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발 부추기는 북한의 석유위기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2.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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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추진 경험 강성산 총리 재기용… 러시아와 원전기술 협력, 경제개방 추진

 

남한이 대통령선거 열기에 휩싸여 있는 동안 북한에서는 주요한 움직임이 있었다.

지난 12월11일 북한은 정무원 延亨? 총리를 전격 경질하고 후임에 전 총리 姜成山 함북도당 책임비서를 재기용했다. 총리직 외에도 4개 경제부처장이 교체되고, 14일부터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5차 핵사찰이 시작되었다. 갑작스런 북한의 인사개편을 우리 언론은 경제활성화와 金日成-金正日 세습체제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라는 정도로 분석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북한의 이번 인사개편은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핵개발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경제적 동기가 숨어 있다.

새로 총리에 취임한 강성산은 경제개혁을 위해 국가적 차원의 주요한 사업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그를 총리에 재기용한 사실과 관련해 우리 언론이 포착하지 못한 그의 대표적인 추진사업은 현재 국제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핵발전소 건설이다. 김일성의 이종사촌동생인 그는 지난 85년 12월 소련을 직접 방문해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소련은 북한과의 ‘경제 및 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에서 북한이 44만KW급 원자로 4기를 건설하는 데 소련이 지원하기로 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92년에 건설이 완공되는 것으로 잡혀 있던 이 계획은 소련 해체와 양국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지난 90년과 91년의 어느 시점에서 완전히 중단되었다. 특히 평안북도 영변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국제적으로 핵무기 개발이라는 의혹을 사고, 러시아가 남한과의 국교수립 등 외교관계를 개선해 나가면서, 북한은 원전 건설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러시아의 기술지원을 사실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강성산이 총리로 재기용된 지금은 원전 건설에 대한 이러한 상황에 어떤 변화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평양을 방문한 에너지 분야의 한 외국 전문가는 “러시아는 북한에 대해 원전 건설에 따르는 기술지원을 재개하기로 최근 합의했다”고 전한다. 익명을 요구한 이 전문가는 “러시아의 경제대표단이 12월 평양을 방문하도록 되어 있다. 양국 간의 경제협력 의제로 원전건설의 기술지원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고 전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이 국제적으로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가 핵발전소 기술지원을 재개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 중대한 사안이 될 수 있다. 이 외국 전문가의 말대로라면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은 서울을 방문해 한국의 경제지원을 받아내던 시기에 다소 소원해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동시에 추구한 셈이다.

 

석유 없어 군대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

극심한 경제난과 외화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러시아는 경화로 결제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석유를 공급할 수 없다고 북한에 통보하고 91년부터 원유공급을 크게 감축했다. 외국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올해들어 2만5천t의 원유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았고, 그 대가로 시베리아 등지에 노동인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 에너지 전문가들의 분석과 정보를 종합해 보면 북한의 에너지 위기는 한국정부가 인식하고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최악의 상황인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유일한 석유 공급원이었던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이란으로부터의 석유조달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북한의 에너지 위기는 “군대를 움직일 수 없는 정도”로 심각하다고 싱가포르 석유시장의 한 소식통은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소식통은 “북한이 최근 동남아 산유국을 대상으로 신용결제에 의한 원유조달이 가능한가 타진했으나,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북한은 국제석유시장에서 현물거래를 한 경험이 전혀 없고, 현물시장에서 석유를 구입할 외화도 없다. 그러나 싱가포르 소식통은 “최근 북한이 싱가포르 석유시장에서 현물조달에 관해 알아보고 다닌다는 소식이 들린다. 북한의 다급함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고 했다. 북한의 이런 다급함은 그들이 현재 극렬히 반대하고 있는 팀스피리트 훈련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남한에서 팀스피리트가 진행될 때마다 일종의 맞불 놓기 식으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여왔다. 북한이 다급해진 뒷면에는 이러한 맞불 놓기 작전에 필요한 석유를 구해야 한다는 급박한 사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에너지 상황에 관한 한 충격적이라고 할 만큼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로버트 리스카시 주한미군 사령관은 북한의 에너지 위기가 이미 군사전략적 위기로 발전해 있다는 사실을 미국에서 최근 공개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 지난 10월14일 리스카시 사령관은 워싱턴에서 “북한군은 경제난과 연료부족 때문에 항공훈련과 지상군 훈련을 크게 줄였다”고 말했다. “북한의 연료사정은 사실상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군에 할당된 자원도 점차 감축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미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밝혔다. 리스카시 사령관은 “북한은 사단차원의 군사훈련보다는 연대급 훈련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히고 “비행사 훈련도 크게 줄였다” 설명했다.

