增稅 노리다 ‘거품경제’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2.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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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 90년 주가 대폭락 “대장성 · 금융기관 조작이 원인”

 거품경제의 주범은 누구인가. 요즘 일본에서는 세계 최고 경제대국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1급 戰犯’을 찾아내려는 논란이 분분하다. 거품경제는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의 가격이 실제 가치에 비해서 훨씬 부푼 상태를 나타낸 말이다.

 거품경제의 심각성은 부풀려진 자산가격이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거품처럼 언제 터져버릴지 모른다는 점에 있다. 근거는 간단하다. 거품경제 아래서 주식이나 부동산을 사는 사람은 대부분 필요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팔아서 이익을 남기기 위해 산다. 이들은 시세가 최고로 올랐을 때 팔려고 기회를 노리게 된다. 주식이나 부동산 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이와 같은 잠재적인 팔 사람이 늘어나니까 자산의 가격은 일순간에 폭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거품경제에 대한 논의는 지난 87년 10월 미국의 증권시장에서 ‘블랙 먼데이’가, 90년 일본에서 주가대폭락사태가 일어난 후 활발해졌다.

 작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설비투자가 위축되는 바람에 90년의 5.7%에서 3.5%로 줄어들었다. 더구나 91년 6월 이후에는 큰 증권사와 은행이 지하경제에 개입한 대형 금융사고가 잇따랐다. 이는 거품이 터지면서 생겨난 일이라고 분석된다. 사태가 이쯤 되자 일본의 몇몇 언론에서는 “올해 일본경제가 1929년의 미국 경제처럼 거품이 사라지면서 세계 대공황을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주간《東洋經濟》, 91년 8월3일자).

 그동안은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과 시중은행, 상호은행과 신용금고와 같은 금융기관이 거품경제를 야기한 1급 전범 ‘피의자’로 지목돼 왔다. 이들은 금융증권화 추세 속에서 일본의 증권시장이 급격히 커지자 주식 · 채권과 같은 유가증권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유가증권을 사고 팔아서 버는 투기성 이익이 금융기관이 정상으로 번 이자 수익의 절반을 훨씬 웃돌 정도였다. 또 금융기관의 ‘땅을 기반으로 한 영업전략’도 거품을 부풀리는 데 일조했다. 땅값이 많이 오르니까 부동산 관련 대출을 크게 늘렸고, 땅의 담보가치가 늘어나니 다시 대출이 증가됐다.

 물론 일본의 금융기관들이 이처럼 대출자금에 여유를 가지게 됐던 것은 일본은행이 금리를 최대한 낮추는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87년 2월에서부터 89년 5월까지 중앙은행의 공정할인율(시중은행이 할인한 어음을 중앙은행이 할인할 때 적용하는 금리로 금리체계의 중심을 이룬다)은 사상 최저인 2.5%에 달했었다. 당시 한국의 공정할인율은 7 · 8% 수준이었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는 이런 통념과는 달리 거품경제의 주범이 한국의 재무부격인 대장성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일본의 권위있는 월간지 《선택》(92년 1월호)에 실린 ‘버블 연출의 내막은 大藏省 主計局’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그것이다. 대장성이라면 ‘일본 최강의 관료집단’으로 일본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처이고, 주계국은 세금과 재정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로 우리나라의 재무부 세제국과 국고국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대장성 주계국이 주범으로 지목된 것은 이 부서가 거품경제로 가장 큰 덕을 본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거품 때문에 세금 수입이 늘어나 75년 이후 고질적으로 누적되어 온 재정적자를 해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덕택에 90년의 경우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지 않아도 되었다.

 주계국이 저지른 독선적인 ‘거품 일으키기’는 일본전신전화(NTT)의 주가조작이다. 주계국은 이 회사를 민영화하면서 이 회사 주식 3분의 2를 손에 넣었다. 거품경제로 주식시장이 과열되어 있는 한 이 회사의 주식을 팔면 엄청난 매각이익이 쏟아져 들어온다는 계산 아래 주식가격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생긴 거품 때문에 이 회사의 시가총액(주가×발행주식량)은 한때 독일 최대인 프랑크푸르트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을 웃돈 적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각 금융기관이 대장성과 줄을 대기 위해 내부에 ‘대장성 담당자’를 둘 정도였다. 이런 영향력으로 대장성이 은근히 거품경제를 부추기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사고 있다고 이 기사는 지적했다.

 거품경제가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만의 일일까. 신한경제연구소의 申範秀 책임연구원은 “8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증권투자 열기와 뒤이어 등장한 부동산 투기붐이 전형적인 거품경제였다”라고 말한다. 89년 이후 종합주가지수의 35% 이상 폭락과 급냉한 부동산 경기는 거품의 소멸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거품경제의 주범은 누구인가. 한국판 ‘전범 논쟁’은 무의미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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