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큰소리치는 ‘메이드 인 코리아’
  • 이철현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8.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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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초코파이 · 롯데 껌 · 농심 라면, 초인류 브랜드로 우뚝

코카콜라 · 맥도널드 · 네슬레 · 리글리…. 품질 경쟁력이 강하고 시장 점유율 또한 높은 세계 초일류 브랜드들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많은 업종에 발을 뻗치고 있지만, 해외 시장에서 최고의 상품으로 손꼽히는 초인류 국산 브랜드를 생산하는 곳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국내 가격보다 해외 가격이 훨씬 비싼데도 불티나게 팔리는 ‘작은 거인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동양제과의 오리온 초코파이, 롯데제과의 롯데 껌, 농심 라면이 대표적인 예다. 이 식품 브랜드들은 러시아나 중국처럼 성장 잠재력이 큰 신흥 시장에서 높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며 코카콜라 못지않은 지명도를 누리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초코파이 유사품까지 등장
가장 두각을 보이는 브랜드는 동양제과의 오리온 초코파이. 동양제과 주병식 해외사업본부장의 말에 따르면, 코리아는 몰라도 초코파이는 알 정도로 러시아에서 특히 인지도가 높다. 오리온 초코파이가 인기를 끌자 현지 업체나 터키 업자가 만든 유사품까지 등장했지만 오리온 초코파이의 장벽에 막혀 시장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잠재 구매력을 가진 중국에서도 초코파이의 명성은 대단하다. 대형 백화점은 물론 구멍가게에도 초코파이가 진열되어 있을 정도다.

지난해 초코파이 수출액은 3백8억 원이 넘는다. 오해는 6백억 원 가량 예상된다. 93년 4억~5억 원이던 것이 5년 만에 백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68쪽 표 참조). 초코파이는 동양제과 고유의 아이디어 상품이다. 세계 제과업계에서 이만큼 인기 있는 동종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동양제과가 초코파이를 앞세워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선 때는 94년. 당시 소련과 수교한 이후 국내에 물밀 듯 들어온 러시아 보따리 장수들이 초코파이에 맛을 들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러시아에 대한 초코파이 수출은 해마다 100% 이상 신장을 거듭해, 러시아에서 현재 약 85%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95년에는 1백20억 원어치를 수출해 천만 달러 수출 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96년 수출액은 2백45억 원이 넘어 전년 대비 129%가 넘는 성장률을 보였다.

동양제과는 70년대부터 해외 사업을 시작했지만 93년 7월까지는 5개 들이 껌 중심으로 중동 시장에 수출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때는 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OEM)이 주류를 이루었고, 초코파이를 비롯한 자체 브랜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매출의 90%가 5개 들이 껌이고, 나머지 10%에 이런저런 제품이 포함되었다. 이 10% 가운데 컨테이너 10개 정도가 초코파이였는데 한달 수출 규모는 10만 달러에 불과했다. 주로 주문이 오면 생산하는 수준이었다.

동양제과는 93년 8월부터 세일즈에서 마케팅으로 수출 전략을 바꾸었다. 주문 생산에서 탈피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세계 시장을 뚫었다.

동양제과가 러시아와 함께 주력 시장으로 꼽은 곳은 중국이었다. 동양제과는 중국에서 초코파이의 포장과 맛에 대한 소비자 반응과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시장 소자에 나섰다. 93년 11월부터 94년 12월까지는 전략 상품으로 껌을 내세웠고, 그 후부터 초코파이를 전진 배치했다.

동양제과는 러시아와 중국을 전략 시장으로 선장한 후 곧바로 그 지역에 맞는 전문가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아무리 잘 해도 러시아나 중국에 가서 영어를 쓰면 감정 전이가 되지 않기 때문에 현지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전문가각 필요했다. 그래서 러시아어 · 중국어를 전공한 지역 전문가를 선발해, 이들을 제품 매니저로 키웠다.

제3국을 거쳐 수출하던 것을 직접 수출 방식으로 바꾼 것도 해외 시장 공략에 주효했다. 수출은 유통 다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단계를 줄이지 않으면 소비자 가격이 높아진다. 따라서 가능하면 직접 판매 방식으로 수출해야 채산성이 있다.

동양제과는 상하이 · 베이징 · 광저우로 직접 수출하고 싶었지만 당시 중국 딜러를 미고 외상을 줄 수 없어 홍콩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홍콩의 중간 거래상이 챙기는 커미션이 제품가의 50%나 되었다. 당시 홍콩 근처에 있는 산또에 수입 제품들이 집결되었다. 중국이 수입한 제품은 산또에서 광저우를 거쳐 대륙으로 들어갔다. 동양제과는 홍콩을 통하는 수출 경로를 개선해 94년 7월부터 97년 2월까지 제품을 산또로 직접 공급했다. 중국인과 처음으로 신용 거래를 시작한 것이다. 유통 구조를 개선하자 현지에서 한 상자에 5천 3백 원 하던 것을 2천원 정동 팔 수 있게 되어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다.

