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 재산 환수 ‘큰걸음’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4.09.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회 법사위 ‘민족 정통성 회복 특별법’ 상정

일제가 국권을 강탈한 1910년 한일합방일로부터 만으로 84년째를 맞은 8월29일, 국회 법사위에는 이색 법안이 상정됐다. 법안 이름은 ‘민족 정통성 회복 특별법’으로, 여야 국회의원 1백86명의 찬성 서명이 따라붙었다. 제목만으로는 다소 추상적인 인상을 주는 이 법안의 알맹이는 사실상 이완용 등 민족 반역자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자는 특별 입법이다.

 이 특별법은 〈시사저널〉이 92년 경술국치일에 발행한 제148호 커버 스토리로 처음 세상에 알린 ‘이완용 증손 재산상속 연쇄 소송’ 기사 내용이 민족 정기를 둘러싸고 사회적 파문을 던져 온 끝에 그 마지막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다. 당시 이완용의 증손 이윤형씨가 변호사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매국의 대가로 조성한 선대 재산을 남몰래 상속받아 나가던 과정이 〈시사저널〉보도로 파헤쳐진 후, 국내 사회단체들은 ‘이완용 후손 재산상속 저지를 위한 백만 서명 운동’을 벌였다. 이들이 지난해 초 서명명부를 국회에 제출하자, 곧이어 국회 안에 ‘이완용 재산 국고환수 추진 의원 모임’(의원모임)이 결성됐다.

 민자·민주 의원 각 10명씩 20명으로 출발한 의원모임은 국회의원 전체로 문제의식을 확대하면서 특위를 구성해 특별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벌여왔다. 지난해 7월 제헌절을 기해서는 국회에서 법학자·역사학자 등 전문가를 주축으로 한 ‘이완용 명의 토지재산 국고환수 추진을 위한 공청회’를 열어 특별법 제정의 법리적 기초를 다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 1백86명으로부터 찬성 서명을 받은 의원모임측은 법안소위(위원장 장기욱 의원)를 구성해 특별 법안을 만든 뒤 지난해 12월17일 국회에 제출했다. 정기국회가 문닫을 시점이었기 때문에 법안 상정과 심의는 올해 국회 회기로 넘어왔다. 심의 시작 날짜도 이 법안의 상징성을 고려해 경술국 치일인 8월29일로 잡았다.

이완용 증손 이윤형씨 잠적
 한편 대리인 소송을 통해 선대의 재산을 몰래 상속받아 오던 이완용의 증손 이윤형씨는 이 사실이 보도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뒤 국내외를 오가며 피신생활에 들어갔다. 격분한 국민들의 규탄 여론 때문이었다. 이완용 명의의 재산상속 저지 움직임이 국회에까지 비화하자 이윤형씨는 지난해 8월 특별법 제정을 주도하던 민주당 김원웅 의원에게 대리인을 보내 자신의 입장을 전달했던 것으로 확인된다(아래 인터뷰 참조). 당시 이는 국회와 정부가 이완용 재산을 국고로 환수한다면 이를 반환할 뜻이 있다고 전달했다고 하다. 그러나 이후 그는 연락을 끊고 잠적한 상태이다.

 의원모임측은 이윤형씨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완용은 물론 을사오적 등 매국 수뇌부 전반으로 이 문제를 확대해 법안을 마련했다.

 이번에 국회 법사위가 심의에 들어간 특별법은 그 처리를 둘러싸고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법의 핵심이 ‘소급입법’이기 때문이다.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49년에 설치했던 반민특위가 사실상 강제로 해산된 이후 법을 통한 민족 정기 회복 노력은 번번이 소급 입법 불가라는 논리로 잠재워져 왔다. 따라서 이번 특별법 역시 소급 입법 불가라는 법리적 반대론과 맞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의원모임측은 이에 대비해 ‘반인륜범 및 전범, 민족 반역자 처리 문제는 국내법적 한계를 적용치 않기로 한다’는 유엔 협약(1968)과, 이를 통해 지금도 민족 반역자를 소급 입법을 뛰어넘어 처리하는 프랑스 등 국제 사례를 조사했다. 결국 특별법 제정 논리를 치밀하게 준비한 이들의 움직임은 광복 50주년을 내다보는 시점에서 민족 정기 회복이라는 해묵은 숙제를 정치권에서부터 뜨거운 쟁점으로 끌어내는 촉매제 구실을 할 전망이다.
丁喜相 기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