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표’ 신발·모자 만들어라
  • 성기영 기자 ()
  • 승인 1998.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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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스포츠 마케팅, 브랜드화 서둘러 부가 가치 극대화해야…타이거 우즈가 타산지석

 박세리가 미국 맥도널드 여자 프로 골프(L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바로 다음날 조간 신문을 받아 든 사람들은 1면에서 2명의 박세리를 만났다. 거의 모든 신문이 박세리의 사진을 1면에 올린데다. 박세리와 96년부터 계약을 맺고 후원해 온 삼성이 때를 놓칠세라 모든 신문 1면에 기업 이미지 광고를 낸 것이다.

 스포츠계는 초보 수준인 국내 스포츠 마케팅 업계의 선두 주잔인 삼성의 안목과 투자가 없었더라면 이번 쾌거가 불가능했으리라고 판단한다. 삼성은 박세리가 프로에 입문한 지 얼마 뒤인 96년 말 박세리와 후원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 8억원, 연평균 지원금 1억원, 물론 그의 스스인 레드베터와 전속 캐디인 제프 케이블에 대한 지원은 별도이고, 우승 지원금·체류비 역시 따로 지급했다. 뿐만 아니라 삼성은 박세리의 LPGA 우승을 계기로, 개인 매니저 체제를 벗어나 삼성물산 미주 법인이 박세리를 종합 관리한다는 게획을 세웠다.

 그러나 22세인 골프 신동 타이거 우즈가 ‘타이거 우즈재단’을 만들어 사업일체를 전담시키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다. 타이거 우즈는 이 재단의 회장이고, 아직 걸음마도 떼기 전에 진공 청소기 파이프를 골프체인 줄 알고 휘둘러대는 우즈를 두 살 때부터 훈련해 온 아버지가 이 재단의 실무 책임자이다. 삼성이 박세리를 통해 노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타이거 우즈식 선수관리일 것이다.

 돈에 관한 것을 빼놓더라도 타이거 우즈와 박세리는 흥미를 끌 만한 공통점을 수두룩하게 갖고 있다. 우선 백인의 스포츠인 골프계에서 이방인 격인 흑인과 동야인으로서 메이저 대회를 석권했다. 우즈와 박세리 모두 엄한 아버지의 조기 교육이 없었더라면 성공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3라운드를 끝낸 박세리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한국에서 건 전화를 거부한 것도 그의 대담성을 보여주는 화젯거리였다. 타이거 우즈도 클린턴 대통령의 백악관 초청을 거절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삼성 “1억5천만달러 경제적 가치 얻었다” 자평
 그렇다면 정작 삼성은 박세리가 우승함으로써 얼마만한 경제적 이득을 챙겼을까.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스포츠 마케팅이 금방 돈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계속 투자냐, 투자 중단이냐’를 결정하려면 관건은 역시 돈이 되는 사업인지 여부에 달렸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골프대회중계를 지켜본 세계인들은 박세리가 움직일 때마다, 가로12㎝×세로 4㎝인 삼성 로고를 보고 싶지 않아도 보아야 했다. 이 로고는 박세리가 필드를 걸어갈 때나 스윙하거나 홀컵 안에서 공을 끄집어 내기 위해 허리를 굽힐 때, 동작 별로 텔레비전 카메라의 시선을 잡을 수 있도록 일곱 군데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걸어다니는 삼성의 광고판이었던 샘이다.

