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공포 벗어나자 굶주림 닥친 난민들
  • 워싱턴· 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0.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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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사태로 2백50만명 증가…구호 활동 순조롭지 못해

 요르단 국경 사막에는 최근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빠져나온 외국인들의 천막 도시가 생겨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그곳의 수십만 난민을 돕는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아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이곳에 몰려온 난민은 대부분 아랍인과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등 아시아 사람인데, 서방 선진국 난민이 제 나라에서 보낸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딴판으로 가난한 아시아 나라 출신 난민은 국제구호기관의 도움에 의존해야만 하는 딱한 형편이다.

 오죽하면 요르단 왕실이 긴급 원조를 각국에 요청하면서 “전재준비에만 정신이 빠진 채 왜 난민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가”라고 여러나라를 싸잡아 비난했겠는가.

 난민 문제 이처럼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자 〈워싱턴 포스트〉는 최근 사설에서 2백50만명으로 추산되는 이 난민에겐 적어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전형적인 난민에 비한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면서, 형편이 닿는 나라가 이들을 돕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 사설은 특히 바캉스철이 지난 요즘 유럽이나 일본의 항공회사가 그같은 자선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미군 병력을 실어 나르는 미국 수송기들이 돌아가는 길에 빈 비행기로 가지 말고 이들을 카이로까지만이라도 실어다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내전 당사국들 국제기관 개입에 “간섭 말라”

 페르시아만 위기로 생긴 난민 2백50만명 말고도 지구상에는 약 3천5백만명의 난민이 있다. 유엔 특별정치담당 사무차장 압둘라힘파라가 관장하는 난민대책 계획에 따르면 자국내 내전이나 폭력정치를 피해 외국으로 피신하여 난민이 된 사람이 1천4백43만6천명이고, 제 나라 안에서 살던 곳에서 살지 못하고 싸움을 피해 낯선 곳에 가서 살거나 강제 이주명령으로 거처를 옮겨 뜨내기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약 2천만명이나 된다.

 외국으로 도피한 난민은 그 숫자 파악이 비교적 쉽고, 이들에 대한 구호도 유엔을 비롯한 여러 국제 자선단체가 나서서 조직적으로 펼쳐나갈 수 있지만 제 나라 안에서 난민이 된 사람들은 우선 숫자를 알아내기도 쉽지 않고 구호사업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내전으로 혼란을 겪는 나라들이 자국내 난민문제를 국내문제로 축소해서 다루면서 외국이나 국제기관의 개입을 꺼리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밖에 난민들이 뿔뿔이 흩어져 거처조차 알아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수단과 같은 나라는 오랫동안 내전을 치르면서도 난민을 구호하기 위해 입국을 신청한 외국인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우리 일을 간섭 말라”고 버티는 바람에 25만명의 난민이 굶어 주었다고 한다. 작년에야 겨우 구호단체가 들어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지금 수단에는 3백20만명의 난민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국내 난민이 많은 나라로는 모잠비크(2백만명) 에티오피아(1백50만명) 엘살바도르(1백50만명) 이라크(1백만명) 등이 꼽히고 있으며 레바논 과테말라 니카라과 우간다 스리랑카 차드 등에도 수만명에서 수십만명 난민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10년 가까이 내전을 치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는 소련군이 철수한 지 1년반이 지나도록 나지불라 대통령의 공산정권을 타도하려는 무자헤딘 게릴라군과 정부군의 치열한 싸움이 계속돼 수백만명이 국경을 넘어 이웃나라로 탈출했다. 1천7백만 인구의 85%가 농민이었던 아프가니스탄의 가족 중심 사회가 파괴되면서 도시빈민이 늘어나 수도 카불은 몇해만에 인구가 곱절로 늘어났다.

 삶의 뿌리가 뽑힌 난민 2백만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나지불라 정권은 지금도 소련 원조를 받고 있다. 유엔은 올해 4억달러를 따로 원조금으로 책정, 이들을 도와주고 있다. 그러나 인도 파키스탄 등 이웃나라로 피신한 난민 수백만명이 제 고장을 찾아오는 날에는 얼마나 많은 정착자금이 필요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과테말라에서는 지난 30년 동안의 우파 군사정부군과 공산게릴라간 싸움으로 인구 9백만명 중 50만명의 난민이 생겼다. 정부군이 토벌작전을 벌여 산골마을을 모두 불태워 없애는 바람에 농민들은 살길을 잃게 되었다. 공산게릴라가 자주 출몰하는 어느 지방은 42개 마을 중 3개만 남고 모두 없어질 정도로 마을 불태우기가 철저했다고 한다.

 

모잠바크에서는 하루 20명씩 굶어 죽어

 이렇게 해서 삶의 터전을 몽땅 잃은 농민들은 정부의 재배치 계획에 따라 집단수용소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 농민들은 게릴라와의 관련 여부를 조사하는 신문을 받아야 하는데 이 신문은 짧으면 3일, 길면 반년이  걸린다고 한다. ‘무혐의’가 입증된 농민들은 훈련소에 들어가 석달 동안 사상교육을 받는다. 그런 다음에야 정부가 지정한 집단부락(수용소)에 가서 살 수 있다. ‘모범 부락’으로 불리는 이 수용소는 군대의 ‘보호’를 받아 운영된다. 과테말라에는 이런 곳이 40개 있다고 한다.

 지난 15년 동안 좌익정권과 우파 반란군과의 싸움에서 90만명의 희생자를 낸 모잠비크에는2백만명의 국내 난민과 1백만명의 국외 탈출 난민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20명 꼴로 굶어죽는 사람이 생기고 고아는 20만명에 이른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지난 4년 동안 10억달러 상당의 긴급원조를 해서 고통을 덜어주고 있으며 소련은 따로이 식량원조를 해주고 있다. 우파 모잠비크국민저항운동 반정부군이 10만명의 양민을 살해했다는 내용의 미 국무부 보고서도 나와 있다.

 수백만명의 난민이 고통받고 있는 나라들은 내전이 시작되기 전에는 대개 가난하지만 오순도순 제 먹을 것 제가 만들어 먹으며 평화롭게 살던 농경사회였다. 하지만 정치와 사상 때문에 패싸움이 벌어지면서 국민들은 그 북새통에 일 쫓기고 저리 쫓기다가 끝내 삶의 뿌리가 뽑힌 난민이 되었다.

 사담 후세인이 전쟁의 공포에서 빠져나오려고 기를 쓰고 있는 참담한 현실을 보면서 새삼 4천만에 가까운 난민 문제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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