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한 경제교류 ‘중매쟁이’는 재미교포
  • 임익준 (북한 경제 전문가) ()
  • 승인 1995.03.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북 인사가 주도…남북관계 개선 위한 교민정책 필요

미국이 지난 1월21일 북한에 대해 취한 경제 제재 완화 조처는 전반적으로 과소 평가되고 있으나 그 파급 효과는 만만치 않다. 아직 구체적인 협력 형태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이번 조처를 계기로 양국 간에 정치·경제·종교 관련 인사의 왕래가 빈번하게 이루어져 과거의 적대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 기업으로는 스탠턴그룹과 코메탈사가 북한을 방문해 조사 활동을 벌인 것이 확인되었고, 펩시콜라 인터내셔널·제너럴 모터스·MCI인터내셔널·US워싱턴뱅크·컬럼비아 국제통신 등 대기업 12개가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중 스탠턴그룹은 지난해 10월21일 미국과 북한이 기본합의서를 체결한 이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이 회사가 북한의 전력·정유·산업개발 분야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 재무부에 사업 신청을 해 놓았다는 사실은 지난 1월19일 미 상원 에너지위원회에서 확인된 바 있다.

 북한은 또한 일본 ·독일·오스트레일리아·필리핀 등과의 수교에도 적극 나서고 있어, 이번 미국의 조처가 비록 제한적이나마 북한에 대외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해준 측면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북한이 핵합의를 성실히 이행할 경우 미국의 북한 제재 완화 폭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이로써 핵문제로 실추된 국제적 신뢰를 회복하고 김정일 후계 체제를 공고히 할 절호의 기회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북한이 대외 정책에서는 유화 정책을 강화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여전히 민관 분리 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오는 4월28일 평양에서 열 ‘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 체육·문화 축전’(평양 축전)과 연계하여 해외 교포 사회에 집요한 유인 활동을 펴 한국 정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평양축전 참가자 적극 모집

 현재 1백40만명으로 추정되는 재미 교포들은 북한 진출에 대해 선교·관광·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무역 및 경제 협력 등 네 가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종교 인사 파견 및 이산가족 상봉 사업은 미·북한 관계가 경색돼 있을 때도 물밑에서 진행돼 왔지만, 최근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완화 조처 이후에는 관광·경제협력을 목적으로 한 접촉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관광 분야의 경우 이번 미국의 대북 완화 조처에 북한 방문중 신용카드 사용과 여행사의 개인 및 단체 여행 주선이 허용된 데 힘입어 크게 활성화하고 있다. 북한 방문·관광 상품을 내놓고 있는 대표적인 한인 여행사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전금여행사·파라다이스관광·사랑여행사·세방여행사, 뉴욕의 제일 여행사, 시카고의 평화여행사, 샌프란시스코의 신세계관광사, 캐나다의 뉴코리아타임스 등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직접 북한을 방문하여 조선국제여행사로부터 미주 관광객 모집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 시민권 소지자 및 영주권 소지자를 모집 대상으로 하고 있고, 여행사 별로 평양 축전 참가자 백명씩을 모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는 4월25일부터 10박11일 일정으로 북경→평양 시내→평양축전 개막식 및 축제 관람→금강산→원산→평양→개성→판문점→묘향산→북경 순으로 관광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일정은 방문단 성격에 따라 변경이 가능한데, 가령 경제 조사가 목적인 방문단에게는 평양, 남포, 나진·선봉 등에 대한 산업 시찰이나 고위경제 인사와의 면담을 주선해 준다.

 현재까지 참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주로 북한에 고향을 두고 있는 실향민이거나 이산가족, 교역 및 투자 진출에 관심이 있는 인사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북한측이 짜놓은 관광 일정에 전혀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재미 교포 중 생전에 고향 방문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이들은 북한측이 일방적으로 정한 일정으로 인해 고향 방문과 친인척 상봉이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관광단 모집 안내서에는 안내원의 허락 없이는 개인 행동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북한 고위인맥 활용, 각종 프로젝트 맡아

 미·북한 경제 교류 과정에서 재미 교포들이 하고 있는 역할은 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내 조선족들이 했던 중개 역할과 비슷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재미 경영학회를 중심으로 94년 8월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된 국제경영연구원을 들 수 있다. 국제경영연구원은 금년 2월 초 교포 사회에서는 처음으로 투자조사단을 북한에 파견 했을 뿐 아니라 북한 관련 정보 제공, 교역 및 투자 알선, 이산가족 상봉까지 주선해 주고 있다.

 이밖에도 북한 생수 개발 및 독점 판매권을 따낸 것으로 알려진 홍콩 소재 유니포스사(교포 기업이 운영), 미국 기업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과 나진·선봉지대를 시찰할 예정인 파코 스틸사,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로부터 나진·선봉지대 투자 유치 활동을 위임받은 나선투자자문유한공사 등 10여 기업이 북한과의 교역 및 투자 알선을 하고 있으나 그 성과는 알 수 없다.

 이 회사들 중 상당수는 북한내 고위 인맥을 활용하여 각종 프로젝트를 위임받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내 친북한 단체들과도 긴밀하게 연계돼있다. 재미경제인협의회(회장 존 킴)·고려상공인연합회·북미조선친선협회(회장 김운하) 등이 경제계에서 대표적인 친북 단체들이다. 존 킴은 홍콩에 북한 투자 컨설팅 업체인 나선투자자문 유한공사를 설립하여 북한투자조사단에게 방북을 주선하고, 나진·선봉 투자 유치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또 가장 대표적인 친북한 단체인 북미조선친선협회를 이끌고 있는 김운하는, 금년 1월 초 대북 투자중개 회사인 CNC(Chosun Network Company)를 로스앤젤레스에 세워 북한 관련 무역·투자활동자문, 북한 상품의 대미 수출을 위한 전시·소개 업무 등 북한의 대외 창구 노릇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밖에도 박보희 <세계일보> 전 사장, 박경윤 금강산국제 그룹 회장, 재미 언론인 문명자씨 등도 북한을 오가며 서방 세계에 북한의 동향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미 교포들의 이같은 활동은 대북한 경제 완화 조처를 비롯해 유력한 전·현직 인사들이 북한의 초청 외교에 적극 응하는 등 미국이 북한을 부분적이나마 받아들이는 경향 때문에 가능하다. 특히 미국의 전·현직 고관들은 북한 방문 이후 대체적으로 북한식 논리에 상당히 길들여져 돌아오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교포 역할에 객관적 평가 있어야

 지난 2월2일 미 의회 주최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조선종교인연합회 부회장 장재철과 클린턴 대통령의 만남을 주선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 날 만남에는 앨 고어 부통령, 해밀턴 상원 외교위원장 등이 배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재철은 북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 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한측 중앙위원도 겸임하고 있다.

 재미 교포를 사이에 둔 미국과 북한 간의 물밑 교류에서 몇가지 시사점이 드러나고 있다. 북한의 적극적인 대미 외교 및 교포 활용 정책이 체제 유지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는 점, 95 평양 축전의 성격이 외형적이나마 정치색을 띠지 않고 주로 경제적 실리를 얻기 위한 상품 개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 이러한 목적에 미·북한 관계 개선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한국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중 특히 지나쳐서 안되는 점은 남북관계에서 해외 교포의 역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이들이 바람직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순기능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적극적인 교민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임익준 (북한 경제 전문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