 이 일곱 가지 로고를 이용해 삼성은 모두 1억5천만달러 정도의 경제적 가치를 챙겼다고 분석했다. 홍보 효과를 노린 약간의 부풀리기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계산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먼저 이번 대회를 중계한 CBS의 중계 시간을 4시간으로 보고, 4라운드 중계 시간인 총 16시간 중 1시간만 삼성 로고가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비쳤다고 하자. CBS의 30초당 광고 단가는 약 40만달러. 이번 경기 중계로 삼성은 약 4천8백만달러어치의 광고 효과를 거두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밖에도 CNN과 ABC·NBC 등 방송 매체를 통한 보도와 신문 기사·뉴스·인터넷 등을 통한 홍보 효과까지 감안하면 줄잡아 1억5천만달러어치 효과를 보았다는 것이 삼성의 계산이다. 기업인지도를 1% 높이는데 약 2천5백만달러가 든다는 점을 감안해, 삼성은 이번 우승으로 1억5천만달러에 상응하는, 약 6%의 인지도 상승 효과를 보았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세계적 스포츠 용품 업체인 나이키가 ‘골프 신동’ 타이거 우즈를 앞세워 펼치는 마케팅 전략은 삼성보다 두세 걸음 앞서 있다. 타이거 우즈는 나이키로부터 자사의 의류와 스포츠 용품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4천만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키, 선수 상품화해 시장 확대 꾀해
 타이거 우즈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그 자신이 하나의 상품이라는 데서 나온다. 타이거 우즈가 사용하는 모든 골프 웨어와 모자·장갑에는 나이키 상표와 함께 또 하나의 심벌 마크가 따라붙는다. 흑인 아버지를 상징하는 검은색과 태국인 어머니를 상징하는 붉은색의 조화를 나타내는 이 심벌 마크를 나이키는 동서양의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우즈를 그 상징 인물로 내세운다(위 오른쪽 사진 참조).

 타이거 우즈가 나이키의 스포츠 마케팅 전략에서 최고 히트 상품으로 꼽혔던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을 앞질렀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나이키는 두 선수의 인기를 막바로 브랜드 이미지로 연결하는 치밀한 마케팅 전략을 폈다. 등 번호를 따 ‘점프맨 23’이라는 별칭을 가진 마이클 조던이 가는 곳에는 늘 나이키 상표와 함께 한 손으로 레이업 슛을 하는 모습을 딴 그의 심벌이 따라붙는다.

 나이키가 이렇게 선수 개인을 상품화하는 전략을 통해 노리는 효과는 물론 단기적인 것은 아니다. 골프나 농구 애호가를 늘려서 시장 전체를 키우겠다는 장기적인 구상이 담겨 있다. 나이키 코리아의 홍보 관계자는 “나이키가 국내 스포츠 마케팅 업체들과 다른 점은, 눈앞의 경제적 이익이나 효과에 급급하지 않고 시장 전체를 늘린다는 전략이다”라고 설명한다.

 물론 삼성도 이건희 회장이 국제울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상 스포츠에 대한 철학이 남다르다. 삼성은 자신들이 후원하는 골프·야구·럭비를 자신들의 경영 철학과 연결하는데도 기민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골픈ㄴ 심판이 없는 유일한 경기라는 점에서 ‘자율’을, 야구는 포수의 ‘희생 정신’을, 럭비는 악천후에도 관계없이 경기에 임하는 ‘투지’를 상징하는 스포츠인데, 이것이 삼성의 신경영 정신과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박세리 열풍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삼성은 박세리 후원 사업 일체를 한 단계 격상한다는 방침이다.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쫓아 다니는 캐디 제프케이블도 연봉 6만달러 수준의 전속 캐디로 바꾼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공짜로 옷 입혀 주고 엄청난 돈까지 대주는, 이해하지 못할 스포츠 마케팅 기법은 이미 선수 이름을 그대로 상표로 사용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나이키가 올 여름 시장에 내놓을 골프화의 상표는 헤이우드(HEYWOOD)이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우드야!’가 되는 셈이다. 이 신발의 겉모양은 우즈가 가장 즐겨 타는 일본차 렉서스의 곡선을 그대로 흉내냈다. 이를 따르자면 한국에서도 ‘세리’나 ‘찬호’라는 상표를 가진 스포츠 용품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골프 선수 아널드 파머의 인기를 활용해 같은 이름의 골프웨어가 생겨난 것도 이런 마케팅 전략이 적용된 것이다.

 나이키가 LA다저스의 박찬호 선수를 후원하면서 맺은 계약 내용에는, 승수 뿐만 아니라 삼진 아웃 숫자에 따라 지원 금액이 달라지는 인센티브 조항까지 있다. 그야말로 인기 선수의 일거수 일투족은 이미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진 부품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그가 얼마나 많은 경제적 부가가치를 내는가이다.
成耆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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