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신병원 ‘시설 질환’
  • 글 박성준 기자ㆍ사진 김봉규 기자 ()
  • 승인 1991.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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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ㆍ전문인력 태부족 …요양원에선 의사 1명이 하루 5백명 진료

 “어머니와 올케가 짜고서 나를 강제입원시켰다. 퇴원할 수 있게 해달라.” “가족들이 한달이 넘게 찾아오지 않는다. 연락 좀 해달라.”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에 자리잡은 서울정신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정신병자들의 하소연이다. 이 요양원에 수용된 환자들은 대부분 정신병이 장기화돼 가족들에게조차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이 요양원의 趙五永 원장은 “이곳에 입원한 뒤 가족들의 연락이 끊긴 환자만 해도 90여명에 이른다”고 밝힌다.

 이 요양원에 4년째 입원해 있는 ㄱ씨(32ㆍ여)는 정신병 환자가 요양원에 수용되기까지 걸어왔던 비극적인 인생단면을 잘 보여준다. ㄱ씨가 처음 이곳에 온 것은 지난 87년 7월. 그는 이미 79년부터 정신이 이상해져 서울 청량리정신병원과 사회복지시설을 오가다가 마지막으로 이곳에 수용됐다.

 ㄱ씨는 정말 치유될 수 없는 질병을 앓았을까. 요양원에 수용될 당시 서울 종로구청에서 넘어온 그의 신상기록카드에 따르면 ㄱ씨가 처음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된 것은 79년 4월23일이었다. ㄱ씨는 사흘 뒤 퇴소했다. 그는 그 뒤에도 세차례에 걸쳐 정신병원과 영보자애원 등 사회복지시설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수용기간은 모두 합쳐 보름이 되지 않는다.

 입소한 뒤 사흘도 안돼 퇴원했다면 그것은 일단 환자의 상태가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좋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ㄱ씨는 신상에 관해 물었을 때 입술만 떨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요양원측은 ㄱ씨의 현재 정신상태를 ‘중증’으로 판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두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원래는 증세가 심한 환자가 아니었으나 적당한 치료를 받지 못해 병세가 악화됐을 수 있다. 또는 증세가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기관의 도움을 얻지 못한 채 방치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 어느 경우든 ㄱ씨는 사회로부터 적절한 보호나 치료를 받지 못한 것이다.

정신요양원에 자격 갖춘 복지사 단 1명
 요양원 운영실태는 이곳에서 자체적으로 정해 실시하고 있다는 허울 좋은 일정표만 보아도 쉽게 짐작이 간다. 보건사회부는 정신요양원 환자의 보호수준과 시설환경을 감독하기 위해 ‘정신질환자 요양시설 운영지침’을 내놓았다. 이 지침에 따르면 요양원은 환자의 단순 수용을 지양하고 진료 및 일정표에 의한 적절한 운동과 오락을 실시하게 돼 있다. 서울 정신요양원은 레크리에이션 음악감상 그림그리기 사이코드라마 포크댄스 등의 프로그램을 나름대로 마련해 일과표를 작성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실천에 옮겨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별로 없다. 현재 요양원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 중 정식 자격을 갖춘 복지사는 겨우 한 사람뿐이다. “그림그리기는 예산이 없어서 못하고 사이코드라마도 이를 담당한 사람이 얼마 전 요양원을 떠나는 바람에 현재 실시되지 않고 있다.” 조원장의 말이다. 그나마 꾸준하게 실시되고 있는 프로그램은 돈 들일 필요가 별로 없는 예배시간이 고작이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ㆍ오후에 항상 열리는 이 프로그램은 이사장 趙台永씨와 ‘요양원 담임목사’라고만 소개하는 김용성씨에 의해 번갈아 진행된다.

 정신요양원의 실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적절한 치료ㆍ관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이보다 수준이 높은 정신병원은 어떠한가. 《시사저널》은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지난 12월6일 국회 보건사회위원회 소속 李喆鎔 의원(무소속)과 함께 ‘국내 최대의 시설’을 자랑하는 용인정신병원을 찾아갔다.

 경기도 용인의 숲속에 거대한 성채처럼 우뚝선 용인병원 앞마당에 방문단을 태운 9인승 봉고차가 도착한 시각은 서울 미아리를 출발한 지 2시간이 지난 오전 11시30분경이었다. 방문단을 맞은 병원관계자들은 원장실에서 병원운영 현황을 간단히 설명한 뒤 일행을 우선 서울시립 용인정신병원으로 안내했다. 2만2천평의 대지 위에 세워진 용인병원은 의료법인 용인병원유지재단(이정환 이사장이 76년 설립)이 직접 운영하는 사립병원(용인병원)과 서울시ㆍ경기도로부터 각각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소등 공립시설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서울시립 용인정신병원에 수용돼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은 모두 서울시에서 보낸 의료보호 대상자들로 이들은 등급에 따라 치료비(월 38만원)의 전액 또는 30~40%를 국가에서 지급받는다. 정신병 환자들의 무단 이탈을 막기 위해 굳게 닫혀 있는 출입문을 열고 병동엘 들어섰다. 외부에서 손님이 왔다는 소식이 알려진 듯 누워 있던 환자들은 몸을 일으켜 병상 가운데로 나와 앉았다.

