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일곱 살의 성인식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4.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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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宋基元 20년 만에 첫 장편《너에게 가마…》펴내



 ‘어화아, 이 놈의 시이사앙, 어이넘어 갈끄나아…’하고 한숨 섞인, 시골 장터 장돌뱅이로 남은 어머니의 육자배기 가락이 그렇게 긴 호흡으로 다시 뽑아져 나오기까지는 삼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작가 宋基元은 마흔 일곱이 된 지금에야 성인식을 치렀다. 이제야 끊임없이 가위 눌리게 하던 열여덟 무렵의 악몽에서 벗어났다.《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한양 출판)는 과거의 속박에 대한 일종의 해방춤이다.《너에게 가마…》는 74년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동시에 당선되어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 그가, 20년 만에 쓴 첫 장편소설이다. 송기원은 그것을‘열여덟 무렵에 대한 헌사(獻辭)’라고 했다.

 송기원의 열여덟은‘두들기며언 목탁 소리 난다아, 율부리너 대갈통/숲속에서 연애하다 들킨 신성일과 엄앵란/우리 옆 집 여대새앵/밤만 되면 나간다아/그 이름 빠걸이란다아/지금쯤은 할끼다아…’하고 불경스러운 노래를 불러제끼던,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장터에 내려와 건달들의 똘마니 노릇을 하며 지내던 시절이었다. 그 곁에는 늘 개똥처럼 버려진 채 아무렇게나 자라는 아이들, 이 장 저 장을 돌아다니는 장돌뱅이 아낙네들과 거기에 빌붙어 기둥 서방 노릇을 하는 건달패들, 술집 작부ㆍ노름꾼ㆍ소매치기 등이 꿈틀대며 있었다. 그 세계야말로 그가 알몸으로 내던져진 현실이었다. 그런 그가 지성, 순수 의지, 철학적 사유, 문학적 인간, 육체와 정신 등에 막 눈뜨기 시작해 마치 굶주린 이리처럼 찾아 해맸던 것은 일종의 구원이기도 했지만, 비극의 깊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30년. 이제 와서야 송기원은 말한다.“30년이 넘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나의 열여덟 무렵에 정면대결한 셈이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제야 정면으로 대결을 하게 한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인생에 대한 자신감인지, 아니면 인생에 대한 초조감인지, 그것마저도 정확하지 않다. 다만 이제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는 것만 확실할 뿐이다.”

 열여덟 무렵의 체험은 송기원 문학의 원형질이 된다. 그 원형질은 창작집《月行》(79년)과 《다시 월문리에서》(84년도)에도, 시집《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83년)와《마음속 붉은 꽃잎》(90년)에도 도저한 흐름으로 버티고 있다. 93년 그에게 동인문학상의 영예를 안겨준, 10년 만에 쓴 단편 <아름다운 얼굴>도 그 흐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송기원은“이제 술 먹는 일에도 지쳤으니, 계층 상승 욕구, 탐미성 추구, 위악이 뒤범벅 되어 완전히 비틀린 시절로만 기억되는 대학 시절을 쓰겠다”라고 밝혔다.
趙瑢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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