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개방 확대 ‘종용’
  • 워싱턴. 이석열 특파원 샌프란시스코.임승쾌 통신원 ()
  • 승인 1991.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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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시회담 “북한 핵처리시설 폐기 위해 최대한 노력”합의

 국빈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융숭한 접대로 蘆泰愚 대통령을 맞이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노대통령을 단단히 치켜 올렸다.

 부시 대통령은 의전절차에 따라 정산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열린 백악관 남쪽 잔디밭 환영식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지난 3년6개월 동안 민주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큰 진전을 보이고 있고, 외교적으로 북방정책이 열매를 거두어 눈부신 성공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성공은 한국이 이룩한 고도경제성장으로 한국을 세계 16번째 경제대국으로 자리잡게 한 노대통령의 공로라고 강조했다.

 지난 2일 오전 10시30분(미국시간)부터 열린 노·부시 회담에서 한국측은 한·미 안보협력과 새 세계질서 속의 한국의 역할 및 북한의 핵무기개발 문제에 역점을 두고 미국 입장을 타진한데 반해, 미국측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체제와 우루과이라운드에 관련된 시장개방, 북한의 핵무기개발 가능성에 더 큰 관심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은 21세기에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이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중심지로 부각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동북아시아는 그 심장이 될 것이라는 평소의 신념과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한국의 선도적 역할을 놓고, 이것이 부시 대통령이 말하는 새 세계질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를 타진했다.

 두 나라 정상은 북한의 핵개발 문제에 대해, 북한이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고 이를 충실히 이행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나아가 핵재처리시설을 없애야만 한다는 데 합의했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시장개방을 원칙으로 한 가트제도 때문이라고 늘 강조해온 부시 대통령은 고비를 맞은 우루과이라운드를 마무리짓기 위해 한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 한국 경제의 덩치에 걸맞게 농업분야도 완전히 개방할 것을 종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시 대통령은 이어 남북한 모든 국민이 합의하는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는 것이 미국의 전책이라는 점을 재확인한 뒤, 통일과 평화를 위해 남북한이 대화를 계속해나갈 것과 북한·미 관계개선은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조해 신중히 펼쳐나갈 것임을 거듭 다짐했다. 두 대통령은 급변하는 세계정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북한의 위협은 나아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노대통령은 아직 할 일이 많지만 그동안 추진해온 일들이 차근차근 민주화의 올바른 길로 뻗어 나가고 있는 데 만족을 표시했고,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노력으로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크게 향상된 데 대해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노대통령은 방미 이틀째인 지난달 30일 샌프란시스코 교민대표와 가진 조찬모암에서 “금세기 안에 통일의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하며 이번 미국방문도 그날을 재촉하기 위한 것”라고 말해 통일의지를 대내외에 강력히 표명했다. 노대통령은 특히 “북한도 변화할 것이며, 변화를 시작했다고 본다”고 말하고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특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날을 앞당기기 위해 깊이 있는 논의를 가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앞서 29일 오전(한국시간 30일 새벽)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노대통령은 스탠퍼드대후버연구소가 주최한 오찬연설을 통해 아·태경제협력각료회의(APEC)가 모체가 되는 새로운 아·태 공동협력체의 창설을 제안해 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태평양시대의 새로운 질서와 한국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연설에서 노대통령은 “아·태지역은 세계의 발전을 이끄는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우리는 태평양 연안국이 이 지역 모든 국민과 인류에게 평화와 번영의 축복을 더해 줄 협력의 틀을 설계하고 이를 구체화해나가야 한다”면서 △한반도를 비롯한 냉전지역에서의 대종결식 △개방을 통한 교역과 경제 협력의 증대 △경제구조와 발전단계가 다른 태평양 국가간 다양성의 조화와 협력 등을 제안했다.

 약 35분간에 걸친 노대통령의 이날 연설에는 레이지언 후버연구소장, 조지 슐츠 전 국무장과 및 스탠퍼드대 교수 등을 포함, 약 1백30여명의 인사가 참석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이 자리에는 지난해 4월 대구서갑 보궐선거에 출마했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도미, 현재까지 후버연구소에 머물고 있는 鄭鎬溶 전의원도 참석해 취재진의 관심을 끌었다.

 한편 2박3일간의 방미일정을 긑내고 3일 저녁 캐나다 오타와에 도착한 노대통령은 4일 오전 멀로니 총리와 단독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는 한국과 캐니다간의 경제협력방안이 주로 논의됐다. 노대통령의 캐나다 방문은 외교·경협·안보에 주안점을 둔 복합적인 방미 목적과 달리 순수한 경협차원의 성격을 띠고 있다.

 미국은 지난 89년 1월 캐나다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데 이어 멕시코와도 협상을 꾀하는 등 북미자유무역지대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한국으로서는 이 지역에 대한 통상의 확대를 위해서라도 캐나다와의 외교협력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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