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문학
  • 이문재 기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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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억압의 끝없는 몸싸움


서구문학사는 창작 ·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끝없는 싸움의 역사이다. 문학의 본질을 금기 타파에서 찾는 문학이론도 있거니와(숲속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이발사처럼) 문학은 금기를 강제하는 권력 이데올로기 제도 관습 가치관 등과 줄곧 몸싸움을 벌여왔다.

미셸 푸코의 지적에 따르면 유럽에서의 성적 억압은 15세기에 시작된다. 교회가 백성을 장악하기 위해 성적 담론을 고해성사라는 장치 안에 가두고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고해’의 형식이 서양 근대문학의 첫걸음이라고 포코는 분석한다.

“서구에선 작가 구속한 일 없었다”

17세기에 벌어진 사드 백작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급기야 사드를 화형시켜야 한다는 극단론으로 치달았지만, 그같은 분노는 그의 소설 때문이 아니라 그의 문란한 성생활에서 비롯했다.

당대의 미풍양속과 관련한 문학의 외설시비는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 대한 법정 공방에서 시작되었다. 1857년에 출간된 시잡 《악의 꽃》에 대해 당국은 ‘풍기문란’이란 혐의를 씌우고 그 시집에서 문제가 되는 시 6편을 삭제하라는 결정을 내린다. 이어 프랑스 검찰은 《보바리 부인》을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법정에 세웠다. 이때 플로베르는 문학을 사회일반의 가치로 재단하는 것을 반대했고, 보들레르는 자신의 시집을 전체적 맥락에서 보지않고 어느 한 단면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문학에 대한 무지라고 비판했다. 1961년 두 작품은 무죄로 판결났다.

D. H. 로랜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윌리엄 버러스의 《초라한 점심》 등 서구문학의 외설시비는 1960년대에 절정을 이루다가 76년 《초라한 점심》의 판금이 해제된 이후 거의 사라진 형편이다. 작가이면 출판인인 金水鏡씨는 “서구의 외설시비 역사상 검찰이 승리한 경우는 거의 없다. 작가를 구속한 적은 더욱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소설이 발표될 때마다 외설시비에 휘말렸던 미국 작가 헨리 밀러는 순수문학과 도색문학의 경계를 말할 때 자주 언급된다. 서울대 金晟坤 교수(영문학)의 논문 <탈모더니즘 시대의 작가론 · 작품론>에 따르면 1934년 프랑스에서 출판된 밀러의 처녀작 《북회귀선》이 미국에서 허용된 것은 그 27년 후인 61년이었고, 영국에서는 63년에야 햇빛을 보았다.

61년 뉴욕의 그로브출판사가 이 책을 출간하자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어쓴ㄴ데, 로스앤젤레스 법원은 이 책을 판매한 브래들리 스미스를 체포해 재판했다. 솔 벨로우, 노먼 메일러 등 저명 작가들은 즉시 당국의 검열을 비난하고 밀러를 지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때 작가 미러는 대법원에 편지를 냈고 결국 대법원의 간여로 《북회귀선》이 서점에 진열되게 되었다. 김성곤 교수는 헨리 밀러의 문학적 의의를 청교도주의 시대의 청산을 예언하고 50년대 비트 제너레이션의 시조로 등장했다는 데에서 찾고 있다.

외설시비는 아니지만, 문학이 문학 외부의 힘으로부터 ‘간섭’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악마의 시》의 작가 샐먼 루시디의 도피와 은둔은 새삼스럽다. 최근 작가 밀란 쿤데라가 프랑스의 한 계간문예지에 기고한 에세이가 유럽 독서계에 여운을 남기고 있다고 한다. 쿤데라는 이 글에서 이슬람교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루시디를 변호하고 나섰다. 단숨에 모든 것을 심판하려고 드는 인간의 고질적 습성에 반대하는 고유의 도덕 위에 소설은 존재한다고 쿤데라는 강조한다.

한편 문단 일각에는 “한국과 서양문학의 외설시비를 동일차원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이 있다. 자칫 마광수교수를 ‘한국의 헨리 밀러’로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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