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하층 욕구불만이 ‘극우’로
  • 한종호 기자 ()
  • 승인 2006.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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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체제 종식으로 혼란에 빠진 쪽은 좌익뿐만이 아니다. 70년대 이래 서유럽사회를 지배해온 신보수우익 이데올로기도 위기에 빠졌다. 더구나 그것이 현실정치의 이념적 토대라는 점에서 신보수주의의 위기는 서유럽 정치의 전반적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종말론적 폐허 위를 파시즘의 악령이 떠돌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건 냉전 이데올로기는 오랜 기간 서유럽사회에 정치적 ‘안정’과 번영을 제공했다. 60년대 급진주의로 인한 전통적 권위의 쇠퇴와 민주주의의 ‘과잉’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신보수주의는 냉전의 토양 위에서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종교·가족 등의 전통적 가치를 옹호했다. 그런데 냉전의 얼음장이 걷히면서 모든 합의가 깨졌다. 냉전시대의 정치체제는 더이상 제대로 기능할 수 없게 됐고 경제는 악화일로이다. 소수 민족은 독립을 요구했고 기성정치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은 새로운 대안을 찾아나섰다. 경제적 타격을 참지 못한 중·하층민들은 앞다퉈 극우단체 회원이 됐다. 작년과 올해 영국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 신보수주의 정당이 모두 선거에서 패배하고 극우정당이 새롭게 득세했다. 미국에서는 민주·공화 양당구도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들 사이에 ‘페로 선풍’이 불었다. 유권자들은 보수주의니 자유주의니 하는 기존의 틀에 근거한 정치적 선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미국 보수진영의 탁월한 이론가인 케빈 필립스는 저서 《부자와 빈자의 정치》에서 탈냉전기의 정치현상을 ‘프러스트레이션 폴리틱스’라 불렀다. 대중의 욕구불만을 배경으로 한 정치라는 뜻이다. 이같은 불만의 정치는 근본적 정치개혁을 담당할 강력한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강자대망증후군’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요즘 러시아에서는 <잃어버린 러시아>란 영화가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이 영화는 1906년 제정말기의 독재자 스톨리핀을 진정한 개혁자로 묘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민족주의자·전통적 공화주의자·미국 제일주의자임을 자칭하고 나선 부캐넌이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케빈 필립스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20년대 말 견디기 힘든 현실을 배경으로 등장한 히틀러의 전례가 되풀이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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