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 고르비 회담, 4가지 수수께끼
  • 김승웅 편집국장대리 ()
  • 승인 1990.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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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홍주 유엔대사 의문의 소련행 … 회담 당일까지 장소 · 시간 안 정해져

지난번의 盧 · 고르비 정상회담은 不可 의 미스테리를 지닌 한편의 大河외교드라마였다. 회담이 열리기 40여일 전부터, 그리고 회담 현장과 워싱턴 외교가를 돌아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까지 기자가 수첩에 수시로 메모했던 몇가지 미스테리를 소개한다. 미스테리의 첫 현장은 모스크바이다.

 현홍주駐유엔대사가 모스크바에 얼굴을 나타낸다. 지난4월22일 전후의 일로, 玄대사는 당시 대사직 임명만 받았을 뿐 부임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玄대사가 출현했을 당시 모스크바에서는 통일교주 文鮮明씨가 주도하는 세계언론인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대회를 끝낸 후 문씨는 고르바초프와‘장장??30분간에 걸친 파격적 면담을 하는 데 성공한다. 문씨와 고르비 요담의 배경에 玄대사가 개입돼 있다거나 그로부터 40여일 이후에 터질 盧?고르비회담에 뭔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체적 증거는 아직껏 잡히지 않고 있다.

 다만 玄대사가 왜 하필이면 문·고르비 요담과 때를 같이하여 출현했느냐, 그리고 아직 부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부임지(뉴욕)과 엉뚱하게 다른 모스크바에 모습을 나타냈느냐 하는 점은 玄대사의“소련에 대한 식견을 넓히기 위해서였다??는 해명만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다.

한·소 밀착으로 남북한 관계 악화할 수도

 玄대사를 노·고르비 회동장소인 페어몬트호텔과 붙어 있는 인터커티넨털호텔의 라운지에서 만났을 때 그는“반드시 모스크바만 방문했던 것은 아니다. 모스크바에 가기 전 북경에도 들렀다??라고 말했다. 그리고??유엔대사로 일하는 데 소련과 중국을 몰라서야 되겠느냐??며 그러한 행적이 외교관으로서 자질과 식견을 갖추기 위한 것이었음을 강조했다.

 또 한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모스크바 언론인대회에 참석한 〈세계일보〉의 곽정환사장과 그의 수행원이 모스크바로 떠나기에 앞서, 그리고 귀국 후에도 청와대팀과 일련의 접촉을 유지했다는 대목이다.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모스크바대회를 마친 문교주가 귀국 후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가진 귀국보고를 겸한 설교집회에서 스스로 6공정부의 흥망에 얼마나 깊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그 특유의 웅변조 설교를 통해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이 집회를 취재한 《시사저널》기자의 소감은 다음과 같다.“앞으로 노대통령을 살리고 죽이는 일은 자기 손에 달렸다는 어조였습니다. 청중석 뒤편을 보니 金大中평민당총재도 보이던데요.??

 여기서 굳이 玄대사의 모스크바 출현이나 문교주의 강경발언을 거론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정작 관심을 쏟게 되는 것은 한·소관계의 정상화 이후의 국면이다. 이번 노 · 고르비회담 이후 당연할 결과가 돼야 할 남북한 정상회담의 성사를 둘러싼 정부측의 접근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외신의 표현대로 “뺨을 호되게 얻어맞은??북한의 입장에서, 그것도 남이 아닌 소련 앞에서 구타당한 격이 돼버린 북한이 과연 남한측이 만나자고 제의하는 시간과 장소에 얼굴을 쉽사리 나타낼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럴 경우 6공정부가 내보일 카드는 과연 무엇일까? 샌프란시스코회담 이후 국내 언론은 정부 외교의 다음번 절차로 남북한 정상회담을 들먹이고 있다. 그것도 매우 강한 어조로, 마치 작전계획서에 명시된 공격명령을 하나 하나 알릴 듯이 정확하게 시의적절하게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보도의 흐름대로 내맡긴다면 남북한 정상회담은 청와대가 쥐고 있는 작전계획서에 이미 담겨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 성사 시점만이 남은 문제처럼 보인다. 과연 그러할까?

