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신새벽의 꿈'
  • 김재일 정치부차장.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2.04.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권후보 뽑기 민자당 '속도전'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의 '대권' 표몰이가 시작됐다. 김대표는 지난달 28일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 나설 것을 '엄숙하게' 선언함으로써 경선 드라마의 막을 올렸다. 이로써 총선 참패로 수세에 몰렸던 김대표는 단번에 분위기를 반전시켜 당과 국민의 관심을 5월 전당대회로 쏠리게 하는 데 성공했다.

 김대표는 "우리 당의 어느 누구와도 정정당당하게 선의의 경쟁을 벌일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친 YS계가 절대 과반수를 넘는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김대표는 과연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인가. 무엇을 믿고 그는 경선에게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는 것일까.

 김대표는 당무를 장악한 유리한 입장에서 대세론을 앞세워 표몰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첫 단계로 김대표는 자신의 후보 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관망파 의원과 지구당 위원장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있다. 또 시·도 의원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다음 단계로 김대표측은 반YS파에 대한 '교란작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대표에 반대하는 지구당 위원장이 확보하고 있는 대의원들을 직접 상대, 각개격파하는 방법이다.

 민자당의 한 간부는 지구당 위원장이 대의원을 완전히 장악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위원장의 뜻에 반해 얼마든지 이탈표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지난 70년 야당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신민당 전당대회에서도 확인됐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불리한 여건하에서 대의원을 1대 1로 상대하는 ‘두더지’ 작전을 펼쳐 유진산 당수가 지명한 김영삼 후보와 대결, 1차 투표에서 예상보다 많은 표를 얻었던 것이다. 2차 투표에서 김영삼 후보는 김대중 후보에게 패했다. 앞으로 대의원 확보 작전에는 김덕룡 의원과 서석재 의원, 그 중에서도 특히 서의원의 활약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서의원은 김대표의 조직참모 출신으로 ‘조직의 명수’ ‘전당대회의 물귀신’으로 통한다.

 김대표에 반대하는 각 계파의 대권주자들은 연합 가능성을 모색하며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김대표의 대항 후보로는 우선 이종찬 의원이 있다. 그는 민자당 내 자유 경선 주창자이며 자신이 경선에 나설 뜻을 누구보다도 분명히 해왔다. 그는 어떤 경우에든 경선에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의원이 처음부터 김대표와 1대 1로 겨루는 경우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정가의 관측이다. 이 경우란 그가 민정계를 대표하는 주자로서 김대표에 대항하는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 때이다. 반김영삼 세력의 다일 후보는 김대표를 결정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그러나 민정계 중진의원 중에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경쟁의식 때문에 이의원을 흔쾌히 밀기를 꺼려 “그럴 바엔 나도 출마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꽤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태준 위원도 경선후보에 강한 미련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박태준 최고위원의 행보이다. 그는 현재 경선과 관련한 자신의 거취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김대표가 경선 출마 선언을 한 다음에도 그는 “동지들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만 말하고 이종찬·이춘구·박철언 의원 등 중진 의원들과 접촉을 계속하고 있다. 그도 원칙적으로는 경선에 나설 생각을 굳힌 것으로 측근은 전한다. 그는 민정계를 대표하는 경선후보에 강한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박최고위원이 정작 기대하는 것은 중진들로부터 추대를 받아 민정계 대표로 경선에 나가는 것이다. 민정계 중진들의 경선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기회가 자신에게 오지 않겠느냐 하는 계산이다. 민자당의 한 간부도 “박최고위원이 분명히 경선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박최고위원도 물밑에서는 전당대회에서의 경선을 꾸준히 준비해왔다. 지난 총선중에서도 전당대회에서의 경선을 대비해 지구당 위원장들에게 개인적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표·박최고위원·이종찬 의원 3파전의 경우를 가정해보자. 김대표가 과반수 득표를 못해 2차 투표로 갈 경우, 박최고위원과 이 의원은 연합할 가능성이 있다. 1차 투표에서 표를 많이 얻은 쪽을 밀어주는 것이다. 이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한 관측통은 이에 대한 묵계가 두 사람간에 이미 이뤄졌을 것으로 단정했다. 그는 박최고위원의 표가 많을 경우 2차 투표에서 이의원이 박최고위원을 밀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그 경우 박최고위원은 김대표를 상당히 위협할 것이다. 그래서 김대표측은 박최고위원에 대해 가장 신경을 쓰고 있다. 그가 경선에 나서면 민정계 중진 대부분을 흡수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만약 박최고위원이 경선에 나서지 않을 경우에는 김대표 대항 후보로 이종찬 의원 외에 김복동 의원 당선자가 이한동·박철언 의원 등이 출마할 가능성이 얘기된다. 김복동씨는 벌써부터 ‘대권’과 연관시켜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해왔다. 그러나 경선에 나설 경우 당내 기반이 약해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의원은 계보관리를 위해서 경선에 나서 차차기 대권에의 의지를 강하게 나타낼 필요는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에도 1차 투표에서 표를 많이 얻은 사람을 밀어주기로 합의할 수 있다. 그러나 김대표 대항 후보간의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합의가 그대로 지켜지기보다는 상당부분이 김대표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민정계와 공화계 등 김대표에 반대하는 계파에 속한 사람의 숫자로만 보면 경선에서의 승부는 뻔하다. 그러나 민정계 중에도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있고 ‘심정적 민주계’가 있어 합종연횡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민정계 전체가 한 사람을 중심으로 결속하기는 어려운 현실인 것이다.

