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시비 계속, 화단 양분 가속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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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 심광현씨 논쟁 장기화 … 미술대전 심사위원 자질 들먹

 지난해말부터 시작된 제10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양화부문 수상작의 표절시비가 해를 넘기면서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미술잡지인 ≪월간미술≫(중앙일보사발행)의 신년호부터 지난 3월호까지 徐成祿(35 · 안동대 교수) 沈光鉉(36 · 서울미술관 기획실장)씨 등 두 미술평론가 사이에 지상논쟁이 벌어졌다. ≪월간미술≫은 표절의 개념과 해석의 문제를 다룬다는 취지아래 지난 1월호에 “표절이 아니라 인용이다”는 서성록씨의 주장을 <‘인용’의 개념과 역사>라는 기고문으로 실은 바 있다. 그러자 심광현씨가 2월호에 <차용된 표절>이라는 제목아래 “표절이 아니라는 심사위원의 잣대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반박문을 기고했고, 서씨는 다시 3월호에 <포스트모던 패로디와 ‘차용된 표절'>을 다루어 재반박에 나선 것이다.

 논쟁은 한국미술계에서 전례가 엇이 장기화되고 있는데, 이 사건을 지난 91년 11월29일 첫 보도한 李昌雨 기자(중앙일보 문화부)는 ‘특종상’을 받을 정도로 언론의 지지를 얻은 반면, 미술대전을 주최한 한국미술협호측은 “예술적 전문성 · 세계미술의 경향 · 작가의 제작의도로 볼때 표절로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미술대전 수상은 출세의 보증수표”
 평론가들의 주작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차용과 표절의 개념이다. 서씨는 “창작이냐 표절이냐의 이분법적 개념을 표절옹호론자의 궁색한 변명”이라면서 차용은 현재의 미술조류인 포스트모던 계열의 작품생산방법에 큰 몫을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표절시비의 쟁점이 된 趙元强씨(33 · 청주대 강사)의 작품 <또다른 꿈>은 일본 조일출판사가 매년 발행하는 사진집 ≪누드≫의 88년판 1백8쪽에 실린 프랑스의 사진작가 프레데릭 아슈도의 흑백사진 작품에서 형태를, 89판 1백38쪽에 실린 이탈리아 사진작가 파올로 지올리의 컬러사진작품에서 색채와 표현기법을 가져온 것이다. 한눈에도 형체와 색채의 동일성이 확연하게 드러나 표절시비가 일었었다. 하지만 서씨는 ‘형태의 동일성’이 표절의 잣대는 될 수 없다면서 <모나리자>를 근거로 설명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불후의 명작 <모나리자>는 1919년 전위예술가인 프랑스작가 마르셀 뒤샹으로부터 엄청난 조롱을 당한다. 뒤샹은 길거리에서 산 값싼 모나리자 복제품 위에다 연필로 염소수염을 그리고, 그림 아래에는 <L.H.O.O.Q.>라고 쓴 뒤 자신으 작품이라고 바표한 것이다. <L.H.O.O.Q.>는 소리나는 대로 읽으면 ‘그녀는 엉덩이가 뜨겁다“는 뜻을 지는 불어문장이 된다. 따라서 뒤샹은 우아하고 신비스런 미소의 뒷면에 자리잡은 음흉함을 풍자적으로 나타내어 고급예술품에 흙탕물을 끼얹은 것이다.

