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 치부 파헤치는 대학 · 교수 ‘평가사’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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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연구소 권기욱 박사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산하 고등교육연구소(소장 이현청)의 권기욱 교수(교육행정학)가 ‘대학 교수 적정 수업 부담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연구의 본래 목적은 대학 교수의 적정 수업 부담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연구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의 대학 교수들은 적어도 강의와 연구라는 측면에서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 교수가 맡는 주당 수업 시간은 평균 11.7시간인데, 수업 한 시간당 수업 준비 시간은 평균 1.33시간에 불과하다. 미국 플로리다 주는 주립 대학 전임교수의 주당 수업시간 수를 최저 12시간으로 법령화해 시행하고 있다. 교육 이론에 의하면, 수업 준비 시간은 수업 시간의 3배정도 되어야 이상적이다. 한국의 대학 교수들은 미국 교수에 비해 수업은 적게 하고, 수업 준비 면에서는 ‘이상’에 훨씬 못 미치는 노력을 기울이는 셈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권기욱 교수는 92년 1,2학기 동안 강의를 한 전국의 대학 교수 1천1백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이와 같은 결과를 얻었다. 설문에 응답한 교수는 총 5백94명으로 설문지 회수율은 낮은 편이었다. 그는 “적정 수업 시간은 법이 제시한 주당 9시간을 최소 기준으로 하고, 최대로 주당 15시간을 넘겨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했다.

대학 교수들의 수업 시간이 적은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교수가 떠맡는 수강 학생 수가 워낙 많아 학생들의 시험 성적을 평가하거나 과제를 처리하는 데 시간을 많이 빼앗기기 때문이다. 권교수에 따르면, 수업 준비 · 성취도 평가 · 과제 처리 등 수업 요소를 합친 전체 수업 부담 시간은 평균 1.93시간으로 외국의 2시간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권교수는 이 같은 사실이 “평일에도 연구실을 비우기 일쑤인 대학 교수들의 게으름을 변명해줄 구실이 될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시설 · 교수진이 아무리 좋아도 교수 스스로 수업을 게을리하면 그만큼 한국 교육계가 당면한 목표인 ‘교육의 질적 향상’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권교수가 속한 고등교육연구소는 한국의 대학 정책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관이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으며, 그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이 연구소가 집중 연구하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는 교육 당국의 정책 자료로 쓰인다.

바른 정책 대안을 찾다 보니 이 연구소는 대학 사회의 치부를 분석하는 일까지 덤으로 수행한다. 권교수의 연구 결과도 이와 같은 차원이다. 학자가 되기 전 그는 중학교 교사였다. 하지만 지금 권박사는 교육 행정가가 아닌 교육 행정학자로서 대학이 감추고 싶어하는 부분만 들춰내는 일을 전문으로 한다.

요즘 권교수는 ‘대학종합평가인정제’의 평가 기준을 개발하는 일에 몰두해 있다. 말하자면 대학과 대학 교수를 평가하는 최적의 방법을 찾는 일에 머리를 쥐어짜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안경 너머에서 빛나는 눈빛에도 ‘시험 출제 위원의 그것’과 닮은 고민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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