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을 위한 변명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5.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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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호 교수, 역사 소설 <진시황제>에서 새롭게 해석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은 폭군인가 현군인가. 빛나고 아름답다는 뜻의 皇과 우주의 지배자라는 뜻의 帝를 합해 황제라는 절대 권력의 호칭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그렇게 불리기를 즐겼던 진시황이 역사 소설 <진시황제>(도서출판 예음)를 통해 화려하게 복권되고 있다.

 홍경호 교수(한양대·독문학)는 진시황의 통치 철학을 가리켜 힘을 바탕으로 한 ‘법치’라고 규정하면서 진시황제의 통치 철학이 그의 사후 2천년간 전세계에 통용되었다고 강조한다. 즉 노자와 장자의 무위이정, 공자의 덕치주의는 모두 진시황에 의해 통폐합되고 실용화함으로써 천하통일의 위업이 달성되었으며, 이후 제국의 논리는 모두 그것의 변형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당초 20권 분량으로 예정했던 소설을 3권으로 줄여 출간했는데, 평범한 장사치에 불과했던 여씨가 아들을 진의 황제로 등극시키기까지의 패륜과 술수가 담겨 있는 친권을 제외하고는 진시황이 이룩해 가는 절대 왕권에 초점을 모으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과정은 춘추전국시대를 통해 금수와 다름없이 살던 중국 민중의 삶을 인간의 삶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이며, 만리장성·분서갱유·3천 궁녀·아방궁으로만 인식되던 진시황의 인간과 업적을 새로이 조명하는 것이다. 홍교수는 “진시황은 중국에서 폭군으로 낙인 찍혀 잊혀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학문의 기초인 제자백가를 포괄하여 현실화한 진시황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인간에 대한 집요한 탐색 돋보여

 20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발견으로 평가되는 진시황릉 병마용갱이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일부나마 진시황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현실주의자로서의 시황제가 오늘의 중국사정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시황은 이팔 청춘의 풋과일 인간이 되기 위해 불로장생을 꿈꾸며, 현존하는 세계의 궁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는 북경 자금성의 60배에 가까운 아방궁을 사유화한 인물이다.

 소설 <진시황제>에는 진시황제의 첫사랑이자 장녀였던 여인의 손에 의해 병마용갱이 완성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진시황과 같은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불로장생의 허망한 꿈을 꾸었을 리가 없다는 저자의 시각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대목이다. 그러나 진시황에 대한 저자의 복권작업은 분서갱유를 그리는 대목에서 더 뚜렷해진다. 이 소설에서 진시황은 이데올로기 서적만을 골라 불태웠으며 복서나 잠서 등 생활서는 오히려 비각에 새겨 영구 보존한다.

 <진시황제>가 출판되자마자 화제작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자 자신은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복고주의 바람과 강력한 지도력에 대한 향수 덕을 보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한 인간에 대한 집요한 탐색과 애정, 그리고 첫 권을 들면 마지막 권까지 손에서 떼지 못하게 할 정도로 당의정을 잘 입힌 솜씨 때문으로 보인다. ■

金賢淑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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