곡과 과장과 거짓이 범벅된 추악한 모습으로 점철되었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이전추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혹은 풀리지 않는다. 그만큼 실제적 진실의 벽은 두텁다. 다음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다.

<의혹 1> '이종찬-이강래팀'은 존재하는가?
  '문건'에 국내 언론과 정치 상황이 자세히 기술되고 대처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는 점에서 문기자 혼자 작성했다는 주장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자료 도움을 주었든, 협의를 했든, 어떤 식으로든 문기자 외의 다른 실체가 문건 작성에 개입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다. 그 의혹은 이른바 '이종찬-이강래팀' 존재에 대한 의혹으로 이어진다.

  과연 이종찬-이강래팀은 존재하는가. 이종찬 부총재와 이강래 전 정무수석은 97년 말 대선기획단 시절 호흡을 맞춘 이래 지금껏 긴밀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청와대를 물러난 이수석이 여의도에 사무실을 냈고, 최근까지 이부총재와 자주 만나왔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이강래씨는 총선 준비를 위해 개인 사무실을 열었을 뿐이라고 밝혔지만 의혹의 여지는 여전하다.

  대선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와 행동을 같이해 온 한 측근은 이씨가 이번 언론 대책 문건은 아니지만 과거 몇 가지 문건 작성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그는 "우리가 문건을 만든다면 이수석이 대통령께 직보하지 왜 이부총재에게 보내겠느냐"라고도 했다. 즉 이종찬-이강래팀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강래 전 수석이 이끄는 '팀'은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참모형 정치인인 그가 현직을 떠난 마당에 대통령을 통해 문건 작업을 해왔을 개연성도 있다.

<의혹 2> 이종찬은 문건을 읽지 않았나?
  이부총재는 문기자에게 문건 작성을 요청한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문기자와 이부총재가 사전에 '총선 걱정'을 했다는 점을 들어 이부총재가 문건을 요청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부총재는 일관되게 받아 보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신까지 포함된 문건을 비서진이 전달하지 않았다는 점은 납득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체적이 지적이다. 또한 이부총재는 7월중 잠시 귀국한 문기자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이 자리에서 문건 얘기가 오갔을 것이며, 따라서 문건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점은 여권 일각에서까지 지적되고 있다.

<의혹 3> 대통령에게 ㅂ고되고 실행되었나?
  문건이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실행되었다는 한나라당 주장에 대해 이부총재측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하지만 보광그룹 세무조사 및 <중앙일보> 홍석현 전 사장 구속 과정 등 최근 일련의 상황 전개가 문건에서 거론된 대책과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설명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문건 작성 시점인 6월 말. 여권은 언론을 개혁해야할 필요성을 절감할 정도로 언론과 심각한 불화를 겪고 있었다. 국정원 내에 정치단과 언로단을 신설한 것과 관련해 언론으로부터 비판받고 있었고, 손 숙 전 환경부장관 사퇴 파문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2기 내각이 출범 한 달도 안되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야당 시절부터 언론으로부터 부당한 대접을 받아왔다고 느끼는 여권으로서는 소수 정권의 피해 의식과 언론에 대한 섭섭함이 누적되었을 시점이기도 했다. 이런 시기적 배경을 감안할 때 여권 일각에서 언론 대책을 논의하고 실제로 준비했을 개연성이 충분이 존재한다.

