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 비료 안썼다가 쫄딱 망했다.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7.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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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 지역 ‘우기농가’들, 판로 부재 · 품질인증제 덫에 신음 … 서울시가 해결책 내야

신한국당 경선 예비 주자 최병렬씨가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95년 무렵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서울시의 핵심 현안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시민이 안심하고 마실 맑은 물을 공급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최틀러’라는 별명을 가진 최씨는 획기적인 단안을 내렸다. 식수원인 팔당호의 오염을 막기 위해 이 지역에 유기농을 육성하고, 이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서울시가 기꺼이 부담한다는 것이었다. 당신 서울시는 △가구당 4천만원씩 총 천억원을 농가에 지원하고 △융자금 이자를 연리 5%의 저리로 공급하며 △ 시중 금리와 차이 나는 이자분은 서울시가 보전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의 결단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우선 천억원을 투입하여 유기농가 2천5백 가구를 육성한다는 계획은 규모 면에서부터 대단한 야심작이었다. 산지의 유기농을 육성하는 데 소비지의 지방자치단체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가뜩이나 팔당호 주변 주민들은 서울시 상수원 근처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매사에 규제를 받았던 터여서 서울시의 계획에 즉각 호응하고 나섰다. 경기도 남양주시 · 양평군 · 광주군 등 팔당호 주변 3개시 · 군에 퍼져 있던 농가 1천1백여 가구가 기존 농법을 폐기 처분하고, 농약 · 제스처 · 화학 비료 따위를 쓰지 않는 유기농으로 전환하겠다며 자금 지원을 앞다투어 신청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요즘, 의욕을 갖고 융자금을 끌어들여 유기농을 시작했던 팔당호 주변 농가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원금을 갚아야 할 기간은 눈앞에 다가왔는데, 정작 가꾼 농산물을 내다 팔 판로는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농산물의 상품성을 인정해주는 관계 기관의 ‘품질인증제도’ 역시 지나치게 까다롭게 운용되어 농가 대부분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팔당 일대에서는 벌써부터 ‘서울시의 자금 지원을 받아 유기농으로 전환한 농가의 70%가 농사를 포개했다’는 얘기가 공공견하게 나동 정도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 대해 농민들은 이른바 ‘환경보존형 농업’으로 통하는 유기농 육성 사업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주장한다. 현행 우기 농산물 관련 규정에 따르면, 해당 농산물이 ‘유기 재배’된 생산물임을 입증받으려면 최소 3년간 농지에 농약을 뿌리지 않았음을 인정받아야 한다. 관계 당국이 유기 재배 최소 인정 기간을 3년으로 잡은 까닭은, 땅 속에 있는 잔류 농약 성분이 완전히 빠지는 데 대략 3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울시와 농혐이 영종 자금을 지원하면서 거치 기간을 2년으로 한정한 데 있다. 말하자면 일반 농가가 유기농으로 전환해 명실상부한 유기 농산물을 생산해 내놓기까지 최소한 3년이 필요한데, 서울시와 농협은 ‘전환 기간’을 사실상 2년으로 묶어 놓아 농민들이 당장 올해 말부터 융자금 상환 압밖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유기 농산문의 잔류 농약을 일절 인정하지 않는 현행 ‘품질 인증제’ 역시 농사를 직파하도록 이Rm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립농산물검사소는 일정한 기준을 따라 유기 농산물을 제 가지로 분류해 품질을 인증한다. 유기농산물 · 무농약농산문 · 저투입농산물 · 일반농산물이 그것이다. 이른바 법이 인정하는 유기농산물이 되려면 3년간 농약을 쓰지 않은 실적 외에 △농장에서 사용하는 지하수 또는 농업 용수에서 질산성 질소가 20ppm 이하로 나올 것 △농산물의 유기물 함량이 3% 이상일 것 따위 까다로운 ‘요건’을 통과해야 한다.

30여 가구만 품질 인증 받아
  그러나 이 지역에서 나오는 농산물 대부분이 잔류 농약이 묻어나오는 사태를 피할 수 없다. 이들은 현재 벼농사는 물론 배추 · 무 · 상추 · 깻잎 · 얼갈이 따위 채소류, 밀 · 콩 · 팥 · 차 · 조 따위 곡물류를 유기농법으로 생산하고 있지만, 일단 잔류 농약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농산물은 품질 인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상품성을 상실한다.

  이들 농산물은 시장에 출하되더라도 ‘가짜’로 대접받기 일쑤다. 유기농 선진국인 미국에서조차 전환 단계의 유기 농산물에 대해서는 잔류 농약이 미량 검출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비추면, 관계 당국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기준을 농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같은 기준 때문에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조 아무개씨의 경우, 품질 인증을 받기 위해 농약 잔류 검사를 받은 상추에서 일반 농산물 허용치의 5백분의 1에 불과한 농약이 검출되었는데도 품질 인증 취소는 물론 3개월 출하정지 처분을 받았다. 현재 팔당 지역의 1천1백여 유기농가 중 품질 인증을 받은 농가는 30여 가구에 불과하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팔당 농민들이 한 가닥 기대를 걸었던 판로 확보 문제마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팔당 지역 유기종가들은 당초 계획대로 이미 지난해 10월 내부 시설비와 인건비 등 1억5천만원을 들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직판장을 개설했다. 그러나 이 시장의 기존 상인들이 올해 초부터 이런 저런 구실을 대며 유기 농산물 반입을 실력으로 막기 시작하면서, 막대한 돈을 투자 해 만든 직판장은 8개월이 지나도록 개점 휴업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결국 불만의 화살은 당초 판로 확보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 주기로 약속했던 서울시로 향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대목은 농민들이 토로하는 불만의 내용에 있다. 팔당상수원유기농운동 본부 김병수 사무국장은 “유기농법은 농약이나 제초제 따위를 쓰지 않기 때문에 일반 농사보다 몇 곱절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든다. 그런데도 팔당호 주민들이 유기농을 택한 까닭은, 이것이야말로 상수원 보호지역 주민들과 서울 시민이 공존공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기놈업의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최근에는 일부 유기농 농민들이 ‘다 그만 두고, 한간물이나 빨리 썩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라고 말한다.

  상수원 보호, 나아가 환경 보호 문제를 국가의 강제 집행이 아닌 당사자간 상호 협력 방식으로 푼다는 면에서 팔당 지역 유기농 육성 사업은 의미 있는 시도임에 틀림없다. 매사는 시작보다 끝이 중요한 법이다. 일을 시작한 서울시가 매듭을 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朴晟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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