신규 시장을 개척한ㄴ 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수출량이 늘어나자 이번에는 유통 기한이 걸림돌이 되었다. 제품의 질과 포장을 어떻게 하면 처음 상태대로 보존하는가가 문제였다. 초코파이는 수분을 12% 가량 함유하고 있는데, 이 수분이 제품을 맛있게 한다. 수분이 있다는 것은 곰팡이가 번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주병식 본부장은, 초코파이에는 방부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서 생산과 기술 분문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동양제과 기술팀은 연구 끝에 유통 기한을 1년으로 늘리는데 성공했다.

처음 수출할 때 초코파이는 이름 · 가격 · 칼라가 제각각이었다. 일본에서는 오리온 초코파이, 대만에는 초코렛파이라는 상표로 수출되었고 포장 색깔도 천차만별이었다. 상표나 디자인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표명과 포장을 통일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각 국가에 초코파이라는 이름으로 상표를 등록하려고 보니, 중국에서는 이미 롯데가 초코파이라는 이름을 먼저 등록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대책을 숙의한 끝에 중국에서는 오리온파이, 나머지 국가들에서는 초코파이로 상표 등록을 했다.

첫 진출지도 상하이가 아니라 베이징을 택했다. 중국에서는 상하이가 모든 경제 활동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미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이 진출해 있다. 하지만 동양제과는 식품사들의 치열한 각축장이 된 상하이에서 용의 꼬리가 되느니 새로운 곳에서 닭대가리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베이징이었다.

동양제과는 베이징에 생산 거점ㄷ 마련했다. 지난해 5월 중국 베이징 근처 람팡경제기술개발구에 공장을 준공했다.

동양제과는 현재 또 다른 전략 상품을 키워내려 한다. 주병식 본부장은 “초코파이 하나를 주력 상품으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동양제과 해외사업본부 직원들은, 2002년이면 아시아 권역 내 모든 관세가 5% 이하로 떨어지리라 예상한다. 따라서 국내 경쟁에서 검증된 상품들을 이 지역에 수출할 계획이다. 이에 못지않게 시장을 다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인도 시장을 개척하고 있으며 중남미 시장도 넘보고 있다.

동양제과의 초코파이 못지않게 세계 시장에서 초일류 브랜드로 꼽히는 국산 브랜드가 롯데 껌이다. 롯데제과는 올해 1억 달러 수출을 목표를 하고 있다. 주력은 껌이다. 롯데제과는 약 80개국에 과자를 수출하고 있다. 이 가운데 60%가 중국에 수출되고 있다. 이 물량의 70%가 껌이다. 제품으로는 커피 껌인 카페커피 껌과 불록 껌인 스파우트 · 렛츠고가 최고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롯데 껌, 중국에서 선풍적 인기
지난해 롯데제과는 중국에만 약 6천만 달러 어치의 물량을 수출했는데 이 가운데 4천만 달러 가량이 껌이다. 이 정도 양은 지난 한 해 동안 12억 중국 인구의 50%가 롯데 껌을 한 통씩 씹었다는 얘기이다. 롯데제과가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에 수출을 시작한 93년부터 96년까지 4년간의 껌 수출 실적을 누계하면 1억 달러가 넘는다.

롯데제과가 중국에 발 빠르게 뿌리 내리는 데는 마케팅 전략이 크게 기여했다. 중국과 국교가 정상화하기 전인 89년부터 롯데제과는 홍콩을 통해 수출해 오다가 92년 12월 지사를 설치하면서 본격적이 마케팅과 수출을 시작했다. 베이징을 시작으로 텐진 · 상하이 · 산터우 같은 대도시에 대형 광고판을 설치했다. 현지 도매상들은 롯데배 경마 · 조정 대회 같은 판촉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92년부터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텔레비전 광고를 내보내 브랜드의 친숙도를 높이는 데 노력했다. 국내업체로는 처음이었다. 또 롯데제과는 한 해에 두 번씩 중국에서 열리는 갖가지 식품 전시회에 참가하고 단독으로 제품 발표회를 가졌다. 이 전시회 방문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90% 이상이 롯데 브랜드를 알고 있었고, 70% 이상이 롯데 껌을 산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페커피 껌 광고는 중국 정부가 금연 운동을 위한 공식 광고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롯데 껌은 세계 제1위의 껌 판매를 자랑하는 리글리 사를 중국 시장에서 제쳤다. 중국에서 대성공을 거둔 롯데제과는 신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베트남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와 중남미에 시장 개척 사원을 내보내고 있다.