 병원시설과 환자의 위생상태는 좋아보였다. 이들은 모두 깨끗한 환자복을 입었고 용모도 단정했다. 환자를 돌보고 있던 한 간호사는 “모든 환자들을 거들어줄 수는 없으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반드시 보호사의 도움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온돌방 생활에 익숙해 있는 노령의 환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의 병상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환자들은 남녀를 분리, 각기 다른 층에 수용되며 대ㆍ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중증환자들은 간호사 사무실과 가장 가까운 병실에서 별도의 보호를 받는다. 중증환자의 병실엔 철문이 설치돼 환자가 함부로 복도로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 병실 벽엔 보호사와 간호사들이 항상 관찰할 수 있도록 두꺼운 유리창이 설치돼 있다.

 입원환자들은 상태에 따라 ‘적극적 보호와 관찰이 필요한’ 1그룹에서부터 ‘병실활동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5그룹까지 분류된다. 병동 한쪽 벽에 게시판에 자신이 어떤 그룹에 속해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도표가 그려져 있다. 환자들은 이 도표에 따라 전화걸기 편지쓰기 산책 외박 외출 등의 병원활동을 하게 된다. 병원활동중에는 ‘작업요법’이란 것이 있어 환자들은 청소와 봉투만들기 등의 단순 작업을 하게된다. 병원측은 병원활동을 점수로 매겨 ‘난폭한 행동’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외출을 허가해주는 등 적절한 보상을 한다.

 남자 환자들만 수용된 병동 로비에는 바둑판과 장기판이 놓여진 휴게실이 있다. 환자들은 정해진 병원활동 시간 외에는 휴게실에 나와 바둑을 두거나 대화를 나누는 등 자기시간을 갖기도 한다. “통일교주 문선명이 북한을 방문했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되지?” 한 환자의 목소리가 대화 속에서 튀어나왔다. 정신병 환자라지만 여느 정상인과 다름없이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보였다. 병동엔 각층마다 작업실이 있어 한 장에 7원을 받는 봉투만들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벌이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에 봉투만들기에 여념이 없던 환자는 그냥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국내 최고 병원에 5백여명이 ‘정원외 입원’   
 서울시립병원과 바로 이웃한 사립 용인병원에는 ‘국내 최고 수준’의 사이코드라마실과 비교적 상태가 좋은 환자들에게 바깥세상에서 생활할 기회를 줌으로써 사회적응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낮병원’이 운영되고 있다. 어느 정도 병세가 회복된 환자들로 하여금 낮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고 밤에는 바깥에서 생활하게 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미술실 도서실 작업실 등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재활에 알맞는 각종 시설들이 갖춰져 있다. 용인병원은 임상정신의학 연구소를 설치해 사립병원으로선 드물게 매년 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겉보기와는 달리 정신질환자 치료시설로서 용인병원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자못 심각하다. 입원환자수가 병상수를 훨씬 초과하는 반면 이들을 치료할 전문인력은 절대부족해 애를 먹고 있다. 현재 용인병원에 입원해 있는 정신병 환자수는 2천6백88명으로 이 병원이 받아들일 수 있는 환자수 2천1백명보다 5백명 이상이 정원외 입원된 상태이다. 용인병원은 개원 이래 끊임없이 증ㆍ개축을 하며 병상수를 크게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생활공간은 점점 더 비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최고’가 이런 형편이니 다른 치료시설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보사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나해까지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사립 정신병원수는 종합병원 정신과 1백26곳에 비해 훨씬 적은 20곳이었다. 그러나 이들 병원의 병상수는 종합병원 병상수보다 많은 4천9백여개였다. 국내 정신질환자들의 절반을 수용하고 있는 정신요양원은 전국 74곳에 1만7천여개의 병상을 갖고 있다. 정신병원의 대형화 추세속에 정원외 입원과 단순 수용 등 의료환경을 해치는 부작용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입원환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환자가 충분한 치료와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게 된다. 용인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수는 총 37명. 이중 정신과 전문의는 21명이다. 현행 의료법 규정에 따르면 의사 1인당 치료환자수는 20명인데 용인병원의 정신과 의사는 1인당 1백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셈이다. 이철용 의원은 “종합병원 정신과의 경우 전문의 1인당 76.8명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의원은 “정부가 정신병원을 치료를 위한 시설이 아닌 수용을 위한 시설로 유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병원에선 의사 1명이 1백여 환자 치료
 정신병원이 아닌 요양원의 경우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관리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라 정식 치료기관이 아닌 사회복지시설로 운영되는 요양원의 유일한 치료는 촉탁의를 둬 정기적으로 환자를 돌보는 것이다. 촉탁의는 대개 1주일에 한번씩 정신요양원을 방문해 수많은 환자를 주마간산식으로 진료한다. 90년부터 정신요양원 촉탁의로 근무하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金晃年 씨는 하루 5백여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김씨는 “요양원에서 모든 환자가 양질의 치료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이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정신요양원의 운영상 문제점은 우선 정신질환자를 관리할 전문인력에서 나타나다. “수용된 환자수에 비해 인력이 모자라 환자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요양원쪽의 말이다. 서울정신요양원의 경우 현재 근무하는 전체 직원수는 27명. 이 가운데 영양사 경비원 사무원을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환자를 간호하는 사람은 모두 합쳐 6명에 불과했다. 반면 현재 서울정신병원에 수용된 정신질환자수는 5백26명에 이른다. 전문인력이 턱없이 모자라는 이유에 대해 조태영 이사장은 지난 83년 기도원사건이 터진 뒤 요양원까지 덩달아 인식이 나빠져 사람들이 이곳에 오길 꺼리기 때문이라고만 대답했다.