 

원유 도입은 줄고, 석유 수요는 늘어

북한이 당면한 가장 절박한 에너지 문제는 우선 전략자원인 석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서해와 동해 지역에 석유나 가스가 발견될 수 있는 유망지역을 가지고 있다 (《시사저널》 92년 6월4일자 136호 ‘북한 에너지 공황, 유전개발 박차’ 기사 참조). 그러나 아직 본격적인 탐사를 하지 못했고 남한과 마찬가지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통일원 자료를 보면 북한은 79년도에 중국으로부터 1백만t 소련으로부터 70만t의 원유를 도입했다. 80년도에 들어와서 중국과 소련 외에 이란이 새로운 원유공급 국가로 등장했다.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무기가 필요한 이란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대신 원유를 도입했던 것이다. 북한은 80년도에 중국으로부터 1백만t, 소련으로부터 60만t, 이란으로부터 50만t을 공급받았다. 88년도에 북한은 이들 국가로부터 총 3백16만t을 도입했으나, 89년도에 와서는 2백60만t으로 갑자기 줄었다.

하와이 소재 연구교육기관인 동서센터의 마크 발렌샤 박사에 의하면 90년도 들어 북한의 원유도입량은 2백50만t으로 다시 줄었다고 한다. 동북아시아 지역 해양자원개발과 국제관계의 세계적 권위자인 발렌샤 박사는 “91년도에 러시아는 북한에 공급해오던 원유의 90%이상을 감축해 북한의 원유도입량은 크게 감소됐다”고 밝혔다. 국제시장가의 반정도 가격으로 원유를 공급해온 중국도 경화결제가 아니면 더 이상 원유를 공급할 수 없다고 최근 통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발렌샤 박사가 기자에게 밝힌 북한의 91년도 원유도입 총량은 겨우 1백4만t으로 90년 도입량의 절반도 안되는 양이다. 반면 북한의 석유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총리 경질과 동시에 이루어진 경제부처장 인사에서 북한은 화학공업 부장직을 부총리인 金 渙이 겸직하도록 했다. 화학공업부는 석유와 가스 수급을 담당하는 에너지 핵심부서이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북한이 석유수급의 어려움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분명히 드러난다.

러시아와 중국은 설사 북한이 경화결제를 하더라도 과거와 같이 원유를 공급할 능력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러시아의 원유생산량은 소련 해체후 발생한 시설정비 미비와 국내 경제난으로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다. 가장 전통적인 우방으로 꾸준히 원유를 공급해온 중국도 최근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국내수요가 급증해 공급량이 부족한 실정이다.

 

에너지 소비의 73%가 군사 수송용

북한 석유 소비의 특징은 석유의 소비가 수송용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난 88년도 북한의 석유소비는 산업용이 18.7%, 기타 민생용이 8.2%인 반면 수송용이 73.1%에 이른다. 수송용의 대부분이 군사용이다. 북한은 모든 에너지의 기반을 매장량이 풍부한 석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석탄마저 최근 생산량이 감소하고 질이 크게 떨어져 산업 전반의 에너지 수급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있을 것이라고 에너지경제연구원 丁宇鎭 선임연구원은 말한다.

국내외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의 ‘에너지 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석유 도입선을 서방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다. 북한의 에너지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급박하다. 북한은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필연적으로 ‘경제개방’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자립경제’를 추구하는 북한은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더욱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우라늄이 많은 북한으로서는 에너지난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안은 원전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원전건설 지원 재개와 강성산의 재등장은 앞으로 북한이 에너지 분야에서 남한 혹은 서방과의 협력을 적극 모색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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