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국민의 ‘YS포위전략’내각제 개헌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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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교란 · 포섭 · 제휴’용 카드


 

 지난달 초순 민자당의 노재봉 · 안무혁 · 김종인 · 최병렬 의원이 모여 내각제를 재론했다. 이들은 노태우 대통령 직계로 6공화국의 핵심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은 김영삼 총재가 3 당 합당 정신으로 돌아가 당시 3당 지도자 사이에 이뤄진 내각제 합의를 지켜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들의 요구는 지난달 11일 정원식 민자당 선거대책위원장을 통해 김총재에게 전달됐다. 

노대통령 직계 내각제 재론… YS 당황

 김총재로서는 당이 다시 내분에 휩싸일 위기상황을 만난 셈이었다. 지난 10월 초 박태준 의원이 민정계를 결속시키며 탈당 명분으로 삼기 위해 내각제 수용을 공약하라고 요구한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선거가 임박한 상태에서 당 내분이 일어나고 이들이 탈당이라도 하면 김총재는 근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네 의원 또한 급박한 상황을 활용해 ‘치킨 게임’을 벌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김윤환 의원은 거중 조정에 나셨다. 내각제론자인 김의원은 “내각제는 떠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통치권자의 의지 · 정치적 여건 · 국민의 의식변화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며 선거를 앞둔 시기에 내각제를 거론하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총재측은 이 사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김총재의 핵심 측근은 “내각제 개헌 문제를 내부적으로 검토 · 협의하고 있다. 김총재가 집권하면 내각제 개헌을 공론화 한다는 기본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 임기 말에 추진하겠다는 일정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일부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민정 · 공화제의 불만을 무마해 당 내분을 사전에 막기 위한 발언이었다. 김총재측은 내각제 개헌을 공론화하는 것은 “선거에 도움이 안된다”는 결론을 내린 지 오래다.

  12월1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도 김영삼 총재는 “대통령선거가 2주밖에 남지 않았는데 내각제 개헌을 거론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라고 말해 선거 기간중 내각제 문제를 공론화할지 모른다는 추측을 일축했다 그러나 그는 토론에 들어가기 전 기조연설을 통해 “집권하면 선거제도를 획기적으로 고칠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말해 중 대선거구제로 변경할 뜻이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이는 기존 입장을 대폭 수정한 것이다. 그는 민자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되기 전 민정 · 공화계가 현행 소선거구제의 변경을 집요하게 주장했을 때 “선거구제 변경은 혁명에 버금가는 일”이라며 거부했다.

  중 · 대선거구제초의 변경을 시사한 김총재의 발언은 내각제를 선호하는 민정 ·공화계를 겨냥한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는 내각제를 선거 전에 공론화할 수 없다. 따라서 당 내분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입장이므로, 선거구제 변경을 시사해 내각제 개헌 정지작업을 한다는 인상을 민정 · 공화계에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대개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소선거구제가 자연스럽고, 내각제 아래에서는 중 · 대선거구제가 어울린다고 말한다.

 노대통령 직계가 내각제 문제를 재론한 것을 보고 김총재는 노대통령이 아직도 내각제 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노대통령이 얼마 남지 않은 임기중에 내각제로 개헌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자 다음 정권에서 라도 이를 보장하도록 족쇄를 채우려고 한 것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가진 것이다. 김총재는 관훈토론회에서 “내가 집권하면 6공과 는 전혀 다른 정부를 만들 것”이라고 선언하고, 후보 경선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공개 지지를 노대통령이 거부한 데 유감을 표명한 점은 유의해볼 만하다.