 여기에서 민자당 내 세력판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자당 각 계파의 세력은 지난 1월 이른바 ‘대권 대란’을 겪을 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정비가 돼 있었으나 총선 뒤에는 역학구조가 뒤틀려버렸다. 우선 친민주계든 반민주계든 일정 세력을 잃어버린 데다가 박태준 최고위원이 민정계를 관리하는 수장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이춘구·이한동·김복동·박철언·이종찬계 등 민정계가 뿔뿔이 나뉘어 있는 상태다. 이들 소계보다 민정계라는 이름의 단일 간판 아래 일사불란하게 행동을 통일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노대통령 직계 세력으로 분류되는 인사는 이춘구·이한동·박준규 의원 등 지역구 의원 42명에다가 노재봉 전 총리 등 전국구 의원이 27명인데 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임기말 대통령’의 직계이기를 계속 고집할는지는 미지수다. 소계보 중에서는 이춘구 신임 사무총장계가 가장 주목된다. 이총장은 이해구·김문기·이상득·심정구 의원 등과 홍희표·이기빈·안영기 지구당위원장 등 만만찮은 원외 세력을 거느리고 있다.

 아직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한동 의원의 계보로는 이성호·정영훈·김영구 의원 및 원외의 정해남·전용원·정동성 위원장 등이 손꼽힌다. 김대표측은 이런 침묵파를 ‘친민주계’쪽으로 해석하는 반면, 민정계는 ‘반민주계’로 분류한다. 또 일부에서는 이들을 관망파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박태준 최고위원과의 친소관계를 따질 때 박위원의 그늘아래로 모여들 공산이 크다는 것이 민정계의 자체 판단이다.

 김복동계와 금진호계는 총선 후에 탄생한 소계보들이다. 이 그룹을 계보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에는 여전히 의문 부호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 경선이라는 대사를 치르는데 김복동씨나 금진호씨가 입을 다물고 있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 6공화국에서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발휘해온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이 두 사람의 거취는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김씨가 반민주계로, 금씨가 친민주계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들의 거취가 자못 궁금하다.