 상황은 엉뚱한 곳으로 흐르고 있다. 일요일자 조간신문은 소련이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을 전면 중단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모스크바로부터 공급돼온 원유가 북한 전체 사용량의 40%에 달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는 사실상 소련측의 대북한  文조치로 보아 무방할 듯싶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노 · 고르비회담의 여세를 몰아 고르바초프가 북한을 달래고 설득하여 남북한 정상회담 자리로 끌어들이는 데 기여하리라고 볼 수는 없다. 말을 바꾸면, 소련을 통해 남북한관계를‘개선??해보려면 정부의 행동은 개선은커녕??개악??을 저지른 셈이다. 2년 남짓 공을 들여온 정부의 북방정책이 정책의 포화점이랄 수도 있는 지난 샌프란시스코의 한?소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엉뚱한 방향으로 물꼬가 터졌거나 아예 무산될 위기를 만난 셈이다.

 이 상황에서 정부의 선택은 그 폭이 매우 제한돼 있다. 북방정책을 2년 전의 원점상태로 돌려놓든지, 아니면 북한과 미국간의 관계를 적어도 샌프란시스코회담 전의 상태로 돌려놓는 것밖에 다른 묘수가 없을 것 간다. 북한은 샌프란시스코회담 한·소정상회담이 열리기 며칠 전 미국의 현충일을 기해 6 · 25당시 실종사망한 5명의 미군유해를 미 본토에 송환하는 등 전례없는 화해 몸짓을 보여준 바 있다. 6공정부가 이번 샌프란시스코 회담으로 인해 자칫 피어나려다가 시들지 모를 미·북한간의 화해관계를 회담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는 작업은 고르바초프를 시켜 북한을 달래는 일보다 훨씬 쉽고 품이 덜 드는 작업이 될 것이다.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선택으론 북한을 향한 극적이고 과감한 외교돌진의 시도를 들 수 있다. 이번 노 · 고르비 정상회동을 낳았듯이, 현재의 지형지물을 1백% 활용하면 결코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듯하다. 현시점에서 취할 수 있는 이로운 방안의 하나로, 통일교측이 올해 안에 평양에서 앞당겨 개최할지 모를 세계게언론인대회를 생각할 수 있다. 지난 4월 모스크바대회를 성공리에 끝낸 문교주측은 내년도 대회장소로 북경과 평양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가 평양으로 최종 확정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내년도 대회를 아예 금년중으로 앞당겨 개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이 대회를 對북한 접촉창구로 황용키 위해 통일교측과 접촉을 하고 있는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 연 1회 대회 개최지를 원칙으로 해온 문교주측이 하필이면 평양대회에 한해 에외를 인정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렇다할 해명이 없다.

 이번 샌프란시스코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앞서, 기자는 〈세계일보〉의 곽사장에게 두차례에 걸쳐 전화인터뷰를 신청, 질문내용을 밝힌 바 있으나 한참을 기다린 끈에 비서실장으로부터 받아낸 것은“현재 부재중이며, 답변할 입장이 아니다??라는 회답이었다.

 

"소련은 당초 '수인사'정도만 할 생각"

 두 번째 미스테리는 국가원수 대 원수간의 정상회담 치고 이번 회담처럼 非의전적이고 상식을 벗어난 회담이 없었다는 점이다.

 회담이 열린 4일 낮까지도 한국측은 회담장소가 어디이며 합의형식이 공동성명이 될지, 선언형식이 될지 알지 못한 것은 물론 회담시간의 길이에 대해서도 일절 밝히지 못했다. 그 까닭은 양국 정상들의 신변안전을 고려한 소위 보안상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소련측과의 사전협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상대측으로부터 회담개최 직전까지 아무런 통고조차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혀졌을 때 기자가 느낀 심정은 서글픔에 가까운 것이었다.

