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일단' 공립학교에 보낸 까닭
  •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
  • 승인 2006.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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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교육일기]

 
  제도교육이라는 것이 제도 미디어와 함께 대중의 의식을 체제에 포섭하는 가장 주요한 도구라는 원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내 학교 체험은 참 끔찍했다. 나는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다음 해에 태어나 박정희가 죽은 다음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선생들은 그 시절에 걸맞았다. 나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은 제 반지를 잃어버리자 아이들을 하루 종일 변소에도 못 가게 하고 교탁에 엎드려 울었다. 울다가 한번씩 우리를 노려보던 그 추한 눈빛을 난 잊을 수 없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내 체험이 하도 끔찍하다 보니 김단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적이 긴장하고 이런저런 생각들도 많이 했다. 내 주변에는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 대안학교의 미덕과 대안학교 운동을 하는 이들의 분투를 존중한다. 그럼에도 내가 대안학교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사회적 불편함’ 때문이었다. 내 생각에 현재 한국의 대안학교들은 단지 제도교육을 불신하는 부모들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일정한 경제적 안정과 교양을 가진 부모들의 ‘제한된 권리’다. 단적으로 말해서 ‘제 아이를 동네 학교에 보내기도 어려운 형편’의 부모들에게 대안학교는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물론 아이는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을 보는 게 낫다. 그러나 아이가 좋은 것만 본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나쁜 것을 보고 때론 나쁜 것에 고통 받으며 나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움으로써 좋은 사람이 된다. 내가 오늘 알량하나마 좌파로 살게 된 가장 큰 이유도 내가 초·중·고교 12년 동안 만난 교사들이 반면교사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조리 우파였으며, 우파의 삶이 인간적으로 얼마나 품위 없는 것인지 나에게 생생히 가르쳐주었다. 

그러저러해서 나는 아이를 ‘동네 아이들이 다 가는 학교’에 보내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그러나 아이가 아비의 유별난 사회의식 때문에 희생된다면 그 또한 끔찍한 폭력일 것이다. 아이에게 어떤 분명한 이유가 생긴다면 나는 언제든 대안학교를 고려할 생각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김단은 7년 남았고 김건은 10년 남았다. 공립학교는 내가 다니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지만 여전히 아이를 맡기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제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교사의 편차가 터무니없이 커서 아이가 어떤 교사를 만날지 운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김건과의 대화.

김건 : 아빠. 선생님이 태극기 달래.

김규항 : 무슨 날인데?

김건 : 우리 나라 법을 정한 날이라던데.

김규항 : 제헌절? 단아 제헌절이 언제냐?

김단 : (달력을 들여다보며) 17일, 일요일인데.

김규항 : 그렇구나.

김건 : 6학년 형들이 태극기 안 단 집 적으러 다닌대. 그래서 적히면 가만 안 두겠대.

김규항 : 가만 안 둬? 누가?

김건 : 선생님이.

김규항 : 너희 선생님이 잘못 생각하는 것 같다. 태극기 다는 건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는 거야. 먼저 제헌절에 대해 더 알아보고 달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아빠가 도와줄게. 하지만 안 달아도 괜찮아.

김건 : 선생님한테 혼나면?

김규항 : 잘못한 게 없는데 왜 혼이 나? 걱정 안 해도 돼.

김건 :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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