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국 개방압력 포위망 속
  • 표완수 국제부장 ()
  • 승인 1990.09.2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다녀온 북한 金日成주석

개혁의 청신호일 수도… 남한 단독 유엔가입 저지· 경제지원 요청한 듯

북한의 金日成주석이 2박3일간에 걸친 중국방문을 마치고 지난 13일 귀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이번 訪中은 이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비밀리에 이루어져 그가 중국 어디에 도착해 누구와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아직 공식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례대로라면 앞으로 몇주일이 지나야 사진 몇장과 함께 그의 방중에 관한 이야기들이 비공식 경로를 통해 흘러나오게 될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보도된 내· 외신을 종합해보면 김주석은 9월11일에 중국 동북지구 瀋陽에 도착해 13일까지 그곳에 머물면서 江澤民 중국공산당 총서기 및 중국의 다른 지도자들과 만나 중요 현안들을 논의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의 이번 중국방문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작년 11월 북경방문 이후 1년도 채 안된 시점에서 78세의 노구를 이끌고 다시 중국을 방문했다는 시기의 문제도 문제려니와 무엇보다도 한반도 내부와 주변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남북한과 그 주변의 상황은 지금 전례없는 변혁기에 들어서 있다.

그런 상황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9월4일부터 7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남북고위급(총리)회담 제1차 회의와 오는 26일로 예정된 한· 소 외무장관회담 및 양국의 11월 수교설이다. 이 두가지는 지금 한반도가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상황 속에 들어서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관측통들은 김주석이 중국 지도자들과의 회동을 통해 중국이 남한의 유엔 단독가입 시도를 저지해 주고, 對韓관계 진전을 늦춰주고, 원유공급 증대 등 경제지원을 확대해달라고 요청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현재 경제여건을 볼 때 김주석이 중국측에 원유공급 증대 등을 요청했을 것이라는 관측은 자연스런 추론이다.

최근 들어 소련이 북한에 원유수출대금을 硬貨로 지불해줄 것을 요청하고 對북한 교역에서 적용해온 ‘우호가격’(25% 할인) 적용범위를 줄여나가기로 한 이후 북한은 심각한 원유부족과 외환부족 사태를 맞고 있다. 또한 유엔총회 개막에 임박해서 남한의 유엔 단독가입 노력을 저지해달라는 요청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주석의 이번 중국방문은 위와 같은 단편적인 사안들과 관련이 있다기 보다는 더 큰 줄기의 문제, 즉 북한의 개방 및 변화 가능성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많은 북한 연구가와 관측통은 북한사회의 특수성을 감안, 김주석이 생존해 있는 한 북한의 개방과 변혁은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의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그같은 전통적인 시각만으로 현재 북한이 처한 상황과 그것에 대한 북한의 대응을 충분히 읽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한반도 내외의 상황은 김주석으로 하여금 혁명적이라고 할 만한 발상의 전환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상황의 압력은 최근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9월2일에 있었던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의 평양방문은 주변 압력의 구체적 실례였다. 다음달 16일 평양에서 열리게 될 남북총리회담 2차 회의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한· 소 외무장관은 오는 26일 유엔총회가 열리는 뉴욕에서 양국 최초의 외무장관회담을 열고 수교일정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수교일자는 11월중이라는 게 한· 소 양측의 공통적 견해다(소련 정부기관지 <이즈베스챠>는 한· 소 외무장관 회담후 11월에 양국은 외교관계를 수립할지 모른다고 9월11일 보도한 바 있다).

또한 이미 연 30억달러의 교역량을 갖고 있는 남한과 중국은 9월22일 개막되는 북경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양국간 비공식 관계를 더욱 확대시켜 나갈 것이라는 게 관측통들의 전망이다. 북한의 최대 맹방인 중국의 對남한 실질관계의 확대는 북한의 대내외 정책과 관련, 이만저만 중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와 함께 일본과 미국의 對북한 관계개선 움직임이 최근 부쩍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과 제1야당인 사회당 대표단은 오는 24일부터 북한 방문길에 올라 양국간 연락사무소 교환설치문제를 포함, 광범위한 관계개선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와는 별도로 日· 朝무역회 대표단이 이미 17일부터 평양을 방문, 양국간 교역확대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지난 14일 북경에서 12번째로 북한과 접촉을 가졌으며 스펜스 리차드슨 국무부 한국과장은 내달 16일의 남북한 평양회담이 진전을 이룰 경우 미국도 對북한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우선 양국간 통신개방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한반도 주변국들의 일련의 움직임은 김주석이 좋든 싫든 북한을 개방의 한가운데로 떠밀어내는 결과를 빚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의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다.

문제는 무리없는 사태의 진전이다. 김주석의 중국방문은 오히려 이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수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