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밤무대 떠도는 가난한 재즈 魂
  • 이성남 문화부차장대우 ()
  • 승인 1990.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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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주가들 디스코나 뽕짝 연주로 연명… 세계 유명 연주가 공연은 ‘대성황’

올가을, 세계 유명 재즈 연주가들의 서울 나들이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지난 8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보사노바’의 선두주자인 찰리 버드가 연주회를 가진 데 이어 29· 30일에는 한· 일 문화 교류의 차원에서 기획된 ‘제2회 서울 재즈 트레인’이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개최되는가 하면, 10월 6· 7일에는 팔리아먼트 수퍼밴드와 레이찰스, 비비킹이 연주회를 갖는다.

찰리 버드의 연주회장에서 청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머리와 다리를 흔들거나 박수로써 흥겨운 재즈의 선율에 호응하고 있었다. 굳이 연주회에 가지 않더라도 우리 생활 주변에서 재즈는 쉽게 만날 수 있다. 영적인 신비함을 노래하는 듯한 재즈는 한번만 들어도 독특한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에 광고음악, 영화음악 등에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만화가 이현세의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이며, 한 커피 광고음악은 엘라피츠 제랄드가 부르는 ‘이너 센티멘탈 무드’(In a centimental mood)이다.

그런데 세계 유명 재즈에 대한 높은 관심과는 달리 우리 재즈는 아직 제자리를 못찾고 있다. 음악성으로나 테크닉으로나 현대음악에서 재즈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데도 불구하고 재즈 연주가에 대한 국내 인식은 ‘밤 무대 딴따라’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재즈연주만 고집했다간 일자리 잃기 십상

“재즈를 좋아하는 정도로써 그나라 민주주의를 가늠할 수 있다.” 국내 재즈 연주가들의 이같은 말 속에서 그들의 예술가로서의 꼿꼿한 자긍심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들 대부분은 전문 연주가로서 활동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주된 수입원은 호텔이나 술집 무대로 국한되어 있으며 그나마 이화동의 ‘야누스’, 방배동의 ‘파블로’, 이태원동의 ‘올 댓 재즈’, 압구정동의 ‘네트워크’ 및 ‘B&B' 등 몇군데로 제한되어 있다.

미군 주둔의 영향으로 크게 번성했던 재즈가 이처럼 뒷걸음질친 것은 “6 · 25 이후 트위스트, 고고 그리고 비틀즈 선풍 때문”이라고 원로 재즈인 최세진씨는 설명한다. 그후 록이나 포크 계열이 유행하면서 재즈 연주가들은 “생활을 위해” 시류에 타협한 음악을 해야만 했다. 재즈 연주가들이 업소에서 디스코 접속곡이나 뽕짝 연주를 거부하고 재주 연주만 고집했다가는 일자리 잃기가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재즈를 하면 라면 먹고 살아야 한다” “재즈 연주가의 집은 두달에 한번씩 바뀐다”는 자조적인 말이 나오게 되었다. 방송관현악단의 단원으로 일하던 한 중견 재즈인의 해고 사건은 오늘 한국 재즈가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국내 퍼커션의 권위자인 그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쇼무대에서 가요 반주를 하던중 ‘음악성도 없는’ 신인가수를 향하여 기성을 질러대는 방청석에다 대고 ‘감자’를 먹였다가 끝내 해고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의 대표적인 재즈인으로는 우선 재즈전문카페 ‘야누스’를 운영해온 박성연을 꼽을 수 있다. 또 재즈이론가이자 베이스 연주가인 이판근은 재즈 전공학과는 물론 사설 학원조차 없는 재즈 불모 풍토에서 재즈전수에 앞장서왔다. 그밖에 신관응(피아노) 이정식 김수열(테너색소폰) 강대관(트럼펫) 유영수(드럼) 강태환 이동기(앨토색소폰) 이영경(피아노) 유복성 김대환(퍼커션) 등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재즈 연주인 대부분은 미8군 전속 악단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이같은 사실은 일반인에게 재즈를 미군 부대 음악, 한걸음 더 나아가 퇴폐음악이라는 선입견을 심어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근래 거세게 일고 있는 반미 감정은 재즈 보급의 새로운 장애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재즈 연주가들은 이같은 주장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재즈가 미국 음악이라면 클래식도 서양음악이다. 그렇다면 문학에 있어서도 김동리 박경리만 읽고 도스토예프스키나 헤밍웨이를 읽지 말아야 한다. 예술에서 동양서양을 나누는 것은 소아병적인 발상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한편으로 재즈는 팝송이나 록음악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재즈는 비록 미국에서 발생한 음악이지만 “백인 우월주위에 지배당하지 않고 여기에 맞선 흑인의 대항음악이기 때문에 정서로나 음악으로나 우리 민속음악과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몇몇 재즈 연주가들은 사물놀이와의 만남을 꾸준히 시도해오고 있다. 그러나 서로 상대방의 음악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로 실험적으로 하는 것은 “해프닝처럼 의미없는 것”이라는 지적의 소리도 있다. 자칫 동서음악의 싸움 같은 양상을 띨 수 있는데 앞으로는 “선율적인 결합을 시도해서 새로운 화음 창출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즈 응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

그런가 하면 지난 5일 클래식 연주단체인 서울 신포니에타가 기획한 ‘재즈 팝 프리뮤직과 클래식의 만남’도 재즈계의 관심을 끌었다. 여기에는 재즈연주가 강태환 정성조 유영수 장응규 이영경 등이 참가하여 20여명의 클래식 연주가와 함께 ‘블루 론도’ ‘미스티’ 등을 협연했다. 이 연주를 지켜본 이들은 “클래식과 재즈는 음량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데도 호흡이 상상외로 잘 맞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국내 재즈 연주가들은 한결같이 일본의 재즈 토양을 부러워하고 있다. 미국에 패한 일본은 “미국을 알기 위해” 재즈를 정책적인 차원에서 수용했다. 10여년 동안 방송국에서 재즈를 틀었으며, 재즈의 명문인 미국 버클리대학에 유학을 장려했고, 외국 유명 연주가를 초청하여 자국의 재즈밴드에 참가시켰다. 이제 일본은 “재즈연주가들이 페스티벌에 한번 참가하여 1년을 먹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즈 시장이 커졌다는 것이다.

“정책적인 배려는커녕 청취율이 떨어질까봐 방송에서 재즈를 마음대로 소개할 수도 없는” 우리 현실에서 국내 재즈연주가들이 넘어야 할 고개는 높고 가파르다. 그런 가운데 재즈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재즈의 실용적인 측면을 살려야 한다”는 서울예전 실용음악과 정성조교수의 주장은 눈길을 끈다.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재즈를 공부한 해외유학파 1호인 그는 “현대 사회에서 재즈를 응용할 수 있는 장르는 영화· 뮤지컬· 연극· 텔레비전 배경음악· 광고· 대중가요 등 무궁무진하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재즈인들이 주어진 여건을 불평하기 보다는 스스로 노력하는 장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그는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깊고 푸른 밤> 같은 영화음악과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수퍼스타>에도 참여하는 등 재즈의 실용화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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