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노 사면 반대 ‘맛불 퍼포먼스’
  • 김당 기자 ()
  • 승인 1997.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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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수 석방 위한 ‘하루 고난 체험’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 명동성당에는 보랏빛 수건이 휘날리는 감옥이 섰다. 광복절을 앞두고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등 17개 단체가 공동 주최한 양심수 석방을 위한 캠페인(8월7~9일)을 알리는 고난의 상징물이다. 보랏빛 수건이 감옥에 있는 자식과 남편의 석방을 기원하는 민가협 어머니들의 희망의 깃발이라면, 실제 크기로 만든 0.75평 짜리 가설 감옥은 아직 감옥에 갇힌 자식과 남편의 고난을 대신하고자 하는 오늘의 현실이다. 양심수가 9백여 명(민가협 집계)이나 되는 오늘의 현실에서, 문화예술인·법조인·종교인 등 각계 인사들은 1평도 안 되는 모형 감옥 안에서 ‘하루 감옥 체험’을 하며 양심수의 고난에 동참했다.

김형태 변호사, 최영미 시인. 김홍신 의원과 영화배우 윤동환씨 등이었다. 그중 ‘서른 잔치는 끝났다’던 최영미 시인의 체험이 ‘혁명 대신 인간을 품은’ 박노해 시인의 그것을 대신하는 것이라면, 작가인 김홍신 의원의 동참은 분당 시대 작가 황석영씨의 고난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어디 그들뿐이랴. 올해에는 고릴라(주완수) 독고탁(이상무) 둘리(김수정) 악동이(이희재) 독대(이둥호) 같은 캐릭터로 대중에게 친숙한 만화가들의 동참이 눈에 띄었다. 검찰의 ‘만화 사냥’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항거하는 표시였다. 감옥 체험에 동참한 만화가 이두호 교수(세종대)는 만화가 청소년보호법의 희생양이 된 이 ‘만화 같은 현실’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는 것과 양심수가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이들에게 만화를 가둔 것보다 던 만화 같은 현실은 광복절 전·노씨 특별사면 움직임이다. 그래서 주최특은 캠페인 선포식에서 전·노씨 사면을 논하기 전에 5·18행불자, 삼청교육대 패해자, 실종·의문사 가족, 해직 언론인·노동자 등 아직도 사회 곳곳에 널려 있는 5·6공 인권 피해자들의 원상 회복이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못박았다. 파란색 수의 차림을 한 어머니들과 통나무를 짊어진 삼청교육대 피해자들, 그리고 꺾인 붓을 든 해직 언론인들이 재현한 고난의 행렬은 ‘잊으면 또 다시 되풀이된다’는 교훈을 일깨우는, 전·노씨 사면에 반대하는 ‘맛불 퍼포먼스’였다.
김 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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