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국지전, 한국엔 전면전"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1.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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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1월21일 미 하원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위원장·솔라즈)가 북한의 핵무기개발에 대한 대처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연 청문회에 한국 측 증인으로 참석했던 韓昇洲 교수(고려대·국제정치학)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지난 11월21일 미 하원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는데 사전에 우리 정부와 어떤 협의가 있었는가?
미 의회가 초청, 개인자격으로 참석했다. 우리 정부와의 사전 협의는 없었고 자청해서 국방부 등 관계자들을 만났다.

미국 조야의 분위기는 어떠했는가?
강경론자가 다수는 아니지만 청문회에는 꼭 한사람씩 초청되므로 최소한 3분의 1의 소리는 내는 셈이다. 미국과 우리의 차이는, 우리는 무력행사만은 안된다는 생각이지만 미국은 그것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는 점이다.

미국쪽의 강경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미국에는 대북 선제공격론자가 있고 그들의 주장이 신문의 큰 제목을 장식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그 주장이 곧 미국의 정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항상 이 문제를 미국의 입장에서, 세계적 차원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위험 이외의 것들까지 생각한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생기더라도 과거와 같이 중국 소련 등 강대국이 개입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상당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국지전으로 핵확산의 위협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의사에 반한 무력행사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본다.

북한 핵문제에 관한 우리 정부의 입지는 어떻다고 보는가?
기본적으로 핵문제는 미국의 전세계 정책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의 독자적 영역이 크지 않다. 핵문제에 관한 한·미 양국간 의견조정도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도 아니다. 다만 노대통령의 11·8 비핵선언은 우리쪽에서 먼저 비핵선언 혹은 핵부재선언의 필요성을 제기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은 걸프전에 매달리느라 북한 핵문제 처리를 미뤄오다가 이라크의 교훈도 있고 우리쪽의 제안도 있고 해서 최근 들어 집중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비핵선언 가운데‘재처리시설 포기?? 부문은 미국쪽에서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그것은 우리의 이해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베이커 국무장관의 2+4구상은 북한핵에 대한 압력과 어떤 관계를 갖는가?
베이커 장관의‘2+4구상??을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미국은 핵문제에 관한 한 다소 애매한 부분은 있지만 원칙적으로 남북한 당사자의 합의를 존중하고 있다.

북한 핵시설 사찰뿐만 아니라 핵개발 포기까지를 이뤄내기 위한 우리 정부의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일본으로 하여금 북한의 재처리시설 포기를 수교의 전제조건으로 삼도록 요구하고 있다. 좀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먼저 옷을 벗었다는 점이다. 자진해서 재처리시설을 포기한 선례가 없다. 다만 이번 선언이 영구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통일한국에서 핵발전소 수가 30여개 정도로 늘어날 경우 평화적 목적을 위해 재처리시설을 보유할 수 있다. 또 일방적 선언이었기 때문에 국제법상 제약을 받는 것도 아니다.

최근 긴박하게 진행되는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 한·미 양국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아직 한국이나 미국 모두에 체계적이고 통일된 방안이 수립되어 있지 않다. 미국은 최근 들어 행정부와 의회를 통해 방향을 잡으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우리쪽에는 핵정책을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생각하는 메커니즘이나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미국에서는 상·하원이 모두 청문회를 열고 언론이나 전문가들도 구체적 방안까지 논의를 하는데 우리 국회는 이처럼 중요한 문제를 외면하고 있고 행정부도 국민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태도를 가져야 되겠다는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나 언론이 한반도에서의 전쟁불가라든지 무기사용 불원 등 원론적 차원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곤란하다.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미국이 하는 대로 따라가게 되고 우리의 대응도 감정적이고 1차적인 것에 그칠 수 있다.

핵문제는 남북대화의 진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가?
한국과 미국이 핵부재선언을 한 뒤 제시할 남북군사시설 사찰은 핵문제보다는 신뢰와 안보구축 조처의 일환이고 이는 남북대화에서 사실상‘선 신뢰구축 후 군축??이라는 우리의 주장을 실현하는 것이다. 신뢰구축 문제에서는 오히려 북한이 우리의 제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북한이 상호사찰을 주장하지만 실제 협상에 들어가면 오히려 북한이 반대하고 나설 공산도 크다. 과거에 그런 전례가 많았다. 가령 3자회담이나 상호방문 제안이 그랬다. 북한이 제안하고 나왔다가 우리가 받아들이면 저쪽에서 다시 반대하고 나선다. 남북한 상호사찰이 신뢰와 안보구축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당분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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