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과 1천5백만 당원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러나 소련사회엔 아직도 공산당에 밥줄을 대왔던 사람들이 수두룩하며 이들은 끝까지 버티면서 합헌적인 야당세력으로 남으려 할 것이다.”
소련문제전문가인 겐리크 트로피멘코씨(미국 메릴랜드대 객원교수)는 공산당 없는 소련의 장래가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공산당 붕괴에 따라 정치적 다원주의에 대한 욕구가 분출하고, 15개 공화국 중 11개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는 등 코앞에 닥친 연방해체 문제, 국민의 사활이 걸린 경제난 등 소련은 지금 엄청난 정치 · 경제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198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무산계급사회의 건설을 향한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대실험’이 74년만에 막을 내리면서 거센 반볼계비키 혁명의 열풍에 휩싸인 소련은 과연 어디로 가는가.
지난달 22일 쿠데타가 불발로 끝나고 1주일이 지나는 동안 크렘린 신지도부가 취해온 일련의 혁명적 조처들은 지난 29일 소련최고회의에서 찬성 2백89표 대 반대 29표로 공산당 활동을 전면금지키로 결정함으로써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국정 전반의 주요 정책결정과 이념제공에서 말단의 숱한 행정기능에 이르기까지 그 위세를 떨쳐온 공산당의 기능이 정지됐어도 그 잔재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도 국가보안위원회(KGB)와 군, 여타 주요 국가기구의 핵심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수백만명에 이르는 당 간부들이 과연 뼛속 깊이 스며든 ‘관료체질’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 때문이다.
“탈사회주의 정착엔 한 세대 이상 걸릴 것”
정신문화연구원 權熙英 교수는 “과연 이들이 시장경제니
이윤제 도입이니 하는 자유민주주의적 틀에 금세 순응할 수 있겠느냐. 소련의 탈사회주의화가 정착하는 데는 최소한 한 세대 이상이 걸릴 것이다”라며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린다. 더욱이 공산당원들이 겉으론 내색하지 않은 채 앞으로 독립될 공화국의 새로운 통치구조 속에서 권력을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구축될 신 정치질서에서의 공산당의 위상이 관심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일단 공산당 조직이 붕괴된 만큼 종전의 보수 · 개혁 · 중도파는 각각 제 갈길을 찾아나설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권력이 개혁파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설령 공산당원이 신당에 참여하더라도 예전의 위상회복은 힘들며, 결국은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소련의 정치판도는 작년 월 공산당 1당독재를 규정한 헌법 6조가 폐지되면서 다양한 신당들의 출현기를 맞았다. 대표적으로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핵심측근이었던 야코블레프가 중심이 된 민주개혁운동(MDR), 공산당을 탈당한 루츠코이 러시아공화국 부통령이 이끄는 인민민주당(PDP) 및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민주러시아운동(DR)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지난 74년 동안 전체주의 의외의 다른 정치체제를 경험하지 못한 소련사회에서 그나마 세련된 정강정책을 내놓지 못한 신당들이 공산당의 대체정당으로 발돋움하기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권력정당’으로서의 공산당이 붕괴된 상황에서 과연 누가 이 공백을 메울 수 있을까. 아직 뚜렷한 대체정당이 떠오르지 않고 있다. 다만 일반의 관심은 아직도 공산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있는 고르바초프가 향후 신당에 참여할 것이냐 하는 데 모아지고 있다. 관측통들은 그가 현재의 공산당을 계급투쟁의 포기와 사유재산제 허용 등과 같은 대폭적인 수술을 통해 사회민주적 정당으로 개편하여 재출범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당이 살아남기 위해선 개혁파의 대거 등용은 불가피할 것이다.
고르비 · 옐친 중심 양당구조 가능성 높아
외교안보연구원 金富起 교수는 “서구식 정당제도의 틀이 확립돼
잇지 않은 소련사회에서 아픙로 정치적 과도기 동안은 그때그때의 정치상황과 인물에 따라 이합집산이 계속될 것”이라며 “결국은 옐친 중심의
자유민주적 정당과 고르바초프의 사회민주적 정당의 양당구조로 짜여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신당은 정당조직이나 운영에
있어 노하우가 없는 만큼 일정수의 공산당원의 영입이 불가피하며 정당의 원활한 활동이 이뤄지기 위해선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에 따르는 사회적 · 물적
토대가 어느 정도 구축된 상황이라야 가능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탈공산당 시대의 신 정치질서 구도는 소련이 탈사회주의 혁명의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극히 불투명하다. 서울대 河龍出 교수는 “우선 당장 연방해체 문제와 경제난 해결 등 정치적 안정이 이뤄져야 선거도 있을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같은 현안이 풀리지 않고서는 정치논의 자체가 별 의미없다는 지적이다.
연방문제는 러시아공화국과 우크라이나 공화국이 경제 · 군사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일단 붕괴위험이 가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5개 공화국이 주권공화국 형태로 결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 ‘신연방조약안’이 체결된다면 정국의 최대 불안요인은 제거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헌법개정과 대통령 직선 등의 절차가 뒤따라 어느 정도 정치적 안정을 이룰 수 있는 전망도 있다.
연방문제 못지않게 당면한 심각한 경제난 역시 향후 정국의 향방을 결정할 주요 변수이다. 세종연구소 鄭漢九 박사는 “옐친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가 경제개혁에 성공, 국민의 불만을 해소시킨다면 몰라도 만일 개혁이 지지부진할 경우 이는 보수파에게 재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한 소련문제전문가는 익명을 전제로 “향후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 상당한 혼란이 있을 것이고 설상가상으로 연방해체까지 겹쳐 총체적 난맥상이 노출되면, 이미 당세포의 해체로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군부 보수파가 쿠데타를 기도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진단했다.