정주영, 내각제로 민정 · 공화계 유인

 정주영 국민당 후보는 "집권하면 2~3년 후에 내각제를 실시하겠다"고 공언한다. 그가 처음부터 내각제를 생각한 것은 아니다. 10월 초 박태준 의원이 내각제 공약화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민자당을 탈당할 때까지만 해도 국민당은 “내각제를 공론화하는 것은 대선에서 감표 요인”이라며 대통령제를 고수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내각제를 주장하는 신한국당과의 통합 이야기가 나온 11월 초, 국민당은 내각제 반대 입장을 바꿨다. 이는 반 양김 정서를 더욱 확산하고 새 한국당과 민자당의 민정 공화계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 변경이었다. 결국 새한국당 창당에 나섰던 현역의원 7명 중 5명은 창당도 하기 전에 국민당으로 갔다. 국민당은 김복동 의원을 민자당에서 끌어들인 것 외에 일부 민자당 의원을 공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내각제 개헌과 관련해 김대중 민주당 후보의 태도 변화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달 26일자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15대 총선에서 국민이 내각제를 압도적으로 지지하면 남은 임기를 내놓고 내각제를 실시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처음으로 내각제를 수용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내각제 이야기만 나오면 “장기집권 음모”라면서 완강하게 거부하던 김대표로서는 입장을 크게 바꾼 것이다. 12월2일 관훈토론회에서 그는 “순수 내각제든 순수 대통령제든 방향을 분명히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14대 국회 말에 국민투표에 부치거나 15대 총선 때 제시할 수 있다”고 그 방법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김후보의 내각제 관련 발언은 다목적용 포석이다. 그는 우선 내각제를 선호하는 세력이 압도적으로 많은 범여권의 분열을 노린다. 김후보는 자신이 내각제에 관심이 있다는 인상을 주어 여권 내 내각제 선호 세력과의 제휴를 모색하고, 집권 때에는 어느 정파와도 화합해 거국내각을 구성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가 집권하는 데 불안을 느끼는 기득권 세력과 공존할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이미 내각제 개헌을 공약으로 제시한 국민 ·새한국당과 함께 범야권 연합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중도 엿보인다. 

김대중, 공론화 원치 않아

그러나 김대중 후보는 다른 정파가 자신에 호감을 갖게 하되 내각제가 공론화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는 오랜 기간 대통령직을 향한 집념을 불태워온 사람이다. 그는 관훈토론회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순수 대통령제를 지지하며 내각제를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직에 대한 집념을 바탕으로 한 정치행태 때문에 반대 정파로부터 “대통령병 환자”라는 비난을 들어왔다. 그런 점에서 그가 임기를 단축해서라도 내각제를 추진 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은, 그가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었다.

 김후보의 한 측근은 그가 집권하면 내각제를 걸고 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치관측통들은 김후보가 집권에 실패할 경우 국민당과의 연합을 통해서, 혹은 독자적으로 내각제를 급속히 진행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정치적 입지 보전을 위해서 는 내각제가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관측통은 김대중 후보가 민자당 내 동 향을 살피면서 내각제 개헌과 관련한 그의 입장을 재가공해 선거 공약으로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그가 내각제 개헌 여부를 묻겠다는 15대 총선은 96년 3월에 실시되므로 집권 3년 후가 된다. 시기를 광역선거 때(95년 6월)로 앞당기면 임기 2년을 갓 넘긴 시점이 된다. 그렇게 되면 정주영 후보가 말하는 내각제 개헌 시기와 비슷해진다. 개헌 여부를 광역선거 때 묻든가, 아니면 개헌 추진 시기를 거국내각에 일임한다는 식의 카드를 선거 1주일 전쯤 던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 다. 김후보가 이 카드를 들고 나오면 정주영 후보가 내각제를 거론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파문이 클 것이다. 

 이 경우 김대중 후보도 부담이 있다. 그는 내각제 수용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김영삼 후보측으로부터 “눈앞의 이익을 위혜 언제고 말을 바꾸는 사람”이라고 역습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내각제 공론화는 선거 막판에 뜨거운 쟁점이 될 수있다. 내각제 문제는 코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에서 중요 한 변수로 작용할지 모른다. 적지않은 관측통 들이 이번 선거는 마지막 대통령선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변하는 국민의 의식파 더불어 우리나라 권력구조는 점차 내각제 쪽으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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