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한만큼’의 목소리
  • 김범수 (음악평론가) ()
  • 승인 2006.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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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로티 공연,매력적 음성? 따뜻한 매너 ‘역시 최고’



 온다 온다 하던 파바로티가 다시 왔다. 1월6일 오후 7시, 공연이 열린 올림픽공원 체조 경기장 일대의 혼잡은 대단했다. 지난 77년 11월 3일 이화여대 강당에서의 공연 이후 15년 동안이나 파바로티를 기다린 클래식음악 애호가들의 당연한 흥분이었다.

가볍게 눈이 뿌려진 날씨와 교통체증 때문에 늦어진 관객을 위해 25분 가량 지체되었을 뿐, 공연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2시간10분여에 걸친 공연에서 파바로티는 예정대로 제1부에서 5곡, 제2부에서 6곡, 그리고 앙코르에 답하여 3곡을 노래했다. 레퍼토리는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와 런던 하이드파크 야외공연에서 불렀던, 그리고 근래들어 즐겨 부르는 오페라의 아리아와 칸초네 등으로 채워졌다. 성대 보호를 위해 간간이 관현악곡 연주와 플루티스트 연주를 삽입했다.

 파바로티의 목소리는 ‘기대한 만큼’의 것이었다. 기대한 만큼이란 뜻은 복합적이다. 한국 공연이 무산될지 모른다는 소문이 날 만큼 그의 목소리에 이상이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엄청나게 불어난 체중 때문이다. 영국 BBC 방송과 중계 약속까지 했던 92년 9월27일, 고향 모데나에서의 공연에서는 녹음한 노래를 틀어놓고 입만 맞춘 수치스러운 연주를 했었다. 그러나 이날 공연에서는 그런 걱정스러운 점들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기대했던 만큼 건강한 목소기를 들려줬다. 물론 레코드나 공연 실황의 비디오를 통해 우리를 매료시켰던 그 수준은 아니었단. 낯선 연주무대, 더군다나 순수한 음악회 장소가 아닌 체조경기장에서, 마이크까지 사용하는 공연에서 ‘논 플러스 울트라’의 경지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세계 최고의 테너 가수로서, 우리가 기대한 만큼의 노래를 들려주었다는 것이 ‘복합’의 또다른 해석이다.

 

‘교양인’의 감상 태도는 낙제점

 오페라 <베르테르> 중 <왜 날 깨우는가 봄의 숨결이여> 나, 앙코르의 첫 곡인 <마농 레스코> 중 제1막의 <고운 머릿결의 아가씨들 곳>에서는 날카롭게 앞으로 내뿜으면서도 리리코(서정적)의 섬세함을 잃지 않았다. <제1차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의 <내 기쁨을 그녀의 영혼에 보내리>처럼 극적이면서도 사람의 서정을 담은 노래에서는 드라마티코의 매력이 한껏 발휘되었다. 그러나 <팔리아치>의 <의상을 입어라> 같이 극적인 박력을 요구하는 아리아의 윗소리에서는 포르테의 저력이 나오지 못했고, 같은 노래의 아리오소(레치타티보의 선율적인 부분)에서는 비통한 표현이 약했다. 파열음, 소리가 갈라지는 듯한 불안정함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연주회마다 앙코르곡으로 선택하는 <오 나의 태양>에서도 전성기 때 청아하게 솟구쳐 오르던 힘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열화 같은 박수갈채와 함께 한국 팬들이 요청한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이루고>와 같은 곡을 들려주지 않고 단 3곡의 앙코르만으로 외면한 점도 아쉬었다. 하지만 무대 뒤쪽의 학생석까지도 잊지 않고 보내는 화답의 몸짓은 그의 따뜻한 매너를 느끼게 했다.

 해방 이후 최대의 클래식 음악회인 파바로티 독창회는 여러 가지 문제를 던져주었다. 체조 경기장의 거대한 건물 안에 묶인 1만4천여 청중은 무엇 때문에 그처럼 열광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하비 콕스가 소설 ≪세속 도시≫에서 갈파했듯이 도시문화에서 자기를 상실한 사람들, 그 무명성이 치르는 비종교적인 제사였기 때문이다. 그 의식을 치르기 위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바친 교양인들, 그러나 그 교양인들이 때없이 터트린 카메라 플래시와 긴장할 줄 모르는 감상 태도는 이번 음악회를 훼손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연주회를 지체시킨 지각생들도 바로 우리나라 교양인이었다.

 주최측의 미숙함도 세계적 성악가를 당황케 했다. 공연 시각이 임박할 때까지 프로그램 판매대와 간이식당에서 들려오는 소음, 출입구를 여닫을 때마다 쏟아져 들어오는 빛은 연주자의 눈과 귀를 피곤케 했다. 파바로티 자신이 팝스타 스팅과 자선무대를 가질 만큼 대중문화의 교류에 적극적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의 수많은 클래식 팬이 지닌 엄숙주의를 감안하여 이 대형 콘서트의 기획자가 바치는 정성은 좀 더 지극해야 했다. 완전 매진사태를 올린 이날의 입장 수입은 6억원, 문화방송에서 세화예술협회에 지원한 액수가 8천만원, 파바로티가 챙긴 금액은 2억8천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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