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교수의 통일론은 문학가의 감상이다. 북한 개혁·개방 못한다”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6.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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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재단 이사장 안병직 명예교수 인터뷰

 
지난해 말, 안병직 교수의 일본 후쿠이(福井) 대학 연구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안교수는 2001년 서울대에서 정년퇴직한 후 이 대학 초빙교수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후임으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된 이가 이영훈 교수다. 전화를 건 이는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였다. 그가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하는 데 영향을 끼친 책 중 한 권이 안교수의 <중진자본주의론>이었다. 그는 “이제 선생님이 뉴라이트의 사상적 리더를 맡아달라”라고 부탁했다. 안교수도 국내 뉴라이트 단체들의 움직임에 대해 듣고 있던 차였다.

수개월이 지난 4월26일. 안병직 교수는 뉴라이트재단 발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안교수는 이날 뉴라이트 운동의 목표를 ‘민족주의적 자주 노선에 대항하는 글로벌리즘’으로 천명했다. 기관지 <시대정신>을 통해 좌파와 사상전을 벌이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기자회견장에는 신지호씨와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왕년의 운동권 논객 김영환씨 등이 배석했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난 5월3일, 과천 자택으로 찾아가 안교수를 만났다.

-한 신문에서 안교수를 다룬 칼럼 제목을 ‘투사로 변신한 원로학자’라고 달았던데.
=투사라, 틀린 말도 아니지. 일본에 있으면서 한국의 사상적 혼란을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역사 흐름에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올해 6월로 만 일흔이 된다. 연구는 제자들이 잘 맡고 있으니까, 난 이제 투사를 해도 된다. 

-목표가 뭔가.  
=국제 관계를 빼면 한국 근현대사를 설명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자주와 자생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국제 관계 속에서, 대외 협력을 통해 성장했다. 그런데 지금 집권 민주화 세력은 그걸 자주 노선의 결핍이니, 대외 종속이니 하며 매도한다. 자주·자립·자위를 주장했던 북한이 지금 어떻게 되었나. 환상을 빨리 깨야 한다. 국제주의적 시각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재해석하고, 역사의 흐름을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

-노무현 정부를 ‘건달 정부’라는 표현까지 써서 비판했는데.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가 후퇴했다고 하던데, 나는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참여정부 들어 민주화는 뚜렷해졌지. 정치자금법 손대서 정치적 부정부패도 없어졌고, 검찰 수사가 자율화되어 이재용(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장남)이나 현대차그룹도 수사가 가능해졌지 않나. 다만 정부의 방향이 틀리다 보니 정치적 실행이 되는 게 없다. 말도 함부로 하고. 통치자의 말은 신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그런 걸 지적한 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것은 글로벌리즘 시각에서 볼 때 잘하는 것 아닌가?
=정부나 열린우리당을 보면 좌·우가 섞여 있다. ‘더블 스탠딩’이다. 방향이 서로 다르다보니, 동서남북으로 찢어져서 아무런 실행이 안 된다. 전형적인 사례가 한·미 FTA다. 자기들끼리 씨름하면서 힘을 다 써버린다. 그러니 건달 정부 소리를 듣는 것 아닌가.

-독도 문제에 관한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 담화 이후 안교수는 “자살골을 넣었다”고 비판했다. 어떤 근거로 말한 것인가.
=우리에게 대미·대일 협력은 중요하다. 아무런 해결 기미가 없는 독도 문제나 야스쿠니 문제를 자꾸 이야기해서 뭐하나. 또 독도 문제만 놓고 보면, 분쟁거리로 만들수록 일본은 어깨춤을 춘다. 신용하(한양대 석좌교수)가 내 친구다. 그 친구에게 오래 전부터 “너 매국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국제분쟁지역으로 만들어서 이길 자신 있으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봐” 했더니 그 친구가 “가면 안 돼. 우리가 자료가 좀 약하지” 그래. 일본이 우리보다 더 많은 역사 기록을 챙겨놓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신용하도 안다. 그런데도 왜 그 친구가 그러냐. 민족주의가 상품이 되거든. 그 친구한테 “임마, 상품 되는 거하고 애국하는 거하고 다르다”라고 했는데, 현 집권 세력한테도 똑같이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창작과비평>과 사상전을 벌이겠다고 했다. 그런데 백낙청 교수도 과도한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국제주의적 관점을 이야기한다.
=나는 한국의 발전이 국제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반면 백낙청씨는 국제 관계가 한반도에 끼친 부정적인 측면을 중시하고, 이를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는 기본적으로 종속이론가다. 또 통일이 되어야 자주 국민국가가 생겨나는 것이며, 반쪽 대한민국은 불안정하다고 본다. 나는 그렇게 안 본다.

-통일에 반대하는가. 
=한국 현대사의 기본 과제는 선진화와 통일이다. 하지만 통일이 안 되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가 김정일 정권의 존재이고, 둘째가 이질화가 너무 많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통일하면 혼란밖에 안 일어난다. 통일에 우선해서 북한 주민들이 인권과 재산권을 확보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경제 지원과 원조가 필요하다. 퍼주기란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문제는 많이 주는 게 아니라 무원칙하게 주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을 도와주어도 된다. 단, 상호주의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이와 별개로 대대적인 식량 원조가 필요하다. 이 또한 북한 주민들에게 분배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백낙청 교수가 최근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에서 통일을 새롭게 정의했다. 남북관계가 꾸준히 진전되는 것 자체가 통일 과정이며, 따라서 현재 한반도 통일은 ‘어물어물’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한다면 그의 말이 맞을 수 있지만, 개혁·개방을 안 하면 말짱 헛소리다. 문학가의 감상이다. 내 보기에 김정일 정권은 붕괴가 두려워 개혁·개방을 못한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붕괴가 두려워 끌려다니고. 하지만 붕괴 여파가 남한까지 미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6자회담 하잖나. 독립적인 정치 경제 단위를 보장하고, 비무장시키고, 국제적으로 어느 누구도 배타적으로 지배하지 못하도록 6자가 보증하면 된다. 얼마든지 국제적인 공동 관리를 할 수 있다. 통일 문제는 이렇게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백낙청 교수가 <창작과비평>의 새로운 노선으로 ‘변혁적 중도주의’를 제시했다.
=내 보기에는 ‘중도반단(中途半斷)’이다. 한 방향을 정해 길을 가다가 중도에 막혀버린 것이다. 보수를 하든지 변혁을 하든지 하는 것이지, 사상은 ‘레토릭’(수사학)으로 하는 게 아니다. 뉴라이트 구성원 중에도 ‘공동체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친구가 있다. 노대통령도 ‘좌파적 자유주의’를 말했지. 다 엉터리다. 자유주의자라도 분배 정책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평등한 경쟁’ 식의 엉터리 조어를 만들어 현혹시키면 안 된다.

-뉴라이트 운동을 보는 기존 우익 단체의 눈길이 곱지 않다. 이른바 ‘올드 라이트’와 뉴라이트의 차이가 뭔가?
=한국의 올드 라이트는 부정부패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 또 올드 라이트는 반공주의자들로 사상의 폭이 좁다. 기업과 시장 중심의 경제 정책을 써야 한다는 점에서 부자의 이해와 일치하지만, 라이트는 본래 부르주아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다. 특히 부정부패와는 단호히 싸워야 한다. 또 사상의 폭이 넓어야 한다. 법질서를 지키는 한 공산당을 포함한 모든 사상운동이 허용되어야 한다. 단, 폭력으로 헌법질서를 붕괴시키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대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보안법 개정은 찬성하지만, 철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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