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좌파’ 혁명 일으키다
  • 이용균 (<주간야구> 기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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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좌완 류현진·좌타자 이용규, 프로 야구 ‘질서’ 재편
 
“나는 왼손 투수다. 따라서 나는 좌파다.”
별명이 우주인(spaceman)이었던 보스턴 레드삭스의 왼손잡이 괴짜 투수 빌 리(Bill Lee)는 스스로를 '좌파'라고 규정했다. 마운드에서, 인터뷰에서 보여준 그의 태도는 사실 좌파를 넘어 ‘급진 좌파’에 가까웠다. 왼손 투수 이상훈(전 SK)도 '좌파'였다. 한국-일본-미국을 넘나들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던 이상훈은 2004년 6월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며 야구판을 떠났다.

좌파는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깨뜨린다는 점에서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2006 한국 프로 야구에 ‘젊은 좌파’가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데뷔 이후 3연승을 내달리며 스타로 떠오른 한화의 고졸 신인 류현진(19)과 4할을 오르내리는 고타율로 시즌 초반 타격 1위를 질주하는 기아의 고졸 3년차 이용규(21)가 주인공이다. 둘은 왼손잡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기존 질서를 깨뜨린다는 점에서 그라운드에 ‘좌파’의 신선함을 풍긴다.

한화 류현진은 이른바 ‘돈의 논리’를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2006 시즌을 앞두고 가장 주목받는 신인 3인방은 기아 한기주·한화 유원상·롯데 나승현이었다. 역대 최고 신인 계약금인 10억원을 받으며 기아에 입단한 한기주는 시속 150km를 훌쩍 넘는 빠른 공을 앞세워 언론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전 한화 감독이었던 유승안 감독의 아들 유원상과 롯데 2차 1번 나승현은 각각 계약금으로 5억5천만원, 3억원을 받았다. 그런데 류현진은 이들에 한참 못 미치는 2억5천만원에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SK 1차 지명 포수 이재원, 현대 투수 장원삼과 같은 금액. 언론의 관심도 류현진을 비켜갔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가장 알짜배기는 류현진이었다. 류현진은 4월26일 현재 세 경기에 나와 모두 승리를 따냈다. 다승 1위는 물론이고 방어율도 0.78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계약금 10억원의 한기주는 세 경기에 나와 1승2패, 방어율은 5.65에 그쳤다. 그보다 3억원이나 많이 받은 유원상은 아직 1군에 올라오지도 못하고 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류현진의 완승이다.

류현진의 돌풍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류현진의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 시속 151km까지 찍는 빠른 직구. 이른바 타자를 상대하는 ‘대각’이 좋다. 188cm 큰 키에서 멀리 돌아나오는 피칭 궤적이 타자로 하여금 공포심을 갖게 만든다. ‘랜디 존슨 효과’다. 4월12일 류현진의 데뷔전 구심을 맡은 김풍기 심판은 주저없이 “내가 본 왼손 투수의 공 중에 최고였다”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브레이킹 볼’이 수준급이다. 손가락이 짧아 팜볼 형태의 독특한 그립으로 떨어뜨리는 변화구는 마치 공이 멈추었다 들어오는 듯이 속도 변화가 크다. 이런 것들이 세 경기에서 류현진이 삼진을 28개나 잡아낸 비결이다.

류현진은 최근 “김진우 선배 목표가 17승이라면 제 목표는 18승입니다”라며 호기를 부렸다. 당당한 젊은 좌파다운 목소리다.

좌파 돌풍은 마운드만이 아니다. 타석에서도 힘찬 젊은 좌파 돌풍이 불고 있다. 고졸 3년차인 기아 이용규는 4월26일 현재 타율 3할8푼6리로 타격 부문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다. 전날까지 4할1푼5리를 기록할 정도로 맹타를 휘둘렀다. 타석에 들어선 열두 경기에서 모두 안타를 터뜨렸다.

‘반짝 돌풍’이냐, 스타 탄생이냐

이용규는 이른바 ‘기아의 전통’을 깨뜨린 좌파다. 기아는 해태 시절부터 LG와 트레이드를 할 때마다 족족 실패했다. 1994년 LG로 옮겨간 한대화가 ‘해결사’ 노릇을 한 반면 김상훈(현 SBS 해설위원)은 2할대 초반에 허덕이다 2년 만에 은퇴했다. 함께 트레이드되었던 이병훈도 2년 만에 삼성으로 이적한 뒤 은퇴했다. 신일고 시절 거포로 각광 받던 조현도 1997년 해태로 이적한 뒤 프로 무대에서 사라졌고 1998년 해태로 이적한 송구홍도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2000 시즌 개막 직전 해태 양준혁과 트레이드되었던 LG 손혁은 돌연 “야구를 그만두겠다”며 은퇴를 선언했었다. LG에서 돌아온 ‘해태 간판’ 홍현우도 결국 올 시즌을 앞두고 방출되었다.

이용규는 이처럼 좋지 않은 ‘LG와의 트레이드 전통’을 깨뜨린 좌파로 불릴 만하다. 2004년 홍현우와 함께 기아로 팀을 옮긴 이용규는 4월26일 SK전에서 이종범을 제치고 1번 타순에 들어서며 ‘신(新) 바람의 아들’로 자리잡았다.

 
이용규의 맹타 비결은 시류를 거부한 ‘좌파 스타일’에 있다. 모두들 이승엽의 WBC(월드베이스클래식) 활약을 지켜보며 ‘근육’과 ‘힘’을 키우고 있을 때 이용규는 일본 스타일의 ‘정교함’을 선택했다. 이용규는 앞발인 오른발 뒤꿈치를 살짝 들면서 최대한 무게중심을 뒤쪽에 둔다. 타구를 멀리 보내기 위해 일찌감치 중심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끝까지 공을 기다린 뒤 맞힌다.

현역 타자 중 누구보다 공을 끝까지 보는 만큼 이용규의 ‘컨택팅’ 능력은 특히 뛰어나다. 기아 서정환 감독은 “야구 센스가 무척 뛰어나다. 반짝 성공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스스로를 좌파로 규정한 빌 리는 “우파가 단거리를 좋아한다면 좌파는 마라톤 스타일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WBC에서 직접 확인했듯 야구에서 승리는 ‘왼손잡이’들이 좌우한다. 2006 프로 야구에 젊은 좌파 바람을 이끌고 있는 류현진과 이용규. 마라톤 스타일의 좌파인 만큼 ‘반짝 돌풍’이 아닌 ‘롱 런’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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