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 심판대 오른 ‘날치기’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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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개 법안 전원재판부에 회부…결과 따라 ‘위법’이 ‘합법’으로 굳어질 수도

 ‘의사봉 3打’없이 지난 150회 임시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되었던 26개 법률안이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랐다. 지난 10일 야당이 제출한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접수한 헌법재판소는 제2지정재판부(卞楨?·金鎭佑·金亮均 재판관)에 이 사건을 배당했고, 이 재판부는 4일간의 사전심사 결과 14일 전원재판부에 회부함으로써 심판청구는 일단 첫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국회에서 통과된 이 법안들이 하루 아침에 무효가 되느냐, 아니면 역설적이긴 하지만 입법부에 날치기 통과의 ‘권한’까지 부여하느냐, 헌법재판소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헌법에 의한 입법행위의 심판’은 그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평민·민주·무소속 등의 79명 의원과 변호사 33명의 이름으로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헌법소원심판 청구서에는 피청구인이 ‘대한민국 국회 대표자 朴浚圭’로 되어 있다. 150회 임시국회 마지막날이었던 지난 7워14일 오전10시부터 10시32분까지 32분 사이에 야당의원들이 의사진행이라는 공권력에 의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기본권과 입법권을 침해당했다는 것이 청구서의 골자다.

 

헌법소원 대상이다 아니다로 논란

 민자당은 야당의원들의 주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입법활동은 사법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민자당의 논리다. ‘정치적인 쇼’라고 매도하는 소리도 들린다. 헌법기관인 국회에서 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것도 우리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입법권 침해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청구도 헌법재판 제도가 도입된 88년 9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여부는 제쳐놓더라도 이번 사건이 과연 헌법소원의 대상이되느냐 하는 것부터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梁建교수(한양대·법학)는 ‘헌법재판소가 제기능을 다하려면 이번 사건에 대해 헌법판단을 해야 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소원의 요건이 권리침해인데 과연 청구인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권리를 침해당했느냐 하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권리침해의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어 ‘야당이 법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모양인데 워낙 미묘한 사건인 만큼 법적인 해결을 기대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해결을 기대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서울대權寧星교수(법학)도 ”날치기 통과는 법률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한 교수도 이번 사안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지 않느냐 하는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면서 ’국회의원들이 소원 제기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국회의원은 기본권을 가진 국민이기도 하지만 공무원 신분인 까닭에 공권력 주체의 지위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대다수 학자들은 외국의 사례나 우리나라의 대법원 판례를 보더라도 야당이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어렵지 않겠느냐 하는 견해를 보여 이 일이 애초부터 짙은 정치성을 띠고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나라에서 입법 행위가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었던 과거 사례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72년 국회의 국민투표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대법원 판례다. 69년 9월 공화당 및 政友會·무소속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농성하고 있는 야당의원들을 따돌리고 일요일 새벽 2시 국회 별관에 따로 모여 국민투표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적이 있다. 야당은 대법원에 위헌심사를 요구했다.

 “국회의 자주성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사법부가 유·무효를 판단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것이 당시 대법원의 판례이다.

 법조인들과 학자들 사이에는 “법적 절차에 결정적인 잘못이 없다면 국회 자율권을 보장하고 사법부 자제원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헌법재판소가 끼어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와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으로 명백한 위법인데 심사를 포기해서야 되겠느냐”는 논리가 서로 얽혀 있다.

 평민당 인권위원장인 朴炳一변호사 등 이 청구 사건 관계자들은 헌법판단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朴위원장은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의 일부 조항을 限定합헌으로 판단한 예를 들면서 은근히 이번 결정도 상당히 발전된 결과를 낳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상식이 법이다. 조그마한 동창회에 가도 참석자 수를 세면서 성원을 확인하는데 하물며 1개 국가의 국회가 의결 정족수도 안 세고 의안을 통과시킨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헌법재판소가 기각결정을 내린다면 앞으로 국회에서 무슨 절차나 과정이 필요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이 헌법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학 전공학자 ㅇ교수는 이번 사건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위헌법률 심사 대상으로 보는 편이 낫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이번 청구는 일반적인 헌법소원과 거리가 먼 것 같다. 오히려 그들 날치기 법률이 집행되는 단계에서 소송을 제기할 경우, 법률성립과정에서의 위헌적 요소가 심사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그때 위헌법률심사를 청구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는 것이다.

