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압력 앞에 벌거벗은 한국농업
  • 박성태 (서울경제신문 기자) ()
  • 승인 1990.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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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라운드서 보호정책 철폐 등 타결 조짐… 정부는 뒤늦게 대책마련에 ‘허둥’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의 타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농산물수입개방문제에 다시 비상이 걸렸다.  농산물수입개방뿐 아니라 국내농업정책 전반을 수정해야 할 위기가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농산물수입개방 압력은 88년말부터 본격화 되기 시작, 한·미간 또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이사회에서 중점 논의사항으로 부각됐다.  지난해 5월 한·미 통상협상이 비교적 원만히 타결되고, 국제수지(BOP)조항을 졸업하면 GATT 이사회에서 농수산물수입개방 유예기간을 8년이나 얻어내 적어도 오는 97년 7월까지는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UR협상이 오는 1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각국 무역협상위원회(TNC)를 끝으로 타결될 전망이어서 농산물수입개방과 농업보호정책 철폐 압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반대입장 보였던 EC 등이 방향 선회

  UR협상은 서비스·농산물 등 새로운 무역 관심분야가 등장함에 따라 무역규범정립의 필요성이 생기고 GATT원칙 위반사례 증가로 GATT의 기능이 약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열리는 것이다.  지난 86년 9월 우루과이의 푼타에스터市에서 개시가 선언돼 올연말까지 4년간 협상을 벌이도록 돼 있는 GATT의 여덟 번째 다자간 무역협상이다.  UR의 주요협상분야는 농산물·지적소유권·열대산품 등 14개 상품협상그룹과 서비스그룹 등 15개분야인데 초미의 관심분야는 농산물.  농산물그룹협상은 전세계 1백25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데 각국의 농산물교역을 대폭 자유화하기 위한 것이 그 취지이다.

  농산물그룹협상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농산물수출국과 수입국간에 이해차이가 현격해 협상초기부터 심한 의견대립을 보여 타협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표류해왔다.

  미국과 캐나다·호주 등 농산물수출국으로 구성된 케언즈그룹은 농산물교역의 완전한 자유화를 주장했다.  반면에 유럽공동체(EC) 국가들은 기존의 농업보호정책체계를 인정하되 품목간 불균형을 시정하고 점진적으로 수출보조금을 감축하자는 입장이었다.

  또 한국·일본 등 주요 농산물수입국들은 국내농업기만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비관세 또는 최소한의 농업보호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식량안보 등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NTC)을 강조, 기초식량의 1백%내지 최저수준의 자급을 내세워왔다.

  이러한 입장차이로 타결 기미가 보이지 않던 UR협상이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G-7정상회담에서 농산물보조금을 점진적으로 철폐키로 합의한데다, 12·13일 양일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UR 농산물그룹회의에서 드쥬 의장의 합의초안을 농산물 수출국들이 대부분 받아들이기로 잠정합의함으로써 연말 타결 가능성이 놓아졌다.  드쥬 의장이 그동안 협상과정에서 수렴된 각국의 의견을 종합, 직권으로 작성해 이번 회의에 상정한 초안은 △농업보호정책철폐 △국경보호조치의 관세로의 일원화를 주요골자로 하고 있는데 미국 등 농산물수출국들의 입장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우리나라·일본·오스트리아 등 몇몇 나라만이 이 초안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을 뿐 그동안 반대입장을 보였던 북유럽·EC 등이 종래의 입장을 변경, 미국의 주장을 수용하고 나서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있다.  이 초안은 궁극적으로는 모든 보호정책을 철폐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 초안 중 또하나 우리를 불안케 하는 것이 국경보호조치(수입장벽)의 점진적인 감축. 이 역시 농업선진국들이 요구해온 ‘전면철폐와 관세로의 일원화’보다는 약화된 것이지만 어느 시점에 가서는 수입제한 등 국경보호조치를 철폐하고 관세로 일원화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온국민이 머리 맞대고 대비책 생각해야

