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우리 하늘’110km 달라 하네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4.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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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관제 영역’동경 125도까지 확대 요구 항공협정서 1도 양보하면 대륙붕개발 어려워

김포발 북경 직행 비행기는 언제쯤 뜰 것인가.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4년째에 접어들었지만, 황해를 가로질러 북경으로 직행하는 서울~북경 직항로 문은 굳게 닫혀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타결될 것이 확실하다던 직항로 개설 전망은 이번에도 섣부른 추측으로 끝나게 됐다.‘관제 이양점’이라는 해묵은 난제가 한ㆍ중 항공협정 협상에 임하는 양국 실무자의 발목을 또 한번 붙잡았기 때문이다.

 협상 판이 번번이 깨지자 협정 조인 날짜만 기다리던 국내 민간 항공사들은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보인다. 한 항공사 직원은“관제 이양점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세계 항공협정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시간을 벌기 위한 중국 특유의 지연 전술에 끌려다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라고 불평한다.

 비행기가 공황 활주로를 뜨고 내릴 때마다 그 비행기는 공항에서 통제를 받는다. 그것을 항공 용어로는‘관제’라고 부르는데, 비행기가 이륙해 하늘을 나는 동안에도 관제는 계속된다. 그러나 이 때에는 관제할 범위가 워낙 넓어 구역을 정해야 한다. 바로 그 때문에 관제 구역을 나누기 위한 특정 지점이 필요하다. 그것이 관제 이양점이다.

서울~상해 관제 이양점, 125도 잠정 합의
 중국과 국교를 맺기 전까지는 중국과 비행기 왕래가 없었으므로 적어도 황해 쪽에서 관제 이양점에 대해 신경 쓸 일이 없었다. 83년 중국 민항기 납치 사건이 터져 중국측 비행기가 영공으로 들어온 적이 있지만 그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뒤 사정이 달라져 86년에는 서울 아시안게임 때 중국 민항이 한국을 찾았고,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특별기까지 오고 갔다. 90년 북경 아시안게임 기간에는 우리쪽 비행기가 몇십 차례 북경을 드나들었다. 항공협정을 맺어야 할 때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92년 8월 한ㆍ중 수교 이후 양국간 항공협정을 위한 대화가 본격화했다. 양국 정부간 회담도 지금까지 공식으로 4회, 비공식으로 2회 열렸다. 항공협정사상 유례가 없다는 관제 이양점 문제가 불거져나온 자리가 바로 여기였다. 한국측이 주장한 관제 이양점 기준은 동경 124도이다. 반면 중국은 동격 125도로 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그림 2 참조)

 한국이 기준선을 동경 124도로 하자고 주장하는 까닭은, 중국과 국교를 맺기 전 이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그렇게 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 기준선이 자기네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어놓은 것이라며 다시 설정하자고 주장했다.

 지난 1월17~22일 북경에서 열린 비공식 회담에서는 양국간 최대 쟁점이던 관제 이양점 문제가 해결되는 듯했다. 직항로 개설을 전제로 할 때, 서울~북경 직항로에 대해서는 한국측 주장대로 124도를 적용하는 대신 그동안 비정기 항로로 사용했던 서울~상해간 항로에 대해서는 중국측 주장을 받아들여 125도로 한다는 데‘잠정 합의’한 것이다. 서울~상해간 항로는 83년 싱가포르에서 체결한 양해각서 내용에 따른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으로 들어갈 때 일ㆍ중 항공협정에서 설정한‘아카라~후쿠에 회랑’을 쓰도록 되어 있다(그림 1 참조)

 북경회담 뒤 한ㆍ중 항공협정은 조인식만 남겨 놓은 듯했다. 하지만 양국이 합의한 내용은 말 그대로‘잠정’으로 끝났다. 국회에서 민주당 김명규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당시 합의 내용을‘항공사 입장만 보살피고 국민은 돌보지 않은 위험천만한 합의’라며 뒤늦게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 방침을 문제 삼는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전문가들은 잠정 합의한 내용대로 항공협정을 체결할 경우, 한국의 영토 주권이 돌이킬 수 없는 위험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하늘에는 영공 주권과 밀접하게 연관된 보이지 않는 구역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가 비행정보구역(FIR)이다. 비행정보구역은 공역(空域)을 비행중인 항공기가 편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항공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수색과 구조 업무를 책임지고 맡게끔 국제민간 항공기구에서 나라 별로 설정해 준 구역이다. 겉보기에 국경이나 영공 주권과 관계 없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예컨대 공군의 영공 방위를 위한‘방공식별권(ADIZ)’도 이를 기준으로 설정하기 때문에 비행정보구역 개념은 이미‘준영토’와 다름없다.

