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안에 대유럽 형성”
  • 파리·박권상 편집고문 ()
  • 승인 1991.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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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시라크 파리시장과의 대화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은 예사로운 시장이 아니다. 정치경력 25년에 두 번이나 총리를 지냈고 지금도 프랑스의 제1야당 공화국연합(RPR)의 총재이다. 93년 총선거에서 야당이 이기면 다시 총리로서 미테랑 대통령과 권력을 분담할 가능성이 있고 95년 대통령선거에서의 가장 유력한 후보이다. 15년째 수도 파리를 다스리고 있는 시라크는, 따라서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내지는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가이다.

 그는 작년 10월 《시사저널》초청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하였다. 방문중 高建 당시 서울시장과 서울·파리시간의 ‘우호협력협정’에 합의하였다. 지난 12일에는 李海元 시장이 파리시를 방문, 시라크시장과 공식 서명을 했다. 이로써 서울과 파리는 ‘도시계획 주택환경보호 교통수송’등의 경험과 지식을 교환하고 “문화 교육 및 체육분야에서 협력을 발전”시키기로 하였다. 12일 오후 공식 조인이 있은 후 시라크 시장은 본인과 秦哲洙 유럽지국장을 집무실에 초청, 1시간20분간에 걸쳐 우호협력협정을 비롯한 광범한 문제들에 관해 환담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귀하는 방금 파리시와 서울시간의 우호협력협정에 서명하였다. 여기에 대한 소감과 의의를 말한다면…
먼저 작년 가을 《시사저널》이 나를 초청하여 융승한 대접을 해줘 오늘 우호협력조인에 이른 데 대해 귀사의 최원영 발행인에게 감사드리고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성공하기를 빌며 안부를 전한다. 아시아 전체를 생각할 때 오랜 문명의 역사가 있고 정치적·경제적 힘이 커짐으로써 아시아의 중요성은 더욱 커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랜 문명을 가진 유럽에서도 매우 뜻있는 통합작업이 오래지 않아 결실을 맺음으로써 유럽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관계를 발전시킨다는 의미에서도 프랑스와 한국은 특별히 긴밀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한국은 위대한 나라이고 오랜 문명의 나라이고 경제발전이 빠르고 세계적으로 경제열강 중의 하나이고, 또한 민주주의가 성공하고 있어 금세기 말을 향하여 대단히 중요한 나라가 된다. 프랑스 역시 위대한 나라이다. 동과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나 프랑스와 한국은 장래가 양양하게 열려 있으므로 두 나라의 상호 협력에는 중대한 뜻이 있다. 우리는 경제·기술의 교환을 증진시켜야 한다. 프랑스는 기술의 이전을 거부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불어 좋은 거래를 할 수 있고, 기술은 되도록 나누어 써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시사저널》의 초청을 수락한 것은 이미 존재하는 프랑스와 한국의 우호관계를 더욱 증진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파리와 서울간의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리는 다른 도시들과도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가. 서울과의 관계는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깊어질 것인지.
파리는 극히 소수의 도시와 우호협력협정을 갖고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베를린 카이로 도쿄 그리고 서울이다. 흔히 보는 자매결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몇 사람이 왕래하는 정도의 관계가 자매결연이다. 우호협력협정은 기술협력을 기하는 것이다. 예컨대 쓰레기 처리의 방법에 성공한 경험·기술을 교환할 수 있다. 교통에 관한 해결책을 얻었다면 이를 전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사람과 사람의 교류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와 한국의 젊은이들이 교류하고 상대방을 알고 이해하고 우의를 다지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분야의 책임자와 엔지니어를 서로 파견·교환할 수 있다. 우선 기술분야와 테크놀로지 측면의 인사 교류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도쿄와 기술분야의 전문가 교류를 함으로써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서울과도 똑같이 해나가면 될 것이다. 또 문화·예술의 교류를 도와야 한다. 예술작품의 전시, 오케스트라의 교환연주, 지식인의 상호방문이다. 미술가를 서울에 보내 작품활동을 하게 하고 그 반대로 한국 미술가의 파리방문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도쿄와 교류를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사소한 것이었으나 이러한 것들이 해마다 늘어갔다. 서울과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문화· 예술분야의 교류에 어떤 기대를 걸고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다. 다시 말해 나는 한국을 좋아한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와 역사는 파리에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더 알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경제적인 협력관계 역시 그만큼 원활해질 것이 아닌가. 서울과의 협력관계는 한걸음 한걸음 차분하고 실속있게 밀고 나갈 작정이다.

귀하는 지난 3주간 일본과 중국을 다녀왔다. 동부아시아에서의 변화를 어떻게 느꼈는가?
내가 본 것을 말하겠다. 첫째로 일본 경제의 지속적 성장이 인상적이다.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대만 싱가포르 홍콩 그리고 중국의 일부인 상해에서 광동에 이르는 연안지역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문제는 국가가 균형있게 발전하느냐에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우리는 한국이 더욱 발전하여 지역의 균형에 기여했으면 한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테크놀로지의 대담한 이전에 반대하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는 연안 일대의 경제발전에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정치적인 영역에서는 발전이 없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또 한가지 연안지대의 발전과 내륙지역의 정체는 중국에 또 하나의 실질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무슨 문제인가?
내가 북경에서 만난 중국의 책임 지도자가 말하는데 연안지대의 경제성장률을 낮추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해와 광동에서 만난 지도자들은 그것은 말이 안된다고 펄펄 뛰었다. 이것은 벌써 정치문제로 발전하고 있었다. 경제적인 개방과 정치적인 정체는 큰 모순을 일으킨다고 본다.