<의혹 4> 정형근ㆍ이도준, 누가 거짓말하나?
  정의원은 문건 작성자가 <중앙일보> 문일현 기자로 드러났지만 여전히 "제보자인 평화방송 이도준 기자에게 분명히 들었다"라며 이종찬-이강래팀 제작설과 대통령 보고설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기자는 "문건 작성자가 이강래씨일지도 모른다는 개연성을 말했을 뿐이며 대통령에게 보고됐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자신은 문건 작성자로 이강래씨를 지목해 말하지 않고 국가정보원이나 청와대 작품인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의원은 "여권의 공작과 압력 때문에 이차장이 말을 바꾸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의혹 5> 정형근이 입수한 문건은 7쪽인가, 10쪽인가?
  이도준 기자는 9월 초 정의원에게 7쪽짜리 문건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의원은 이기자의 발언이 잇기 전까지는 10쪽짜리 문건을 입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의원이 사신이 포함된 10쪽짜리 문건을 입수했다면 작성자가 문일현 기자임을 알면서도 정치 공세 차원에서 이강래 전 수석을 거론했다는 혐의를 벗을 수 없다. 과연 정의원이 입수한 문건은 몇 쪽짜리인가. 혹시 이도준 기자로부터 7쪽짜리 문건을 입수하기 전 이미 10쪽짜리 완전한 문건을 확보했던 것은 아닐가.

  이에 관련해 국가정보원 안팎의 반(反)이종찬 세력이 정의원에게 10쪽짜리 완전한 문건을 전달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건은 이부총재 사무실에 팩스를 통해 전송되었고, 전 국정원장인 이부총재 사무실의 모든 통신 시설이 감청된다는 점에서 볼 때, 국정원도 팩스가 전달된 날 똑같은 내용의 문건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추론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에서 밖으로 문서를 가지고 나오기는 거의 함들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추론을 뒷받침했다. 이부총재는 국정원장 시절 천여 명에 이르는 직원을 정리했고,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반대 세력을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의혹 6> 정형근이 주장하는 나머지 문건은 누구에게서 나왔나?
  정의원은 이기자로부터 언론 문건 외에도 10여 건의 문건을 더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 문건 외에도 이기자로부터 받은 많은 문건을 가지고 있다. 여권이 계속 거짓말을 한다면 국정원이 서울 송파 및 인천 계양ㆍ강화 갑 선거에 개입한 서류와 언론 장악 문건을 믿을 수밖에 없는 입증 자료 등 나머지 문건 10여 개도 제시하겠다"라고 했다. 그는 국정원 문건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기자는 언론 문건만을 정의원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한다. 정의원이 나머지 문건을 어디서 입수했는지, 혹시 국정원 안팎의 반이종찬 세력으로부터 받은 것은 아닌지 궁금한 대목이다.

<의혹 7> 정형근과 이도준은 어떤 관계인가?
  검찰 조사 결과 천만원 수수 외에도 정의원이 이기자에게 2천만원을 간접 지원한 사실이 더 밝혀짐으로써 두 사람이 그 동안 어떤 관계였는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정의원은 이기자를 검찰에 재직할 때부터 알았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최소한 85년 이전부터 관계를 맺어왔고, 각종 문건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돈도 주고받는 '특수한'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정의원이 10월31일 공개한 이기자의 서신에 따르면 '저도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언제나 옆에서 모시겠다'라는 표현이 들어 있어 단순한 기자-취재원 관계보다는 일종의 '동지적 관계'가 아니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의문이 산적해 있다. 정형근 의원은 거꾸로 이도준 기자가 이종찬 부총재의 팀원이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이도준 기자는 정의원과 마찬가지로 이부총재와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보인다. 이부총재 보좌관인 최상주씨는 문일현 기자는 물론 이도준 기자도 이부총재와 긴밀한 사이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기자가 이부총재와 어떤 사이였는지, 혹시 이부총재로부터도 금품을 받는 사이는 아니었는지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또한 이회창 총재가 미리부터 전모를 알고 있었을 개연성도 있다. 이총재는 이번 사건 내내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10월28일 이도준 기자가 찾아 왔을 때 처음으로 이기자가 제보자였음을 알았다고 했다. 더구나 이기자는 이총제에게 정의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도 알렸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총재와 이기자가 면담한 시간은 겨우 10분이었고, 그날 오후 한나라당은 이총재 주재로 의원총회를 열고 국회 농성에 돌입하는 등 강경 투쟁을 선언했다. 이는 이총재가 모든 정황을 파악하고도 정략 차원에서 정치 공세를 폈다고 의심받는 대목이다.
安哲興 기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