 관계 이양점도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한국의 비행정보구역(대구FIR로 부름ㆍ그림 2 참조)은 중국과 협의 없이 정한 상태여서, 관제 이양점이 장차 있을지도 모를 비행정보구역 재조정 협상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관제 이양점이 동경 125도로 결정되면 대구FIR 하단부가 중
국측 관제권으로 들어가 곧바로 한국측 영공 방위 활동이 영향을 받는다. 박오화 교수(항공대ㆍ항공관리학)는“항공협정에서 중국측 요구를 받아들이면 국제민간항공기구 지역회의 때 중국측에 유리하다. 지역회의 결과는 전체 회의에서 확정될 가능성이 크므로 그대로 수용하면 문제가 된다”라고 말한다.

 관제 이양점은 대륙붕 개발권ㆍ경제수역선포권 등 영해와 관련된 각종 권리 행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은 70년 한반도쪽 대륙붕을 해저자원개발구역으로 선포해 석유탐사 작업을 벌여왔다.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기선(base-line)’을 들이대며 재조정하자고 요구하는 실정이다. 한국은 70년 대륙붕 개발권 문제를 놓고 일본과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인 끝에 석유 매장 가능성이 높은 대륙붕 제7광구를 50년 동안 공동개발키로 한 적이 있다.

 김영구 교수(한국해양대ㆍ해사법학)는“그동안 중국은 황해 일원의 대륙붕에 대해 우리측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여러 통로를 통해 자국에 유리한 기선으로 설정하자고 주장해 왔다. 관제 이양점을 125도로 정하더라도 대륙붕 영유권이 직접 영향받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측은 이를 준거로 자기네 주장을 관철하려 들 가능성이 많다. 중국측 관제 이양점에 따르면, 대륙붕 제1~5광구는 물론 현재 일본과 공동개발중인 제7광구마저 중국측 영향권에 들어간다. 더욱이 한ㆍ중 간에는 앞으로 어업협정ㆍ경제수역 구획 등의 협상 과제가 남아 있어 그대로 갔다가는 두고두고 문제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중국측 요구 받아들일 가능성
 외무부ㆍ교통부 등 한ㆍ중 항공협정 실무를 맡은 정부 부처는 이러한 문제를 고려해‘김영삼 대통령 방중 때 항공협정 조기 타결’방침에서 일단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제 이양점 문제가 충분히 고려 없이 중국측 요구대로 관철될 소지는 남아 있다. 한ㆍ중 항공협정에는 노선 수ㆍ복수 취항 여부ㆍ취항 지점 수ㆍ이원권(한 나라의 항공기가 다른 나라를 경유하여 제3국으로 갈 권리)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더욱이 국내 민간 항공사들은 국익은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 항공협정을 맺으며, 그 내용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실정이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관제 이양점 문제는 전혀 우리들의 관심 밖이다”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직항로 개설ㆍ이원권 인정 따위가 항공사의 이익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서울~북경 직항로가 개설되면 이제까지 북경을 갈 때‘상해 루트’로 돌아가던 비행기가 북경으로 곧장 날아갈 수 있어 거리ㆍ시간ㆍ비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그림 1 참조). 또 이원권을 인정 받으면, 그 이익은 한국의 전체 항공산업 발전에도 보탬이 된다. 정부 쪽에서‘10년이 걸리더라도 신중하게 우리 입장을 관철하겠다’던 방침을 바꿔 협상을 서둘렀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급하다고 첫 단추를 잘못 끼울 수는 없다.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민주당 김명규 의원은 “125도 관제 이양점을 받아들이면 거리로 따져 1백10km의 우리 영공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라고 주장했다. 경도 1도는 90~1백10km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김포발 북경 비행
기가 직항로를 뚫으려면 이제 한국이‘만만디만 엔진’을 달 차례이다.
朴晟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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