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 물러나라 ! ” 親좌익 정치세력화
  • 최성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원) ()
  • 승인 1992.03.0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소정당 할거…사회주의·점진개혁 주장

 러시아대륙이 또다시 격동하고 있다. 모스크바 현지에서는 쿠데타의 가능성이 새롭게 운위되고 생활고에 찌든 대중들의 민중봉기 가능성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 격동의 본질은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거에 전개되었던 권력투쟁의 양상이 중도개혁파세력(고르바초프)에 대한 급직개혁파와 민족주의세력의 결합된 투쟁이었다면, 이제는 급진개혁파세력(옐친)에 대한 공산주의세력과 민족주의세력의 결합된 투쟁이다. 그리고 과거 민주화투쟁을 주도하던 정치세력이 ‘소련공산당과 소연방의 해체’를 중점적으로 요구했다면, 현재의 시위 주동세력은 ‘소련공산당의 재집권과 소연방의 부활’을 외치는 새로운 사회주의 세력이라는 점에서 그 성격이 뚜렷이 구별된다.

 2월 9일 러시아전역에서 10만 달하는 친공산당 지지대중이 벌인 모스크바 마네슈광장의 시위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다양한 정치세력이 총집결하였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언론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더욱이 같은 시각에 러시아국회의사당 앞에서는 ‘민주개혁운동’ 그룹의 주도하에 ‘공산당 타도’를 연호하는 대규모의 친옐친시위가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양 정치세력의 대중적 지지도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국면이 전개되었다.

 옐친은 독립국가 공동체의 맹주가 된 이후 가격개혁을 비롯하여 급속한 경제개혁 조치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인플레이션의 심화와 엄청난 물가폭등 만을 초래하였다. 반면 이에 상응하는 임금인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여서 러시아대중의 상대적 박탈감은 극대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상당부분의 러시아대중은 반옐친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그동안 친옐친 세력중심의 급진개혁파로부터 집중적인 포화를 받았던 소위 ‘사회주의 지향세력’은 그 영향력을 급속히 확산해나갔다. 그 결과 나타난 현상이 러시아 전역을 휩쓸었던 친공산당 시위의 열기였다고 볼 수 있다.

 현지 모스크바언론은 최근에 무수히 결성된 군소정당 중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정치세력으로서 소위 ‘親좌익’이라 불리는 새로운 사회주의세력의 결성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이들 사회주의세력은 과거 소련공산당내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던 인사가 대부분이나 여기에는 스탈린주의세력에서 부터 사회민주주의세력, 그리고 급진개혁세력까지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표출되고 있다(도표 참조).

親좌익 다수 “시장경제 도입 불가피” 인식
 대표적인 예로 한동안 옐친의 측근으로 남아 급진적인 개혁노선을 지지하였던 루츠코이 러시아 부대통령이 이끄는 ‘자유러시아인민당’(전 러시아공산주의자 민주당)을 들 수 있다. 과거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영웅으로서 강경한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세력의 핵심성원이었던 루츠코이는 최근들어 옐친의 급진 경제정책에 대한 지지입장으로부터 급선회하여 ‘반옐친투쟁’의 기수로 나서고 있다. 이 정치세력은 ‘급속한 경제개혁’을 선호한다는 차원에서는 옐친류의 개혁정책과 친화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극단적인 러시아 민족우월주의(애국주의)’와 ‘강력한 중앙권력의 수립’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공산주의세력과의 반옐친연합을 구축하고 있기도 하다.

 이 밖에도 ‘신좌익’이라 불리는 정치세력에는 ‘사회주의적 원칙을 고수하나 시장경제의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하는 개혁파 공산주의그룹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야코블레프와 셰바르드나제 등 과거 ‘민주개혁운동’그룹 출신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옐친 이후의 시대를 장기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한편 소련공산당의 계승자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소위 ‘재생주의자’그룹으로서 메드베제프가 이끄는 ‘노동자사회주의정당’과 과거 보수파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리카초프가 참여하는 ‘공산주의자연합’ 역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재생’(계승)시키겠다는 정치세력이다.