 백악관을 출입하면서 미·소정상회담의 취재를 마치고 곧장 샌프라시스코로 다렬온 미국 신문기자들의 설명대로라면 당초의 회담장소는 페어몬트호텔이 아닌 샌프란시스코주재 소련 총영사관이었다.

 회담시간도 1시간 남짓이 아닌 20분 정도. 고르바초프는 숙소인 그곳에서 노대통령을 ‘불러??간단한 수인사 정도를 나누는, 한갓 기록에 남길 정도의 요담을 요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을 미리 간파한 한국측이 부시 미 대통령을 종용, 그로 하여금 고르비와 별도로 만나 회담시간을 1시간 안팎으로 늘릴 것과 회담장소를 소련총영사관이 아닌 호텔로 결정토록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 미국기자들의 견해였다.

 왜 그랬을까? 소련이 우리와 정상회담의 개최를 동시발표키로 합의까지 한 마당에 결정적인 순간에 와서 상대측 국가원수를 몇십분 동안이나 기다리게 만든 이유는 무엇으로 설명될까?

 일단 짚을 수 있는 이유의 하나는 상대를 초조하게 만들어 자기들이 뜻한 바 기대치를 충족시키려는 수준 낮은 외교술이라는 것이 현지 외교관측통들의 분석이었다. 소련이 의중에 둔 기대치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현지 언론은 한국의 對 경제투자로 진단한다. 그렇다면 결국 투자액의 증대를 늘리기 위한 소련측의 ‘비틀기??라는 것이 이번 미스테리에 대한 정답인가?

 이 문제에 대해 이번 회담성사에 깊이 관여해온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그것이 문제는 문제다. 그러나 소련측이 과연 얼마나 원하는지, 다시 말해서 얼마를 투자해야 저쪽이 만족해 할 수치가 될지를 이쪽에서 알 수가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실토한 바 있다.

 소련이 바라는 바는 우리가 거대한 플랜트수출이나 장기간의 경재개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당장 눈앞에 바닥난 생필품, 예컨대 비누나 치약 공장 등을 잔뜩 지어주는 것이라고 이 당국자는 밝힌 바 있다.

 이번 회담이 성사와 진행을 위해 미측에서는 슐츠 前주미대사가 크게 활약했다. 이 들은 회담 직전 노대통령을 숙소로 직접 찾아가 구수회담을 범임으로써 그 활약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소련과의 접촉이 거론될 때마다 빠지지 않아왔고, 이번 한·소정상회담의 성사에도 持分說이 과다했던 朴哲彦전정무장관이나 金泳三씨의 공적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이 역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회담장에서 만난 한 관계자의 귀띔은 이렇다.“한?소회담의 성사를 자기 공적으로 돌리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 이번에는 대통령이 진노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l번에는 나야 나??라고…??

김영삼·박철언씨의 역할은?

 마지막으로 남는 또하나의 미스테리 이번 정상회담의 발표를 놓고 혼선을 빚은 엠바고(embargo·시한부 보도자제) 소동이다. 국가원수급 정상회담은 관게국과의 동시발표가 원칙이 돼있고 이 원칙은 지금껏 제대로 준행돼온 것이 3공과 5공시절의 관례였다. 이 원칙이 깨진 근본 원인이 어디 있는지, 국내 언론사의 무례에 기인한 건지 아니면 서울시내 6개 일간지와 양대 방송 그리고 1개 통신에만 출입을 허용하고 있는 현 청와대기자실의 시대역행적 운용방식 때문인지 아직 단정해서 말할 수 없다.

 출입을 저지당하는 언론사측으로서야 분풀이를 겸해서라도 엠바고를 깰 수 있다. 정보는 물이나 공기와 마찬가지로 누구나가 공유하게 마련인 것이다.

 청와대기자단이 반대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기존언론 특유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카르텔을 이유로 청와대기자실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것은 참으로 개탄할 만한 반민주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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