중국의 정치적 발전은 눈에 안 보이는가?
그렇다. 나는 江澤民총서기 등 중국 지도자들에게 중국은 민주적인 발전에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 정치범이 석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충고했다. 그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중국의 친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말을 받아들이기는 했다. 나는 인권이야말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가치임을 그들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하였다. 끝으로 중국이 핵기술과 유도탄 등을 위험한 나라들에 수출하는 데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였다.

한반도 정세에 대한 귀하의 의견은?
지난달 남북한 총리간에 극히 작은 진보가 있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찮은 것이지만 없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빨리 화해와 통일에 이르렀으면 하는 희망이다. 공산주의제도가 오래 생존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결국 동유럽에서 일어난 일이 북한에서 일어나리라고 본다. 동유럽에서 일어난 변혁을 누가 예측했는가.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이길 바란다. 민주적이고 시장경제를 채택하는 통일한국이 태어날 것이다. 언제 북한이 붕괴될는지 단언할 수 없으나 오래가지는 못한다. 김일성의 절친한 친궁인 시아누크공조차도 북한의 상태가 오래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일본에 대한 인상은 어떠했는가. 경제대국· 기술대국의 그늘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늘 위협을 느끼고 있다. 특히 기술의 이전에 인색한 나라다.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 TGV(고속전철)기술을 당신네한테 전수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일본 문제는 미국에도 유럽공동체(EC)에도 골치 아픈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를 보라. 프랑스는(미국처럼 자동차시장을 침식당하지 않기 위해) 일본 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조처를 강구해왔다. 그러나 결국은 일본과 심각한 협상을 벌이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을 것이다. 일본의 대외경제 자세는 개방적이 아니다.

유럽통합 방법을 놓고 손발이 잘 안 맞는 것 같다. 무엇이 문제인가?
대단히 어려운 문제가 많다. 그러나 한걸음 한걸음 발전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큰 문제는 12개 회원국간의 관계를 심화시키고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작년부터 동유럽 나라들이 들어오겠다는 것인데 언제까지 유럽공동체가 문을 닫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들이 유럽공동체에 들어오게 되었다. 모두가 문제이다. 12월에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에서 유럽공동체 정상회담이 열리는데 정치 통화 방위의 통합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동유럽 나라에 문을 여는 문제를 두고 토론이 있을 것이다.

유럽연방에 대한 비전을 말해달라.
내 개인적인 비전은 20년 이내에 ‘대유럽’이 형성되리라는 것이다. 이는 소련 경계선까지의 유럽 대통합이고 약 5억의 유럽 사람이 한가족이 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막강한 軸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강한 아시아 태평양의 축이 성립될 것이고….

유럽공동체의 정치적 통합에 한계가 있지 않은가?
독립된 주권국가간의 가장 밀접하고 단단한 동맹체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10년 이내에 단일통화, 완전히 통합된 단일시장이 되고 국경선이 없고, 안보에 있어서는 서방동맹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미국과 연결되는 유럽방위체제가 이루어질 것이다. 유럽이라는 기둥과 미국이라는 기둥이 연결되는 새로운 동맹체제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미국의 영향은 줄어드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첫째 미국은 경비가 많이 드는 문제 때문에 유럽에서 병력을 철수시킬 것이다. 둘째 유럽이 통합됨으로써 충분한 힘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미국의 영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본다.

회원국의 주권은 보존된다는 테두리 안에서 유럽연방제를 지지한다는 말인가. 영국 보수당의 주장처럼.
그렇다. 향후 50년간은 그럴 것이다. 우선 언어가 다르지 않은가. 영국 보수당 정책과 우리 당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우리는 보다 통합지향적이다.

소련의 장래가 불투명하고 세계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다.
나는 9월에 소련에 가서 쿠데타 직후 고르바초프와 옐친을 만났는데, 결론적으로 심각한 우려를 갖게 되었다. 경제사정은 형편없고 대부분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이 분리지향적인데 2만5천개의 핵무기가 산재하고 있다. 누가 진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경제적·생태적 그리고 심리적 재난이 겹치고 있다. 중국과 달리 우선 당장 먹을 것이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 급한 문제다. 어떻게 될 것인가. 중무장된 나라인데, 안정이 안되고 있다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이다. 혁명을 막아야 하고 지리멸렬을 막아야 한다. 슬라브 중심의 새 국가조직이 태어나고 회교공화국들은 떨어져나갈 것이다.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엊그제 헌법을 고쳐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사정은 정부쪽에 별로 안좋다. 경제형편이 나쁘고 성장률이 1.5~2%에 불과하고 3백만 실업자도 노동인력의 10%이다. 늘어나는 이민문제가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93년 3월 이전에 있을 총선거에서 사회당이 진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헌법개정을 들고 나온 것이다. 나는 미테랑의 주장에 원칙적으로 반대 안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히 하지 않고 총선거 몇 달 전에 개혁에 착수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정치책략이 숨어 있다. 우리는 정치적 책략에 반대투쟁을 할 것이다. 사회당은 변한 것이 없고 선거에서 이기자는 것뿐이다.

다음 총선거에서 야당이 이기면 귀하는 다시 권력을 분담하는 총리로 돌아가는가?
아니다. 나는 두 번이나 총리를 했다. 그이상 원치 않는다. 아마 에두아르 발라뒤르가 될 것이다.

대통령선거는 95년 아닌가?
93년 총선거에서 사회당은 질 것이고, 지면 미테랑은 아마도 대통령직을 그만둘 것이다. 아니면 헌법을 개정하여 임기는 5년으로 단축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되기를 빈다.
그것은 신의 뜻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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