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다 괜찮아?
  • 고종석(소설가 · 에세이스트) ()
  • 승인 1999.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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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평

나는 한국의 지식인 사회가 (국학 분야의 연구자들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민족주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한 사회의 지식인 다수가 특별히 민족주의적일 때, 그 사회는 닫혀 있는 사회가 되기 십상이고, 그 사회의 발거음은 퇴영적이 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지식인 사회의 비민족주의에는 한 가지 기괴한 모습이 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친프랑스주의다.

  물론 지식인 사회를 포함해서 한국 사회는 압도적으로 미국의 영향 아래 있다. 그것은 ???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나라가 그렇다. 한국 지식인 사회의 특징은 그런 미국의 문화 패권주의에 대한 항체로 프랑스 패권주의를 수입해 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기괴한 이유의 첫째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별다른 문화적 친밀감을 느낄이유가 없다(조선 후기에 카톨릭이 전래될 때 프랑스 신부들이 맡았던 역할?)는 데 있다. 둘째는, 프랑스 패권주의가 미국 패권주의에 견주어 그 규모는 작지만 더 윤리적이지도 아름다지도 않다는 데 있다.

  우리 지식인 사회에서 자시을‘특별한’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으레 미국을 비판한다. 거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그들은 그 미국의 자리에 유럽을 들여놓는다. 그리고 그럴 때의 유럽은 다른 나라가 아니라 거의 예외 없이 프랑스다. 그것이 대학의 불어불문과 주변 풍경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자신이‘인문주의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프랑스 애호를 소리 높이 외치는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프랑스를보라, 그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글쓰기 교육을 철저히 시킨다. 그랑스를 보라, 그들은 중학교 때 몰리에르와 라신을 읽는다. 프랑스를 보라, 바칼로레아의 철학 시험 문제는 우리의 대학 교수도 풀기 어렵다. 프랑스를 보라, 거기서는 택시 운전사도 플라톤을 안다. 프랑스를 보라, 현대 철학의 뛰어난 창시자들은 다 그놈들이다. 프랑스를 보라, 거기서는 작가들이 얼마나 대접 받는데. 프랑스를 보라, 거기서는 대통령이 빼어난 문필가다. 프랑스를 보라, 거기는 아직도 공산당이 팔팔하다. 프랑스를 보라, 거기서는 똘똘한 놈들은 다 좌익이다. 프랑스를 보라, 자기 언어와 문화에 대한 사랑이 그 놈들 정도는 되어야지. 프랑스를 보라, 영어로 말을 걸면 사람들이 대꾸도 안 한다. 프랑스를 보라, 공문서에 영어를 스면 벌금 낸다. 프랑스를 보라, 미국놈들도 거기 가면 바보 된다. 프랑스를 보라, 스크린 쿼터 잘 지켜내잖아. 프랑스를 보라, 해방 뒤에 부역자들 사그리 숙청했잖아. 프랑스를 보라, 거기서는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가 뽀뽀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아, 인종 차별이 없다고. 프랑스를 보라, 그러니까 다인종 팀으로 월드컵 우승도 하잖아. 프랑스를 보라, 거기서는 먹고 마시는 것도 예술을 실천하는 거야.

고상한 친프랑스주의자들의 세 가지 특징
  프랑스가 만만한 나라는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유럽사의 중심에 있던 나라이고, 지금도 우리보다 여러 점에서 앞선 사회이므로, 우리가 배울 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지식인 사회 일각의 프랑스 애호는 좀 지나친 것 같다. 이 지나침은 우리의‘특별한’지식인들이 천박한 친미주의를 고상한 친프랑스주의로 대치하려는 강박 관념을 지니고 있다는 데서 나온 듯하다. 이런 고상한 친프랑스주의자들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그들은 미국에 대해서 이상할 정도로 지나치게 경멸과 증오를 드러낸다. 미국의 모든 대외 정책은 제국주의이고, 미국의 모든 대내 정책은 와스프 제일주의다. 아무튼 미국은 음모의 국가다. 그래서, 미국인이기는 하지만 촘스키는 예쁘게 봐 준다.

  둘째, 그들은 프랑스 사회를 이상화한다. 프랑스의 장점은 과장되고 프랑스의 단점은 묵인한다. 프랑스인들은 다 철학자이고 다 예술가다. 프랑스의 과거를 채우고 있는 식민주의 · 제국주의, 프랑스의 현재를 채우고 있는 인종주의 · 국가 이기주의 같은 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과거에 알제리나 베트남에서 프랑스인들이 벌인 짓은 다 잊힌다.

  셋쩨, 이상하게도,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프랑스어를 아예 모르거나 거의 모른다. 프랑스어로 편지나 한 통 미끈하게 쓸 수 있을까 싶은데, 프랑스에 대해서는 할 말들이 많다. 그들은 프랑스에 대한 그런‘정보’를 어디서 얻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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