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즈모市 이와쿠니 데쓴도 시장
  • 이즈모·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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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은 최대의 서비스 산업”

 

 

 일본열도의 남서쪽 시마네켄(島根縣) 이즈모(出雲)시는 인구 8만3천명의 작은 지방도시이다. 3년 전만 해도 이즈모시는 옛 신화에 나오는 고도, 다케시타 전 총리의 출신지라는 점 외에는 별로 내세울 게 없는 도시였다. 그러나 89년 4월부터 대변혁을 겪으며 지금은 전국 6백62개 도시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도시로 변모했다. 이즈모시에 ‘행정이 최대의 서비스산업’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이른바 ‘이와쿠니 혁명’을 일으킨 사람은 올해 56살의 이와쿠니  데쓴도(岩國哲人) 시장.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닛코증권, 모건 스탠리 투자은행 그리고 미국 최대 증권회사 메릴 린치의 수석 부사장을 지내다 3년 전 고향 이즈모시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시장에 당선됐다. 당시 일본 언론은 ‘월가에서 신화의 나라로’라는 제목으로 그의 변신을 크게 보도했다. 거북이 걸음의 지방행정에 기업의 효율성 개념을 도입한 ‘이와쿠니 혁명’은 취임 2년만에 이즈모시가 소니 도요타 등과 함께 “JMA종합마케팅 우수상‘을 수상함으로써 큰 평가를 받았다. 또한 작년 10월에는 노인복지카드제도가 ’소프트화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와쿠니 시장은 이러한 행정개혁을 내용으로 한 《지방의 도전》《지방의 논리》등 저서 7권을 냈으며, 미국 버지니아 대학 객원교수와 칼럼니스트를 겸하고 있다.

메릴 린치의 수석 부사장이 보수가 10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도시 시장으로 변신한 데 대해 미국 언론도 큰 화제를 삼았습니다.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요?

 고향의 부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59년 닛코증권에 입사한 이후 주로 해외로 떠돌아다녔습니다. 미국에서 10년, 유럽에서 11년. 하지만 이즈모시와 시마네켄의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한 인연으로 한시도 고향을 잊어본 적은 없습니다. 88년 9월 현직 시장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뉴욕에 있던 저에게 수시로 국제전화가 걸려오더군요. 저를 설득하러 뉴욕으로 오겠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1주일을 곰곰이 생각한 뒤 결론을 내렸지요. 고향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길을 걷겠다고 말입니다.

주위의 만류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메릴 린치 본사의 슈라이어 회장에게 사의를 표명했더니 “폴리틱스? 와이?”라고 반문하더군요. 급료가 높은 지위를 버리고 왜 정치를 하려느냐 하는 것이죠. 미국에서 나온 일본지도에는 이즈모시가 나타나 있지 않아 다케시타 총리의 고향이라고 설명했더니 겨우 납득하더군요. 그러나 이즈모시의 인구가 8만3천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친지들로부터도 똑같은 질문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국회의원이 아니고 왜 시골의 시장에 입후보하느냐” “오사카나 코베라면 몰라도 왜 하필이면 이즈모냐”라고 말입니다.

‘행정은 최대의 서비스 산업’이라는 것이 시장의 시정방침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처음 등청한 날 어떤 일부터 손을 대셨습니까?

 이즈모시의 규모란 사실 직원 6백여명 연간 예산 3백억엔에 불과한 곳입니다. 당시 메릴 린치 도쿄지점의 직원만 해도 4백50명이나 되었고 3백억엔이라는 예산도 제가 메릴 린치 본사에서 3분30초간 눈을 감고 있으면 순식간에 거쳐 지나가는 돈이었습니다. 처음엔 이즈모 시청에 설치된 팩시밀리가 1대밖에 없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메릴 린치 도쿄지점에 설치된 팩시밀리만 해도 40대가 넘는데 말이죠. 그래서 등청한 날 ‘팩시밀리를 한 대 더 설치하라’고 지시한 것이 저의 첫 업무였습니다. 등청하기 직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간부직원이 “첫 등청은 몇 시에 하시겠습니까”하고 물어 오더군요. 몇 시가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신문기자가 10시께 출근하니 그때 출근하는 게 좋겠다”고 그러더군요. 시간에 대한 코스트 개념이나 기업경영 감각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관청에는 경쟁상대가 없기 때문이죠. 오늘 안되면 내일하고, 내일 안되면 모레 한다는 식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러한 악습을 일소하기 위해 모든 진정에 대해 세 가지 답변만 준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1주일 안에 답변하겠다’ ‘1개월 이내에 답변하겠다’ ‘3개월 이내에 답변하겠다’는 세 종류입니다. 3개월 이내에 답변하는 것은 의회와 상담이 필요한 사안에 국한시켰습니다. 그밖에 ‘안 된다’는 답변이 또하나 있는데 이전의 ‘검토해보겠습니다’ ‘전향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라는 답변은 전부 ‘안 된다’로 바꾸도록 지시했습니다. 질질 끌 것이 아니라 안 되는 일은 분명히 안 된다고 못박으라는 얘깁니다.

