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하게 계산된 도박
  • 유정열(한국외국어대교수·중동정치) ()
  • 승인 1990.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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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권 패권 장악, 전후 경제난 해소 등 다목적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7월 중순부터 對쿠웨이트 정치공세를 본격적으로 개시했다.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가 석유수출기구(OPEC)의 석유생산 쿼터를 위배, 과잉생산함으로써 연초 배럴당 20달러를 웃돌던 원유가격을 6월말 현재 13달러 60센트로 하락시켰다고 비난하고 ,쿠웨이트가 국경분쟁 지역에서 24억달러어치의 원유를 채굴해갔다며 이의 배상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던 것이다. 쿠웨이트의 경우 하루 1백50만배럴로 책정된 쿼터를 50만배럴이나 초과생산하고 있다는 게 이라크의 주장이었다. 이에 맞서 쿠웨이트는 7월20일 “이라크의 비난은, 이라크·이란戰 전비의 채권국에 대한 채무불이행이 목적이다”라고 역공세를 취하였다.

 쿠웨이트와 이라크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어가자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려은 즉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라크·쿠웨이트 분쟁 해결을 위한 회담을 열 계획이라고 7월24일에 발표했다. 7월26일에 개최된 OPEC회의는 이라크의 압력을 받아들여 유가를 배럴당 3달러 인상키로 합의하였고, 8월1일에는 사우디의 중재로 제다에서 쿠웨이트·이라크 양국간의 회담이 개최되었으나 2시간만에 결렬되었다. 그로부터 24시간 뒤에 그동안 국경에 집결해 있던 10만 이라크군은 3백50대의 탱크를 앞세우고 쿠웨이트로 진공해 들어갔다.

 이라크와 쿠웨이트간의 국경선은 양국간에 합의된 조약에 의해 확정되 있지 못해 항상 불씨가 될 소지를 안고 있다. 이 지역은 오토만제국 지배하에서 영국지배로 넘어와 있다가 이라크는 58년에, 쿠웨이트는 61년에 각각 영국통치로부터 독립했는데, 61년 영국세력이 철수하고 쿠웨이트가 독립하자마자 이라크의 군부독재자 카셈 정권은 역사적 근거를 내세우며 쿠웨이트 전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다. 즉 오토만 제국 통치시대에 쿠웨이트는 바스라(Basra)주의 한 구역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라크의 위협에 속수무책이던 쿠웨이트는 영국에 지원을 요청, 61년 7월에 파병된 영국군에 의해 허약한 쿠웨이트 신생정부는 이라크의 침공을 억제할 수 있었다.

 그후 쿠웨이트는 역대 이라크 정권과 국경선의 최종적인 획정과 조약체결을 위해 노력했으나, 이라크측의 적극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다. 바트당 정권은 카셈처럼 쿠웨이트 전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하지 않았으나, 73년 3월에 이라크의 중요 항구인 움 카스르 앞에 위치한 전략요충인 와르바와 부비얀 구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여 쿠웨이트를 침공해 들어가, 쿠웨이트의 어려 국경초소를 점령한 바 있다. 74년에서 76년 사이에 이라크는 이 두 섬에 대한 영유권을 계속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는데, 이라크의 주장은 두 섬이 해군기지인 움 카스르항으로의 안전 통행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라크는 쿠웨이트인들이 양국간의 불확실한 국경분쟁지역을 드나들면서 석유를 채굴해간 것이 문제의 발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라크·이란 전쟁 발발 후부터 이 지대에서 쿠웨이트인의 석유채굴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쿠웨이트의 對이라크 전비지원으로 당시에는 문제시되지 않았으나, 전후 쿠웨이트의 부채상환 요구가 이라크를 자극한 면도 있는 것 같다.

 정치·전략적인 면에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다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란과의 평화무드를 타고 페르시아만 건너 보수적인 페르시아만협력협의회(GCC)의 6개국(쿠웨이트 사우디 바레인 오만 아랍에미리트 카타르)에 대해 분명한 정치적 경고 신호를 보낸 것이며, 바트당이 지향하는 이라크 중심의 혁신적인 정치노선과 후세인의 세력확대 의도를 확인시켜준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어느 역내국가의 도전도 불허하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쿠웨이트와의 국경문제와 두 섬 문제 등 실질적인 영토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페르시아만 패권을 장악해보겠다는 것이다 .지역 패권자로서 페르시아만의 경찰역할을 해왔던 팔레비 정권의 몰락으로, 무질서해진 이 지역 권력구조의 재편성 과정의 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쿠웨이트 침공의 또다른 목적은 경제·재정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이라크는 전쟁으로 인해 8백억~9백억달러의 외채를 안고 있는 데다 아직 주요 산업시설은 복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복지향상, 1백만 대군에 대한 처우문제 등 기본적인 겨제문제도 간단치 않다. 대외채무와 전후 복구에 필요한 재원조달과 경제난 해소의 돌파구를 무력으로 해결해보겠다는 것이다. 즉 GCC 국가들로 하여금 채무를 포기하게 만들고, 쿠웨이트와의 국경지대 및 사우디와 이라크 사이의 중립지대에 있는 유전을 장악해보겠다고 계산했는지도 모른다.

 이번 이라크의 군사행동은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온건 아랍국가들의 결속을 촉진시킬 것이다. 이는 중동평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상황이다. 또 GCC 국가들은, GCC의 안보·군사기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을 것이며 안보협력기구로의 탈바꿈도 시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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