 그밖에도 전 연방볼셰비키 공산주의정당(대표 안드레에바)과 러시아공산중의신당(대표 크루치코프) 등 신볼셰비키그룹이 존재하나 현실적인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초강경 반옐친그룹’으로서 실질적인 정치행동(폭력투쟁)을 할 수 있는 극단주의 세력으로 위험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시위과정에서도 과거 보수파의 대변자였던 알크스니스 소유즈그룹 대표는 ‘즉각적이고도 전면적인 정치파업’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모스크바에서는 ‘친공산세력’을 제외한 상당수의 개혁파 인물들이 ‘신좌익’내에 포진하고 있는 스탈린주의세력에 대해서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친공산당 시위현장에서 직접 만난 노동자 미하일로프씨는 “대부분의 신좌익세력이 ‘스탈린주의와의 결별'을 내세우고 있으며 평등과 복지, 그리고 노동자의 생활조건 개선을 주된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개혁파 신문에서는 우리를 대중과 분리시키기 위하여 악의적으로 스탈린주의세력이라고 매도하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에 반해 독립국가 공동체 결성 이후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한 급진개혁파는 과거 ‘반고르바초프투쟁’의 구심점이었던 ‘민주강령파’와 ‘지역간대의원그룹’이 분화, 발전되어 러시아연방공화당(의장 리센코 외 3인)과 인민당 및 러시아농민당과 ‘新러시아블록’을 형성한 러시아사회민주당(의장 트라프킨)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러시아운동’의 핵심세력으로서 옐친의 강력한 지지기반이며 이번 ‘친옐친시위’를 대대적으로 조직한 정치세력이다. 그 밖에도 ‘민주동맹운동’이라 불리는 느슨한 형태의 각종 인민전선과 개혁적인 시민단체 세력 중 상당수가 이 그룹에 포함된다.

 이날 집회에서 개혁파지도자는 “현재 러시아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위기의 본질은 관료주의적 공산당지배의 부산물이며, 아직도 잔존하는 스탈린주의세력이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소위 ‘경제마피아의 척결’을 강도높게 주장하였다. 특히 이날 집회에 모인 대중은 ‘공산주의=파시스트’라는 극단적인 구호를 외치면서 “무조건 반대만을 일삼는 스탈린주의세력을 척결하고 옐친과 가이다르행정부를 적극 지원하자”는 요지의 연설에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아카데미 산하 철학연구소의 에트로모바 교수(정치학)가 “현존 위기의 원인은 공산당 통치 결과로 인한 취약한 민주적 기반에서 기인한 것이지 결코 옐친세력의 시장경제개혁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변한 점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옐친 지지 급강하 “그러나 대안이 없다”
 ‘옐친시대’를 맞이하여 그가 보여준 정치력과 통치스타일은 그동안 누적된 소련사회주의의 모순을 끌어안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된다. 이러한 견해는 러시아 내 옐친비판세력 뿐만이 아니라 베이커 미 국무장관을 비롯한 서방 정치지도자들의 지배적인 견해이기도 하다. 더욱이 경제개혁을 위해서는 정치적 권위주의가 불가피하다는 ‘개발독재’의 논리를 전개하면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민중의 불만을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그의 측근들조차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옐친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서방의 경제지원 역시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상태이다. 따라서 파국적인 경제위기와 옐친의 정치적 권위주의 등이 맞물려 무수한 정당이 난립하고 특히 구 공산당 시절에도 존재했던, 점진적인 개혁을 시도하면서 사회주의적 이상’을 구체화시키려는 ‘신좌익’이 새로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적 진로 역시 ‘신사회주의자’그룹의 지도자인 카갈리츠키가 예리하게 갈파하고 있듯이 민중적 정통성을 새로이 복원시키기에는 너무도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구 체제하에서 반민중 세력의 주역이었다는 비판을 받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 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따라서 옐친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가 급속히 하강하고 있다는 사실이 친공산주의세력의 재집권 가능성과 연결되기는 힘들어보인다. 필자가 인터뷰한 상당수의 러시아대중과 지식인은 아직도 옐친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비판적 지지입장’을 보이고 있어 옐친의 정치적 운명은 불안한 상태에서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92년 ‘모스크바의 봄’은 본격적인 정치투쟁이 새롭게 시작되는 시기이며 러시아는 상당기간 ‘탈공산주의·권위주의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