농심 라면은 마니아가 생길 정도로 세계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미국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월간 <디투어> 2월호의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난을 보면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3인조 록 밴드 멤버가 하나같이 낯익은 음식을 들고 있다. 사진 설명에서는 라면의 일본식 표기인 라멘(ramen)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용기에는 ‘김치 라면’이라는 한글이 선명하다.

‘점잖은 쥐(Modest Mouse)'라는 점잖치 못한 이름의 이 록 밴드가 라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싸면서도 바쁠 때 간단히 먹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잡지에 실린 이들의 라면 예찬론을 들어보자. “우리는 모두 라면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보트 안에서 함께 라면을 먹었다. 염소와도 함께 먹었다. 빗속에서도, 클럽에서도 라면을 먹었다. 화장실을 나와서도 바로 라면을 먹었다.”

농심이 처음 라면을 수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1년.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포들을 겨냥해서였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지금 라면은 전 세계인이 즐겨 찾는 음식이 되고 있다. 물론 라면의 종주국은일본이다. 58년 중국에서 귀화한 한 일본인이 개발해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 라면은 일본의 ‘라멘’과 다른 맵고 얼큰한 맛으로 일본 라면 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해외에서 교포가 아닌 새로운 라면 소비자들이 생긴 것은 83년께. 라면 해외 개척의 선두 주자인 농심이 개발한 히트 상품인 ‘너구리’ ‘辛라면’ ‘육개장’ 등을 미국에 팔면서부터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많이 거주하면서 입맛이 우리와 비슷했던 히스패닉 계에 파고든 것이 주효했다. 이 가운데서도 신라면은 86년 10월 발매된 이래 지금까지 누적 매출액이 약 1조3천억 원에 이를 정도로 최대 히트 상품이 되었다.

신라면 시장 점유율, 단일 품목으로 세계 최고
신라면은 세계 라면 시장에서 단일 품목으로 최대인 시장 점유율 25%를 자랑하는데다가 농심 수출액의 40%를 차지한다. 홍콩에서는 라면 이름에 신(辛)자가 붙는 유사품까지 등장했을 정도이다. 영어권에서는 ‘신스 누들(Shin's Noodle)'이라는 상표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농심 라면은 북미 외에 중국과 러시아에서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고유의 국수 문화를 지니고 있는 중국은 전통적으로 일본과 대만식 라면의 텃밭이었으나, 농심은 중국에 공장을 2개 설립해 도전장을 냈다.

러시아는 한국에 입국하는 러시아인 보따리장수들을 통해 라면이 보급된 지역. 원래 ‘흘랩’이라고 불리는 뜨거운 국물 문화를 갖고 있는 러시아에서는 요즘 라면(러시아어로는 랍샤)이 제2의 흘랩으로 불린다. 최근에는 국수의 일종인 파스타를 즐겨 먹는 브라질 시장에서도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농심의 올해 수출 목표는 7천5백만 달러로, 세계 라면 시장을 휩쓸고 있는 일본 업체들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현재 수출되는 라면은 통과할 때의 표기 문제 때문에 수출 지역 별로 다른 포장지를 사용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물은 신라면으로 동일하다. 다만 취향이 우리와 크게 다른 일부 지역에는 그 지역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매운 맛을 싫어하는 브라질의 경우에는 치즈와 베이컨 맛을 개발하는 식이다.

상표도 신라면(혹은 신스 누들)이 대표 격이지만 언어권에 따라 달리 쓰고 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烏龍麵(오룡면), 영어 문화권에서는 초이스(Choice)를 사용한다. 그러나 진출국 대형 유통 업체들의 상표를 부착하는 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으로 수출하는 물량도 전체의 30% 가량 된다. 가격은 국내 가격의 2~3.5배를 받는다.

농심 라면은 라면의 종주국인 일본 공략에도 적극적이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된장이나 간장 맛이 나는 라멘을 생산해 왔는데, 80년대 후반부터 한국식 매운 맛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붙 일본 최대 편의점 업체인 세븐일레븐에서 팔린 이래, 신라면은 단일 품목으로는 두 번째로 인기 있는 품목이 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은 한 사람이 연간 라면 92개를 먹는 최대소비국이다. 연간 45개를 소비하는 일본이 그 뒤를 잇는다.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 브라질 등 인구 대국들은 라면이 막 도입되기 시작한 시장들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일본 정도의 소비국이 된다고만 가정해 보라.” 농심 국제영업본부장 박 준 상무의 포부다. 라면 수출의 최대 약점은 제품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운임과, 장시간 운송할 경우 맛이 떨어지는 현상이다. 따라서 이 회사는 현재의 중국 공장을 더 늘리고 러시아와 부미에도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박본부장은 “2000년의 공식 수출 목표는 1억 달러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심은 수출액이 느는 것보다는 모든 라면을 현지에서 직접 생산해 세계인의 음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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