 위헌법률심판은 법률이 그 상위 규범인 헌법에 합치하는가의 여부를 심판하는 것인 데 반해, 헌법소원심판은 공권력에 의하여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에 헌법재판소에 제소하여 그 침해된 권리의 구제를 청구하는 제도로서 양자는 큰 차이가 있다.

 당초 평민당은 피청구인에 박준규 국회의장뿐 아니라 金在光국회부의장과 민자당 金東英원내총무, 그리고 ‘날치기 작전을 총지휘한’ 민자당의 金永三대표최고위원까지 포함시킨다는 방안과, 야당 국회의원만 청구인으로 하기보다는 전국민을 청구인으로 한다는 방안을 검토해보았다고 한다. 또 민주당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측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면 오히려 날치기 통과된 법률안을 합법화시키는 꼴이 되는 것 아니냐”는 견해를 보이는 바람에 청구서 제출이 이틀간 늦어졌다는 것이 평민당 관계자의 말이다.

 야당은 헌법재판소의 헌법판단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나오리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광주보상법과 남북교류에 관한 법률 등 이미 실시되고 있는 법률에 대해서는 가처분 신청을 하지 않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평민당의 박병일 변호사는 이에 대해 “가처분은 일반 사법대상인 만큼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하고 있다. 한 법조인은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된 법률안에 대한 가처분 신청이 유효한지도 논란거리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일반 법조계에서는 헌법소원 심리에는 가처분 제도가 없으나 가처분을 할 수 없다는 명시 규정도 없기 때문에 전원재판부에서 다수의견이 나온다면 가능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일부 헌법학자들도 민사소송법에 근거하면 가처분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정치권의 문제를 헌법재판소가 몽땅 떠안은 격”이라는 헌법연구관 ㅇ씨의 말처럼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류의 헌법소원이 전에 없던 일이기도 하지만 청구서의 내용 중 논란거리가 한두가지가 아닌 점도 우리나라 최고의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를 긴장시키는 요인이다.

 

6개월 이상 지나야 결과 나올 듯

 심판 청구서를 검토해보았다는 법조인 ㄱ씨는 “예상했던 문제점들이 청구서에 모두 언급되었고, 내용 자체에도 커다란 하자가 없다”고 말하면서, 이 사건을 배당받을 주심 재판관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최소한 심판 진행 절차에는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사건 배당은 헌법재판소 내부 기준에 따르며, 순서에 해당된 재판관에게 배당되는 것이 원칙으로 알려져 있다. 헌법재판소의 연구관들은 주심 재판관의 역할이 단순한 ‘교총정리’이상이라고 말한다.

 “헌법재판소는 1표다.” 이 말은 합의체로 운영되는 재판부 심리에서 소수의견도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만큼 주심재판관의 비중이 크다는 말도 된다. 이번 헌법소원심판을 배당받은 卞楨洙주심재판관(61세)은 소수의견을 많이 내는 재판관으로 알려져 있는데, 평민당 추천으로 국회에서 선출됐다. 상임 재판관 중 유일하게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와 노동쟁의 3자개입 금지법 전면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냈던 장본인으로서 법조계에서는 ‘소신있는’ 재판관으로 평가하고 있다. 당시의 헌법판단이 한정합헌으로 나온 것에 대해 “합헌이면 합헌이고 위헌이면 위헌이지 한정합헌은 무엇인가”라는 변재판관의 발언은 젊은 법조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변재판관에게 사건이 배당된 사실에 대해 평민당에서는 “날치기는 명백한 위헌이기 때문에 누가 주심이 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라고 자신만만해 하면서도 일면 “잘되었다”면서 반기는 눈치다.

 헌법소원 심판 절차의 첫단계는 지정재판부의 사전심사다. 이 단계에서 청구서에 하자가 있을 경우 청구인이나 대리인(변호사)에게 補正명령을 할 수 있다. 심사에서는 재판관 3인의 전원일치로 사건을 각하시킬 수도 있으나, 단 1명이라도 이견이 있으면 9인 재판관으로 구성돼 합의체로 운영되는 전원재판부 심리에 회부된다. 이번 야당의 헌법소원은 현재 이 단계까지 통과한 셈이다. 전원재판부의 심리는 6개월내에 결정나게 되어 있으나 구속력 있는 강제규정이 아니라 권고적인 훈시규정일 뿐이며, 사실상 이 기간에는 기초조사도 하기 힘들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6개월 시한을 넘기고 있다.

 헌법재판소에 근무하는 한 법조인은 이름 밝히기를 사양하면서 전원재판부의 심리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대해 “시간이 상당히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시국사건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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