이같이 불길한 관측결과는 1825년 데카브리스트의 반란과 1905년의 혁명, 1917년의 볼셰비키 혁명 등 전통적으로 정치적 변혁을 부르는 ‘반란의 계절’ 겨울을 앞두고 벌써부터 호사가들의 의해 제기되고 잇다. 특히 올 겨울 극심한 생필품난과 인플레에다 전력난 식량난까지 겹칠 경우 “시민들은 언제든 거리로 뛰쳐나올 것이다”라고 한 셰바르드나제의 경고는 예사롭지 않다. 보리스 판킨 신임 외무장관도 “쿠데타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결국 탈공산당 시대의 소련은 일단 옐친을 중심으로 한 개혁지도부가 과감한 공산당 청산작업을 벌이는 동시에 시장경제의 도입 등 자유민주체제로
움직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공화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화국에 아직도 만만치 않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공산당의 노멘클라투라(특권층)
계급이 앞으로 개혁정책에 따른 혼돈을 빌미로 준동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쿠데타에 연루 제거된 인물들
■자살(3명)
보리스 푸고(내무장관) 세르게이 아흐로메예프(대통령군사보좌관) 니콜라이 크류치나(당 운영위원장)
■체로(7명)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KGB의장) 드미트리 야조프(국방장관) 발ㄹ렌탄 파블로프(연방총리) 겐나디 야나예프(연방부통령)
올레그 바클라노프(국방위 제1부의장) 바실리 스타로두브체프(농민노조위원장) 알렉산데르 티지야코프(국가기업협의회의장)
■구금(7명)
빅토르 그르쉬코(KGB부의장) 발레리 볼딘(대통령비서실장) 발렌틴 바레니코프(국방차관 겸 지상군사령관) 올레그
셰닌(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 유리 플레하노프(KGB 경호부대장) 비야체슬라프 게네랄로프(KGB 특수기술국장) 아나톨리
루키야노프(연방최고회의의장)
■해임(12명)
알렉산드르 베스메르트니흐(외무장관) 미하일 모이세예프(참모총장) 레오니드 크라브첸코(국영TV사장) 레프
스피리도노프(타스통신사장) 게니야 아게예프(KGB 제1부의장) 비탈리 포노마료프(KGB 인사국장) 트루빈(연방검찰총장) 및 보좌관 3명.
표도르쿠즈민(발트군구사령관) 미하일 칼리닌(모스크바군구사령관)
소련공산당
약사
1896. 3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1차 대회로 공산당 성립
1903 2차 당대회에서 조직론 둘러싸고
레닌의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대립
1917. 2 2월혁명으로 차르 전제 타도
1917. 10 10월혁명으로 프롤레?리아독재
성립
1918. 3 7차 당대회, 러시아공산당으로 개칭
1919. 3 코민테른(공산주의인터내셔널) 1차대회
1921. 3 10차
당대회, 전시공산주의 대신 신경제정책 도입
1922. 4 스탈린, 서기장에 취임
1924. 1 레닌 사망
1925. 12 14차
당대회, 사회주의 공업화 결정
1926. 10 트로츠키와 지노비예프를 당 정치국에서 축출
1928. 10 1차 5개년계획
개시
1936. 12 스탈린헌법 제정
1952. 10 19차 당대회, 소련공산당을 정식명칭으로 채택
1953. 3 스탈린 사망,
말렌코프 총리 취임
9 흐루시초프 제1서기에 취임
1956. 2 20차
당대회, 스탈린 비판
1958. 3 흐루시초프 총리에 취임
1961. 10 22차 당대회, 신강령 · 규약 채택
1962. 10
쿠바사태
1964. 10 흐루시초프 해임, 당 제1서기에 브레즈네프 취임
1968. 8 체코의 민주화운동(파라하의 봄)을
바르샤바조약기구군이 무력탄압
1982. 11 브레즈네프 서기장 사망. 안드로포프 취임
1984. 2 안드로포프 사망, 체르넨코
취임
1985. 3 체르넨코 사망, 고르바초프 취임
1966. 2 27차
당대회
6 당중앙위총회에서 경제문제에 관한 페레스트로이카 제창
1988. 6
19차 당협의회, 인민대의원대회 창설 결정
1989. 3 복수후보제에 의한 인민대의원대회 선거, 고르바초프 최고회의 의장에
취임
1990. 2 당중앙위 총회에서 1당독재 폐기 결정
3 에스토니아
공산당, 소련공산당에서 분리, 고르바초프 초대대통령에 취임
4 라트비아 공산당,
소련공산당에서 분리
6 러시아공산당
설립
7 28차당대회, 의회주의정당 지향. 옐친 탈당
1991. 6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 당선
7. 20 옐친, 공조직에서의 당활동
금지
7. 26 당중앙위 전체회의, 신강령안
승인
8. 19 쿠데타
8. 22 리투아니아공화국, 공산당 불법화
8. 23 러시아공산당 활동정지,
라트비아공화국, 공산당 불법화, 키르기스공화국, 공산당의 전 재산 몰수 명령
8.
24 고르바초프, 당서기장 사임, 당의 해체를 당중앙위에 권고
8. 29
연방최고회의, 공산당 활동정지 결의안 채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