일반적으로 관청이라는 곳은 시간 개념뿐 아니라 이자 개념도 없는 곳 아니겠습니까.

 도로나 다리를 건설하다가 기한 내에 완공되지 않더라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곳이 일본의 관청입니다. 미국의 경우 각 지방자치단체를 제3자가 평가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뉴욕시는 AA급, 오하이오주는 A급이라는 식입니다. 이 평가는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방식 재무내용 인구증가율 산업분포를 계수화하여 내리게 되는데 유럽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평가합니다. 다시 말하면 경제·금융 전문가가 지방자치단체를 종합적으로 평가 분석한 등급이 금리비용·기채비용 등에 반영되므로 ‘도시간 경쟁시대’라고 불릴 만큼 경쟁이 치열합니다. 당연히 직원들은 이 금리비용을 숙지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자치단체에도 이러한 경쟁원리가 도입된다면 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지리라 봅니다.

이즈모시를 일본 최강의 市政집단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 시장의 공약이었는데 성과는 있었습니까?

 이즈모 시청을 시내에서 가장 우수한 기업으로 육성하자는 공약은 작년 3월 일본능률협회가 독창성과 사회성이 뛰어나고 매력있는 조직체로 발전하고 있는 기업·단체에 주는 “JMA 종합마케팅 우수상‘을 이즈모시가 수상함으로써 객관적 평가를 얻었다고 자부합니다. 이즈모시가 소니 도요타 기린맥주 등과 같은 초일류 기업과 함께 이 상을 공동 수상한 것은 획기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이즈모 시청’ 이 아니라 ‘이즈모 주식회사’라는 농담도 들립니다만 휴일開廳제도는 어떻게 정착되고 있습니까?

 일본의 관청은 ‘차갑다 어둡다 뽐낸다 불친절하다 게으르다’라는 다섯가지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를 없애고 ‘휴일 개청제도’를 제안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직원의 휴일을 뺏자는 것이 아닙니다. 5명 1조가 되어 1년에 한번 토·일요일 근무를 하면 시청의 문을 3백65일 활짝 열어놓을 수 있습니다. 또 시청에 가야만 일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불편을 덜기 위해 시내 쇼핑센터에 이동 출장소를 개설해 호평을 얻었습니다. 이 출장소제도는 지금 일본 전국의 자치단체로 확산중입니다.

관혼상제 참석을 엄격히 금했는데 잘 지켜지고 있습니까?

 중간관리자가 되면 관혼상제 참석이 많아집니다. 시간 손실로 따지면 엄청난 금액에 해당하며 그만큼 행정처리 속도로 늦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시장에 취임하는 날 관혼상제에는 일절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결혼식에 가지 않으면 1백50표, 장례식의 경우는 1백표씩 지지표를 잃는다는 충고도 있었습니다만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이 선언을 한 후 3일만에 처의 숙부가 별세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일과시간중에는 빈소를 찾지 않았습니다. 취임 이후 3년8개월이 되어 갑니다만 관혼상제에 한번도 참석한 일이 없습니다.

재임중 목조 돔, 목조 교사 신축 등 공공사업이 많은데 ‘전시행정’이라는 비난은 없습니까?

 일본에는 ‘3할 자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앙정부가 권한과 재정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어 실제로 자치단체가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부분이 3할 밖에 안 된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3할 자치라도 운영의 묘를 살리면 얼마든지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목조 돔이나 교사 신축도 바로 시마네켄의 80%가 산림이라는 데서 착안한 아이디어입니다. 또 나무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 전국에서 처음으로 樹醫제도를 도입한 곳도 이즈모시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지나친 중앙집권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방분권이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시장께서 주장하는 ‘하나의 논리’ 즉 지방의 논리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래 지나친 중앙집권화가 추진되어 지방은 단순한 하청 행정기관으로 전락했습니다. 때문에 중앙집권-하청행정 관계를 거부하는 ‘No'라는 외침이 지금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에 대해 당당하게 주장을 하고 중앙의 잘못을 시정케 할 수 있는 ’지방의 논리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이즈모시의 노인복지카드 개발이 처음에는 민간 기업의 협력을 얻어 추진되었지만 도중에 후생성 자치성 우정성 농림성 등 중앙관청이 공동 참여하는 형태로 발전되었습니다. 이 카드 개발과정에서 보듯 지방의 논리가 얼마든지 중앙을 이끌 수 있으며 지방행정이 얼마든지 최첨단 행정으로 부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임기가 내년 3월까지인데 앞으로의 계획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동안 남이 10년 할 일을 4년에 해치웠다고 자부합니다. 이로써 고향에 대한 은혜도 어느 정도 갚았다고 생각하고요. 거취 문제는 이달 말께 정식으로 결정하겠습니다만 아무래도 한번 더 도전하는 쪽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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