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 칼럼] 방송은 점령할 고지가 아니다
  • 본지 칼럼니스트 · 서울대교수 ()
  • 승인 1990.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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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보처가 마련한 방송관계법안으로 인해 고조되고 있는 위기감은 권력과 언론과의 관계를 새삼 성찰케 합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언론과 권력간에 합리적 긴장관계가 형성됩니다. 언론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을 때마다 정부시책은 합리적으로 향상됩니다. 언론도 제4부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시청자와 독자의 정당한 요구에 민감하게 대응합니다. 그러나 비민주국가에서의 양자간의 관계란 '죽느냐 아니면 죽이느냐' '먹느냐 먹히느냐'의 살벌한 관계로 악화되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반민주적 권력일수록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언론을 장악ㆍ통제ㆍ정복하려 듭니다.

 쿠데타가 일어났다 하면 으레 방송국이 제일 먼저 점령당합니다. 방송매체가 전국민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인쇄매체보다 더 넓고, 더 즉각적이고,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비민주적 정부일수록 방송언론의 자율성을 두려워 하며 방송의 공영적ㆍ공익적 기능을 경계합니다. 그것은 권력의 부끄러운 기득권이 공영방송에 의해, 방송사의 자율적 운영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입니다. 온갖 편법을 구사하여 방송언론을 단단히 쥐틀려는 군력 의지가 그래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언론사폐쇄, 방송사통폐합, 언론기본법 같은 악법제정, 그리고 언론인해직과 탄압 등의 악랄한 방법을 동원합니다. 이 같은 권력의 횡포르 5공에서 진절머리나도록 겪지 않았습니까?

 

"권력이 언론을 장악해서는 안된다"는 6共선언의 허구

 6공에 들어와서는 어떻습니까? 권력은 언론을 장악해서도 안되고 장악할 수도 없다는 장엄한 선언을 앞세웠던 6공당국은 이번 방송관계법개정안을 통해 그 본색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지난 2년간 겉으로는 방송언론의 자율성 신장과 공영성 향상을 묵인하는 듯했습니다만, 속으로는 그 前정권과 별다름 없이 방송자율화와 공영화에 대해 심히 불편한 심기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2년전의 MBC사장 임명파동에 이어 이번의 KBS사장 임명파동을 겪으면서 당국은 방송사의 민주적 운영의 추세, 특히 노조의 영향력 증대의 추세를 반드시 꺾어놓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한 듯합니다. 전두환정권때보다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좀더 객관적이고, 좀더 독립적이며, 좀더 공정하게 발전하고 있음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그런데 공보처가 작년 연초 국가방송제도 연구위원회 설치를 구상하면서부터 이 같은 방송추세에 대해 그 심기를 불편함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새로운 방송관계법개장안을 전격적으로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습니다. 방송언론 고지를 탈환하겠다는 지극히 반민주적인 발상과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방송위원회를 한낱 방송심의기구나 윤리위원회로 격하시키면서도 그 위원회에게 제작 중지 명령 등을 내릴 수 있는 권한, 즉 악역을 수행할 권한은 주고 있습니다. KBS의 경우, 사장의 권한을 안으로는 강화시켜 놓았으나 밖의 권력(공보처)에 대해서는 더욱 약화시켜 놓았습니다. 쉽게 사장을 조종할 장치를 마련한 셈이지요. 하기야 KBS의 군살은 빼야 하기에 교육방송은 독립시켜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관영방송으로 후퇴시키는 것은 심각하게 재고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뿐입니까. 방송광고 공사의 거대한 공익자금을 심의결정할 기구를 당국의 압력에 쉽게 굴복할 인사로 구성할 수 있게 해놓은 것도 정부통제 의지를 잘 반영해줍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 민영방송허가에 있다면, 이 점도 그 저의를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원칙적으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영(私營)방송을 금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방송사의 자율성 신장과 그 프로그램의 공영성 고양이 권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권력과 자본간의 유착이 국민의 심기를 불안하게 하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고, 또 방송사들이 지난 2년간 꾸준히 공영방송의 기능을 정착시켜 가고 있는 현실에 주목한다면, 민영방송허가를 들고 나온 저의가 뻔히 내다보입니다.

 

공영방송의 공익성ㆍ공공성 제고 우선돼야

 공보처는 지난 10년간 공영방송을 시행해보았더니 여러 가지 폐단이 있었기에 민영방송허가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강변하지만, 이것은 정말 오판임에 틀림없습니다. 지난 全정권 8년간은 그 프로그램에 있어 공영이 아니라 철저한 관영이었습니다. 시청료와 광고료를 모두 받았기에 그것은 상업적 관영이라는 기형적 방송 체제였습니다. 공영방송은 겨우 지난 2년간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겨우 '아기걸음마'를 하고 있는데도 권력은 방송의 자율적 步行과 공영적 走行을 심히 두려워 하여 이 단계에서 방송언론을 장악하려 하는 듯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여러가지 독소조항이 버젓하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방송전파는 모든 국민의 공적 재산입니다. 특정 권력과 금력이 독점해서는 안됩니다. 지금은 공영방송체제의 강화를 통해 방송의 공익성ㆍ공공성을 더욱 제고시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 까닭은, 우리는 아직까지 확고하게 자리잡은 공영방송체제를 운영 해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형적 관영상업방송을 주로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민영방송을 서두르기보다는 공영방송부터 착실히 뿌리내리게 하는데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도대체 어쩌자고 공보처는 전체 언론과 양식있는 국민과 야당이 그토록 반대하는 방송관계법개정안을 내놓아 정치적 평지풍파를 일으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입니까? 아니면 공보처의 과잉충성 탓입니까? 당국이 스스로 정치적 위기를 조성시켜 나가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방송은 점령 할 고지가 아님을 당국은 늦기 전에 깨닫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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