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銀 ‘꺾기왕’ 불명예
  • 장영희 기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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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수로는 신탁銀 최다… 근절책은 완전한 금리자유화



지난달 16일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朴恩台 민주당 의원은 서울신탁은행이 ‘92년 꺾기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고 꼬집었다. 피감자로 나와 오른쪽에 도열한 시중 은행장중 서울신탁은행장의 표정은 일순 굳어졌다. 곧이어 박의원은 조흥, 상업은행이 2, 3등을 차지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꺾기는 금융기관이 고객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대출금의 일부를 다시 정기예금 등 금리가 낮은 예금에 들도록 하는 것이다. 구속성예금의 하나인 ‘兩建예금’의 속어다. 일본에서 건너온 양건이란 말은 예금과 대출 두 계정을 동시에 세운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꺾기는 전 금융기관에서 이루어진다.

외은 ‘꺾기왕’은 바클레이즈, 웨스트팩

재무부는 그동안 수차례 금융기관장을 불러 꺾기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예금유치 경쟁이 빚은 그릇된 금융관행이기도 하지만 과도한 꺾기가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국감자료를 보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정부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꺾기는 여전히 건재하다.

박의원을 올 1월부터 9월말까지를 잡아 1등이 서울신탁은행이라고 나무랐지만 지난해 1월부터 올 9월말가지로 넓혀보면 상업은행으로 순위가 바뀐다. 이 은행은 50개 업체에 1천66억원의 구속성 예금을 강요해 감독당국으로부터 시정명령(꺾기를 강요한 금액만큼을 해당업체에 돌려주고 정도가 심한 경우 관련자를 문책한다)을 받았다.

상업은행은 9월27일 열린 저축의 날 수상식에서 시중은행 부문 우수저축기관상을 받아 첫 6연패를 달성했지만 이 속에는 ‘꺽기왕’이라는 불명예가 도사리고 있다. 꺾기가 전혀 없거나 백만원 미만으로 나타난 국민 · 주택 은행과는 좋은 대조를 보인다. 두 은행은 특수은행 부문에서 올해 우수저축기관상을 받았다.

2등은 서울신탁은행으로, 업체 수로는 1등보다 많다. 3~10등은 제일 조흥 한일 외환 한미 신한 동화 중소기업은행 순이다. 지방은행 ‘꺾기왕’은 경남은행이다. 2~5위는 부산 강원 전북은행이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은행 국내지점들도 예외가 아니다. 1등은 영국계 은행인 바클레이즈로 1백10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21개월 동안 38개 은행은 총 5백75개 업체에 4천5백억원의 꺾기를 했다. 문구류를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체의 사장은 올초 ㄱ은행에서 10억원의 대출을 받았는데 ㄱ은행이 제 2금융권에서 자금조성을 해와 금리차를 보전해주어야 했고 여기다 또 꺾기를 당해 20%가 훨씬 넘는 고금리를 부담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자금조성이 낀 경우는 이른바 ‘고난도의 꺾기’로 분류된다. 꺾기수법은 감독당국의 적발을 피하기 위해 지능적이 되고 다양해졌다. 회사채 등 ‘엉뚱한’ 상품을 이용하거나 경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은행도 할 말이 많다. 상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조달금리보다 낮은 수준에서 대출을 해줄 수는 없다. 은행금리는 대부분 규제돼 있어 시장 실세금리와는 격차가 크다”며 꺾기는 실효금리 유지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꺾기를 하지 않으면 역마진이 발생해 손해를 보게 된다는 ‘이유있는’ 항변인 셈이다. 외국에도 ‘보상예금’이라는 꺾기와 유사한 현태가 있다. 미국의 상업 은행들은 대출을 해줄 때 대출금액의 10~15% 예금과 2% 정도의 높은 금리 중 하나를 선택토록 한다는 것이다.

은행감독원은 검사를 통해 꺾기를 꾸준히 지도해 왔다. 꺾기비율이 10% 이상이거나 금액이 크면 시정명령을 내린다. 개중에는 한 업체의 꺾기비율이 70~80%가 넘는 사실이 적발되기도 하지만 거래업체가 3~4천개로 추정되는 70개 은행점포를 검사해보면 이들 점포가 갖고 있는 예금실적(수신고) 중 구속성예금 비중은 5%를 넘지 않는다는 게 은행감독원의 설명이다. 그래도 항상 꺾기가 질타대상인 것은 특히 자금난이 심해질 때 고율의 꺾기가 극성을 부리는 탓이다.

은행감독원 韓奉均 금융개선국장은 “규제만으로 꺾기를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은행이 꺾기를 할 필요가 없어지는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데 그 여건은 완전한 금리자유화이다”라고 진단했다. 진정한 금리자유화가 이루어져 은행과 기업이 돈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금리 수준에 합의하면 꺾기같은 불건전 금융관행은 자연히 사라진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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