 서씨는 뒤샹이 기존의 개념을 조롱하기 우해 ‘충자적 차용(패로디)’을 사용했다고 설명하고, 조씨의 그림도부분적으로 패로디 성격을 지녔다고 분석한다. 사진을 차용하여 (상대적으로) 격하된 사진의 위상을 회화의 수준으로 꿀어올렸고 탐미스런 여체가 관찰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풍자’적으로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심광현씨는 “차용과 표절의 구별이 이번 표절시비의 미학적 쟁점”이라고 주장하면서 ‘도용’한 조씨의 작품과 ’차용‘한 뒤샹의 작품은 같이 취급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심씨는 “뒤샹이 복제판 위에 염소수염과 글자를 덧붙인 것은 작가의 ’창작‘의도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조씨는 논리적 귀결없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누드작품사진의 이미지와 형식을 훔쳐왔을 뿐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서씨는 언론이 여론재판을 벌여 ‘표절’로 몰아갔다는 새로운 주장을 편다. 미술평론가 吾光洙씨도 평가했듯이 창작의 근거가 되는 ‘미묘한 방법론적 뉘앙스’를 일간지에서는 절단한 채 게재하였고, 사진크기(17.5×11㎝)의 1백배가 넘는 원작(162×130㎝)에서 오는 효과도 신문에서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서씨의 설명에 따르면, 일간지의 표절시비 기사는 대부분 작품의 일보가 잘려나간 채 게재되었다고 한다. 작가 조원강씨도 “사진을 오브제로 차용한 증거인 우측 일보와 하단 전체를 잘라 보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창작의도를 없애는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한다. 조씨는 첫보도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이의를 제기했지만 소용없었다면서 ‘표절의 공론화’에는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고 억울해 했다.

 두 번째 요지는 표절시비와 미술대전의 연계에 관한 것이다. 논쟁에 나선 두 평론가들이 묘하게도 현재 화단을 양분하는 두 지렛대를 대립적인 위치에서 맞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 논쟁은 논쟁아닌 ‘입씨름’의 조짐을 보이고 있기조차 하다. 심광현씨는 서울대대학원 미학과출신으로 80년대 비제도권 미술인 민중계열의 대표적인 평론가로 성장한데 비해, 서성록씨는 홍익대대학원 미학과출신으로 80년대 제도권 미술인 포스트 모더니즘의 성장에 역량을 보여왔다.

 서씨는 “개인적으로 미술대전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이나, 논쟁이 작품을 떠나서는 안된다”면서 표절시비와 미술대전의 분리를 주장한다. 서씨는 또 “심씨가 표절의 실마리가 되는 작품분석을 게을리하면서 미술대전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당파적 현실주의로 실추된 이미지를 이번 기회에 만회할 생각탓이다. 잘못된 주소 찾아가기가 아닐 수 없다”고 비꼬기까지 한다.

 반면 심씨는 표절시비를 ‘미술대전’의 문제가 드러난 빙산의 일각으로 보고 있다. “도둑보다도 도둑을 잡아넣지 않는 제도권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현재 미술대전의 문제들을 집중거론할 많은 반박자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로 11회를 맞이하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은 81년 제30회로 마감한 國展을 계승한 국내최고의 신인등용문으로 알려져 있다. 심사는 양화 · 국화 · 조각 · 판화 · 서예 등 각 분야의 전문가 40명내외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부문별로 하고 있다. 심씨는 “미술대전이 한국미술의 발전을 꾀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잃은지 오래이고, 단지 이권의 각축장으로 변했다”면서 특히 대상심사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전한다. 대상을 받으면 교수임용 ·  작품가격 · 해외비엔날레 참가 등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수는 파벌형성을 위해 자신의 제자에게 주려 하고, 지원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의 ‘보증수표’를 얻으려 해 표절시비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도표참조).

 실제로 최근 잇달아 표절시비가 일어난 9 · 10회 미술대전의 경우만 보더라도 심사위원 11명 중 각각 5명 · 7명이 대상수상자의 학교에 적을 둔 교수이기도 했다.

 평론가는 ‘비평을 위한 비평’이 아니라 작품을 이해시키기 위한 비평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두 평론가들의 논쟁은 난해한 현대미술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표절쪽에 표를 던졌던 閔丙穆씨(62 · 화가)는 이 지상논쟁을 계기로 표절에 대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대상선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장치’를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예술의 창조활동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 결과인 예술작품은 철저히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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