  만약 이 초안대로 UR농산물협상의 결론이 난다면 우리나라의 농업은 내년부터 그 기반이 뿌리채 흔들릴 것은 틀림없다.  앞으로 몇 년내로 추곡수매제도·농수산물가격안정 대사업·작목전환비지원 등 모든 국내농업보호정책의 시행이 금지되고 우리의 주곡인 쌀과 농촌의 주소득 작목인 쇠고기마저 개방해야 될 날이 멀지않게 되고 만다.  실로 상상하기조차 싫은, 우리 농업을 완전히 枯死시킬 두려운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두려운 사실은 이 엄청난 농산물교역 여건변화를 보면서도 우리정부와 언론, 그리고 학계가 무관심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정부와 언론들은 아무 반응이 없는데 왜 디렉터 金만 그렇게 안달입니까.” “적어도 UR농산물협상에 관한 한 디렉터 金만 오우케이하면 다 되는 것 아닙니까!”

  이번 23차 농산물그룹회의 우리측 대표로 참석했던 농림수산부 농업협력통상관 김정용국장은 “외국협상대표들의 이런 빈정거림이 무엇을 뜻하겠느냐”면서 정부와 언론의 무관심을 꼬집었다.  김국장은 “세계각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UR협상의 추이에 대해 많은 우려와 관심을 가지면서 대책을 강구해왔다.  무엇이든지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수습하려는 우리의 그릇된 자세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막는 사태를 불러일으킬까 두렵다”고 걱정했다.

  정부는 지난 18일에야 盧泰愚대통령 주재하에 경제장관들이 UR에 대한 부처별 대응방안을 보고하는 등 뒤늦게 허둥거리고 있다.  汎부처적인 밀착대응이 너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부·학계·언론계 등이 모두 합심해 UR협상결과에 대비해야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만약 “각종 보조금을 철폐하라”는 농산물 분야협상이 타결될 경우 정부가 최근 착수한 농어촌발전종합대책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형편이다.  쌀·보리수매(이중곡가제)는 물론이고 각종 영농 및 營漁 자금저리융자, 농어업자재에 대한 零세율적용 등 불가능해질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난해 GATT 국제수지조항 졸업으로 오는 97년까지 대부분의 농산물시장을 추가 개방해야 하는 것과는 별도로 보조금까지 없애고 모든 비관세무역장벽을 철폐한다면 국제경쟁력이 거의 없는 국내농업은 결정적 위기에 부닥칠 것은 뻔한 일이다.

  정부는 실로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할 시점에 있다.  농림수산부는 △드쥬 의장 초안을 거부하고 협상결과를 거부하는 방안 △드쥬 의장 초안 범위내에서 우리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협상에 적극 임하는 방안 등 3가지를 놓고 조만간 우리의 협상전략을 짤 계획이다.

  이와 함께 국내농업정책을 가격지지정책에서 소득정책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관련법규 및 제도를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소득보전 및 생산기반확충을 위한 투자 및 예산지원확대도 아울러 실시키로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적 개혁은 돈줄을 쥐고 있는 재무부나 예산당국인 경제기획원의 협조없이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농림수산부 혼자만의 메아리로 그칠 공산이 크다.  어쨌든 UR농산물협상이 몰고 올 엄청난 파장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부는 농산물협상에 대한 기본입장, 협상결과의 수용에 대한 농민·소비자 등 전체 국민의 합의를 도출해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텔레비전토론회·공청회·간담회 등을 통한 여론수렴의 과정을 거쳐 UR협상의 중요성과 심각성에 대해 국민들의 인식을 높여주어야 한다.

  몇 대 정도 맞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맞는 매하고 전혀 무방비상태에서 맞는 매하고는 매의 强度는 같더라도 느끼는 것은 천양지차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것이다”라는 속담을 생각하며 지금부터 UR협상에 온국민이 대비책을 강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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