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누비는 무법 ‘극중 광고’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2.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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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물 협찬 등 방송사 · 업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 시청자만 피해

 어떤 광고심리학자가 이런 실험을 했다 치자. 즉 한 집단에게는 극중에서 특정상품이 극히 짧은 순간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여주고, 또 다른 집단에게는 그 드라마를 전혀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러면 각기 다른 자극을 받은 이 두 집단이 실제로 구매 행위를 할 때, 드라마에 나오는 특정상품에 대해 다른 반응을 보일까.

 이 두 집단이 정말로 그 상품에 대해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려면 여러 가지 변수가 고려되어야 한다. 즉 두 집단의 성원들이 실험이전에 그 상품의 이미지에 어느 정도 노출되었는가. 또 그 실험의 자극 횟수는 몇 번이나 반복되는가, 만약 영향을 받았다면 어느 시점에 구체적인 행위로 드러나는 가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도 극중 상품의 노출은 시청자의 구매행위와 상당한 관련이 이씨는 것으로 추정된다.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의 한 관계자는 “드라마 등에 슬쩍 끼워 넣는 식의 광고는 무방비 상태에 있는 소비자의 잠재의식에 까지 파고든다는 측면에서 광고 효과가 매우 높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다.

“수십 건의 간접선전 의뢰가 밀려온다”
 몇 년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을 거둔 영화 ‘E . T .’에서 꼬마 주인공 엘리엇과 외계인을 연결시켜준 매개물은 초콜릿이었다. 엘리엇은 이티를 만나기 위해 우주선이 불착한 현장에 초콜릿을 뿌린다. 아무도 우주선을 봤다는 말을 믿지 않자 주인공은 상심에 잠긴 채 잠을 청한다. 그런데 엘리엇의 침실로 찾아든 이티. 이티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말문이 막힌 엘리엇에게 천천히 다가가 기다란 손을 내민다. 그리고 그 손에서 빠져나온 것은 바로 낮에 엘리엇이 여기저기 뿌렸던 그 초콜릿이다. 영화를 보고난 관객들에게 그 ‘사랑의 초콜릿’은 강렬한 이미지로 남는다. 한국의 관객들은 그 초콜릿이 어떤 회사 상품인지 잘 몰랐겠지만, 미국 관객들은 그것이 ‘리스’ 초콜릿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미국에서는 초콜릿 리스의 판매고가 엄청나게 뛰어올랐다.

 영화제작자와 초콜릿회사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외국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특정상품이 화면에 나타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애초부터 상업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목적으로 제작되고 전파되는 CM 등 직접선전(또는 직접광고)과는 달리, 드라마나 영화에서 프로그램 중에 녹아들어 선정의 의도를 달성하려는 것을 간접선전(또는 간접광고)이라 부른다.

 간접선전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드라마 중에 특정상품 특정상호 특정장소가 화면에 그대로 나간다거나, 교양정보 프로그램에 서 특정업체와 관련된 정보를 눈에 띄게 상세히 보도한다거나, 방송사 주최행가에 ‘협찬’이라는 명목으로 특정업체의 로고가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화면에 나온다거나, 퀴즈프로그램에서 출연자에게 상을 주면서 “○○가 제공하는 ××”라고 밝히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그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표2 참조).

 방송광고공사 李圭完 박사는 “기업은 기회가 닿는 한 상품을 선전하려들기 때문에 더 많은 광고기회를 확보하려고 한다. 그러나 광고효과가 높은 방송의 경우 광고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기업체 입장에서는 간접선전은 매우 유효한 통로이다.”라고 말한다. 간접선전은 투자비 이상의 광고효과를 낼 수 없는 중소기업들이 선호하는 광고방식이기도 하다.

 사실 방속 제작진들은 업체에 강압적으로 협찬을 의뢰하는 경우는 없다고 주장한다. 한방송인은 “프로그램이 뜬다 싶으면 수십 건의 간접선전 의뢰가 밀려들어 온다”면서 “업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간혹 잡음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한다. 또한 프로그램에 특정업체의 상품이 장소 등이 나가게 되면 경쟁업체로부터 격렬한 항의전화를 받기까지 한다. 여하튼 방송가에는 “여느 사람 집에 가면 어떤 회사 제품으로 도배를 했더라”는 농담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고갈 정도이다. 이런 이유로 문화방송의 경우에는 아예 ‘협찬상품선정위원회’가 조직되어 있다.

 간접선전의 메커니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방송사이다. 경영진은 가능한 한 제작비를 덜 들이고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제작에 사용되는 소품이나 장소 사용 비에 거의 돈을 쓰지 않는다. “우리 제품 좀 써 달라” “우리 업소를 소개해 달라”는 주문이 줄을 서고 있으니 방송사의 태도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규완 박사는 “방송사의 연간 당기순이익만 해도 수십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간접선전으로 물의를 빚는 프로의 경우 제작진이 비난의 화살을 받지만, 그 화살은 근본적으로 방송사 경영진에게 돌려져야 한다”고 말한다.

 간접선전은 업체와 방송사, 그리고 제작진 모두에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유용한제도이다. 그러나 방송의 유통구조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마땅한 소비다, 즉 시청 · 청취자는 간접선전의 메커니즘에서 쏙 빠져 있다.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광고에 노출되기 때문에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법이 만사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다하게 간접선전을 규제할 만한 방법이 없다. 다만 방송위원회가 해당 프로의 제작진에게 주의 · 주의환기 · 개별권고라는 세 가지 방법을사용하고 있을 뿐이다(표1 참조).

1월 안으로 방송심의규정 개정 예정 그러나 문화방송의 ㅇ프로듀서(29)는 “간접선전에 관한 방송위원회의 지적까지 일일이 신경을 쓰고 제작하라는 것은 지금의 방송현실로 볼 때 프로그램을 만들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이처럼 간접선전을 에워싼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간접선전 시비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방송제작진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지난 90년 5월 방송위원회가 이례적으로 ‘TV방송 중 특정상호 기관명 및 상품면의 노출실태에 관한 조사’라는 보고서를 제작, 각일간지에서 이를 기사화한 적이 있다. 이때 구설수에 오른 프로의 담당자들과 방송위원회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는데, 제작진들의 불만은 “방송위원회의 판정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방송위원회가 간접선전을 규제하는 법적 근거는 방송심의규정 26조에 “방송은 의도적으로 특정상품이나 영업소 또는 공연장 등을 선전하는 내용을 포함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마련되어 있을 뿐이다. 방송위원회는 법적 근거의 미비와 방송제작진들의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올 1월 안에 방송심의규정을 개정해 법정최고제재인 ‘사과명령’까지 포함시킬 예정이다. 방송인들은 간접선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경우 일선 제작진들의 창작의욕이 떨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방송이 한국의 대중문화를 이끄는 게 현실이라면, 성급하게 문화에 법의 칼을 뽑기보다는 제작 현실을 인정하고 자율에 맡겨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 제작진들 역시 간접선전의 문제를 문제라고 느끼지 않을 만큼, 그 관행에 익숙해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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