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사슬 끊는 ‘살풀이’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4.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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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



 崔泳美는 자기 시가 ‘비평가 하나 녹이진 못해도/늙은 작부 뜨듯한 눈시울 적셔주는 시’, 그래서 ‘지친 몸에서 몸으로 거듭나는/아픈 입에서 입으로 깊어지는 노래’가 되기를 원한다. 그의 시가 지향하는 것은 ‘구르고 구르다 어쩌다 당신 발끝에 채이면/쩔렁! 하고 가끔씩 소리내어 울 수 있는’ 우연한, 그러나 가슴기리 절박하게 맞닿는 그러한 만남이다.

 서울 출신 61년생 최영미는 후기에서 말한다. ‘그동안 몰래 키워온 내 새끼들, 고독과 욕망의 조여, 너희들도 이제 내 곁을 떠나 세상 속에 섞이기를’.

 그의 바람대로 그의 시가 세상 속에 잘 섞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시가 발끝에 채이며 소리내는 울음 때문일까. 그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내놓은 시집 《서른,잔치는 끝났다》(창작과비평사)는 발간 한지 한달이 조금 지난 지금 3만5천부나 팔렸다. 아무리 이름난 시인의 시집이라도 1만부를 넘기기가 힘든 한국의 독서 풍토를 생각하면 폭발적인 인기라고 말할 수 있다. 문단의 많은 이들이 ‘최영미 시집은 10만부를 넘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왜 그럴까. 장편소설에 대한 최근의 기록적인, 열화와 같은 기대치가 드디어는 시에까지 연장되는 것일까, 혹은 ‘아, 창비에서 이런 시집도 내는구나’하는 속물적 관심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그의 시가 갖는 매력 때문일가.

“알몸의 투명한 아름다움을 내미친다”
 시인 황지우는 최영미의 시가 “얼핏 보기에 도발적이다. 사람을 적이 당황스럽게 하면서, 그러나 그의 시를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유혹의 빛은 삶을 지탱시켜 주는 중요한 어떤 것, 인념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하는 것이 사라져버린 자리를 비춰주고는 문득 암전되고 만다”라고 설명한다. 시인 최승지는 “그는 싸움의 상처들로 만들어진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다. 그래도 그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누더기 옷을 통해 투명한 알몸, 혹은 알몸의 투명한 아름다움이 내비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그의 시 대부분은 과거, 정확하게 말해서 과거의 추억에서 풀려나기ㅣ 위한 ‘살풀이’이다. 그의 추억은 ‘꽃이/지는 건 쉬워도/잊는 건 한참이거든/영영 한참이거든’(<서운사에서>)의 꽃이고, ‘빨랫줄에 널린 오징어처럼 축 늘어진 치욕, 아무리 곱씹어도 이제는 고스란히 떠오르지도 못하는 세월인데’(<속초에서>)의 치욕과 세월이며, ‘상아서 펄떡이던 말/살아서 고프던 몸짓/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입안 가득 고여오는/마지막 섹스의 추억’(<마지막 섹스의 추억>)에서의 추억이다.

 그의 마치 독백하듯 우물우물 말한다. “이제는 정말, 정말 벗어나고 싶어요. 과거로부터. 세상에 섞여져서 없어지듯.”
 그리고 이렇게 노래한다. ‘나의 봄을 돌려 다오/원래 내 것이었던/원래 자연이었던’(<돌려다오>).
 趙瑢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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