 김대표가“친YS계 절대 과반수를 넘는다??고 말하면서 친YS계로 자체 판단하고 있는 인사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관망파??를 포함한 것이다. 굳이 김대표에게 유리한 입장에서 해석하자면 ??최소한 김대표를 거부하지는 않는 사람??들인 셈이다. 민주계는 이번 총선에서 ??김대표 바람??덕을 보아 부산?경남에서 당선된 허삼수?박희태?정순덕?김영일 씨 등을 아예 민주계로 분류시켜버린다. 김윤환 의원이 이끄는 이른바 허주계 사람들이야말로 김대표가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계보다. 그러나 김영삼 대표에 우호적이었고 이번 총선을 통해 자신의 세를 확대한 김윤환 전 총장이 과연 경선에서 김대표를 지지할 것인지에 대해서 아직도 유보적인 판단을 하는 관측통도 있다.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대의원으로 한 표를 행사하게 될 민자당 각 계파나 계보 인사들은 이제 친YS파와 반YS파, 관망파로 대별된다. 김대표의 ‘질풍작전??이 개시된 현재까지 반YS파의 숫자보다는 민주계를 포함한 친YS파의 숫자가 다소 앞서며, 친YS파보다는 관망파의 숫자가 훨씬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민자당 세력판도, 관망파 〉친YS 〉반YS
 관측통들은 특히 이춘구 신임 사무총장의 향배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노대통령의 심복일 뿐 아니라 당이 내분으로 흔들릴 때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지켜온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행보는 특히 중진의원을 포함한 관망파의 향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몇몇 관망파 중진의원들은 앞으로 이총장의 선택을 대통령의 뜻으로 받아들여 그와 행동을 같이할 가능성이 높다.

 김종필 최고위원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비록 공화계가 선거에서 참패함에 따라 ‘분대장’으로 전락하긴 했으나 자파 원외 지구당 위원장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어 그는 여전히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김최고위원은 일단 박최고위원이나 이종찬 의원을 밀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 정치관측통은 그의 정치 스타일을 감안할 때 김대표와 협상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한다.

 대통령 후보 결정에 있어서 가장 큰 변수는 말할 것도 없이 노태우 대통령의 마음이다. 한 청와대 비서관은 “앞으로도 여당 대통령 후보 선택의 칼자루는 노대통령이 쥐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선거 이후 권력누수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후보 문제와 관련, 그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보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19개 국회요직의 배정을 전당대회 이후에 함으로써 많은 중진 의원들로 하여금 자리에 눈독을 들이게 해 그들을 움직이는 방법 등이 그것이다.

 김대표는 노대통령과 자신이 ‘한 몸’이 되어 당운영과 정권창출에 노력하기로 했다고 말해 노대통령이 자신을 지원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그러나 정작 노대통령이 누구를 지원할지 그 속마음은 알 기리 없다. 대부분의 정치관측통들은 대통령이 완전 중립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정치권의 상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종찬 의원은 대통령의 특정인 지원 가능성을 아예 부정한다. 만약 대통령이 민 사람이 후보로 선출되지 않을 경우 그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것이다.

“김대표 약세 불구, 경선에서 유리”
 현재 민자당 내의 ‘지분’을 계산해볼 때 김대표가 민정·공화계 연합세력에 비해 세가 약함에도 불구하고 경선에서 유리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유력하다. 관측통들은 그 이유로 몇가지를 제시한다. 우선 5월초 전당대회의 경선이 야당식 후보선출 방식임을 지적한다. 김대표는 이런 형식의 전당대회를 통해 정치적으로 성장해왔으나 대통령 후보를 지명으로 결정해온 여당 출신 후보들은 이런 방식에 익숙치 않다는 것이다.

 경선에 임하는 자세를 들어 김대표의 승리를 점치는 관측통들도 있다. 민자당 사무처의 한 공화계 직원은 김대표는  ‘죽기 아니면 살기’식이고 대항 후보들은 대개가 ‘밥상을 차려주면 한번 먹어볼까’ 하는 식이라고 민정계 주자들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근본적으로 김대표측이 ‘야전’체질이라면 반김대표측은 ‘온상’체질이라는 것이다. 선거는 실전이기 때문에 투지에서 밀리면 결국 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노대통령이 완전 중립을 지킨다 해도 김대표가 이긴다고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게다가 민주계측은 노대통령의 김대표 지원은 의심할 바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남은 임기 동안 정국안정과 퇴임후 보장을 위해서는 김대표 외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권력분점에 관한 물밑 논의가 왕성하게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김대표측은 첨예한 반발의 예봉을 꺾기 위해 부통령제 도입을 위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울지도 모른다. 부통령제의 신설은 민주당에서도 주장하고 있는 사안이다.

 김대표는 현재의 유리한 위치를 경선에서의 승리로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반김대표 세력의 역전 드라마가 펼쳐질 것인가. 앞으로 5주간 정치무대에서는 각 정파의 힘과 지모가 총동원된 흥미진진한 게임이 연출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