 환자들의 생활 역시 요양원은 병원에 비해 훨씬 열악하다. 이 요양원의 환자들은 침대도 없이 한 방에 10여명씩 수용돼 있다. 또한 이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환자복 대신 운동복 차림이거나 평상복 차림이다.

 요양원을 들어서면 우선 운동장을 둘러싼 높이 3m쯤 되는 철책이 눈에 들어온다. 이 철책은 물론 요양원에 수용된 환자들의 무단탈출을 막기 위한 것이다. 철책은 3층으로 된 요양원 건물 옥상에도 설치돼 있다. 요양원측은 “환자가 옥상에서 갑자기 뛰어내려 죽거나 심하게 다치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단다. 겉에서 본 요양원은 외딴곳에 떨어진 교도소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정신보건법은 수용화 정책의 연장”
 한동안 물밑에 가라앉았던 정신보건 문제가 최근 또다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1월28일 열린 국무회의 석상에서 “범죄와의 전쟁 차원에서 정신보건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힌 金淇春 법무장관의 발언이 학계와 관련 단체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일각에서 김장관의 발언을 놓고 “정신병을 범죄와 동일시하는 몰이해의 소치”라며 강력하게 반발하는 반면 법무부는 “언론에 보도되는 과정에서 다소 오해가 생긴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수유리 크리스찬아카데미하우스에서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이 문제를 집중토론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85년이래 정신보건법을 추진해왔던 보사당국과 최근 문제가 되었던 법무부의 관리가 나와 당국의 입장을 밝혔다. 이튿날 새벽까지 진행된 이 ‘대화의 모임’에선 때때로 날카로운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신보건법이 법무부에서 제기된 이유에 대해 법무부 蘇秉哲 검사는 “정부 법안 의견조회권 차원에서 검토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정부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정신질환 문제를 종합적으로 관리, 해결하기 위해 정신보건법의 제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보사부는 부족한 치료시설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정신보건법을 제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보사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91년 현재 국내 정신질환자수는 93만명, 이 가운데 입원대상자가 10만명이다. 반면 90년 현재 진료병상수는 3만1천5백개로 입원대상환자수에 비해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정신질환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해둘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의학계에서는 “정부의 정신보건법이 ‘인권침해’ 문제는 그만두고라도 단순한 ‘수용화 정책’의 연장”이라고 주장한다. 고려병원 李時炯 박사(신경정신과)는 “정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정신과 병원의 병상수보다 요양시설의 병상수가 훨씬 많은 불합리한 구조에서 막무가내로 정신보건법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태도에는 문제가 많다. 결국 요양원을 병원으로 간판만 바꿨다는 데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신요양원 실태를 잘 알고 있는 한 전문가는 “요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질병을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폐쇄된 공간에 갇힌 채 오랫동안 사회와 격리됨으로써 생활감각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해지거나 삶의 의욕도 상실하게 되는 등 이른바 ‘수용화 현상’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시형 박사는 “전문 치료기관이 아닌 정신요양원을 없앨 수 없다면 차라리 재활시설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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