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땅에 핵무기 필요없다”
  • 워싱턴.이석렬 특파원 ()
  • 승인 1991.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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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회요협회 선임연구원 앨런 롬버그

 한반도를 비핵지대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인가. 남북한과 미국 중 어느 나라가 주도권을 잡아 밀고 나갈 것인가.

 지난 7월30일 북한이 다시 제기한 ‘한반도 비핵지대화 선언’으로 논의가 활발해진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인 반응은 “당신네들이 관심이 있다면 알아서 할 일” 정도였지만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주한미국 핵무기철수 주장이 나오고,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직업 외교관으로 국무부 부대변인과 정책담당 부차관보를 지내고 포드 대통령의 국가안보회의 위원으로 일하다가 관계를 떠난 앨런 롬버그씨는 현재 국제관계 연구논문집 《포린 어페어즈》를 발행하는 외교협회 선임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프린스턴대학에서 국제문제를 전공하고 하버드대학원에서 소련문제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지난 5월 아시아협회 북한방문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지난 7월30일자로 북한은 ‘한반도 비핵지대화 선언’을 남북한이 동시에 하고 주변 핵보유국들이 이를 보장토록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지금까지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주장해온 것과는 달리 남한과 협상을 한다고 한 점은 중요한 변화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제안은 받아들일 만한 겁니까?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입니다.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남북한 간에 그리고 미 · 북한 간에 아직도 신뢰회복이 안된 상황에서는 시기상조입니다. 북한이 남한을 협상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작년부터의 뚜렷한 변화입니다. 작년 5월30일 북한이 내놓은 군축안도 남한을 상대로 한 것이고 남북대화를 점점 중요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아주 긍정적인 것이지요. 북한이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무기 공격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얻어내는 일로 보입니다만, 이것은 1978년 미국이 이른바 핵무기 없는 나라에 대해서는 미국이 먼저 핵무기를 쓰지 않는다는 선언을 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것 말고도 따로 보장을 하라는 것이지요.

만약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아전협정을 무조건 수락하더라도 검증과정에서 영변 핵시설뿐만 아니라 재처리시설까지 샅샅이 뒤져봐야 하는 ?다로운 절차가 또 관건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제가 이번 아시아협회 북한방문단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해 북한관리들과 만났을 때, 그들은 재처리시설이 없다고 잡아떼더군요. 어쨌든 북한의 핵개발문제는 한반도 정세를 불안케 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북한측은 그동안 다소 이랬다저랬다 한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일관성없는 태도를 보엿다고 봅니다만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그들은 몇 번 입장을 바꿔 애매모호한 말들을 했지요. 그러나 한가지 뚜렷한 것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해 공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라는 요구입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또 구체적인 요구사항으로 소문으로만 알려진 주한미군의 핵무기를 철거하라는 것도 들고 나왔습니다. 미국은 이러한 요구에 대해 단호히 일관된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즉 세가지 사실을 들어 북한의 태도변화를 촉구했습니다. 첫째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한 나라로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안전협정을 수락할 의무가 있고, 둘째 북한의 핵재처리시설은 핵무기개발을 위한 것이므로 당장 폐기해야 하며, 셋째 북한의 핵개발문제와 다른 문제를 연계시켜서 흥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 가운데는 혹시 주한미군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꼭 핵무기를 한국에 둘 필요가 있느냐 하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핵무기 철수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사람들조차도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 미국은 한국을 핵우산 아래 두어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핵우산 무제를 소상히 밝혀주십시오.
 저는 그동안 여러번 이 문제를 논문으로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즉 안보상 우려가 해소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미국이 한국을 핵우산 아래 두어 보호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주한미군이 만약 핵무기를 갖고 있다면 이것을 철수해도 무방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결과가 됩니다만,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한 한국을 공격할 나라가 있을 수 있는 없는 것이지요. 2년6개월 전 소련의 변화나 동유럽의 민주화가 있기 전에 저는 만약 주한미군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면 지체없이 철수하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첫째 주한미군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면 그것이 믹구과 한국 간의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고, 둘째 이것을 빌미삼아 소련이 북한에 핵무기를 제공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미국 핵우산 아래 둔다는 것은 남북한이 불신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만의 하나라도 어떤 불행한 사태가 생겼을 때, 한국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중대한 모험을 각오해야 하는 입장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북한에 대해서도 하나의 중요한 경고가 됩니다. 북한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북한 관리들과 만나 이야기하면서 “미국은 세계 도처에 핵무기를 두고 있다. 항공기 잠수함 군함들이 이런 무기들을 싣고 다닌다”고 했더니 그들은 “한반도에 없는 한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분명히 한국의 영해나 영공을 지나다닌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었는데도…. 이런 점으로 보더라도 남한 땅에 핵무기를 둔다는 것은 필요없는 일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이 침략에 대한 억지력인가를 충분히 검토해볼 때입니다.

한 · 미간의 하와이 회동(한국측 대표 김종휘 청와대 특보. 미국측 대표 폴 월포위츠 국방부 차관0을 미국의 對북한정채에 어떤 변화가 생기고 있는 하나의 조짐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동의합니??
  변화의 조짐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미국의 대북한정책은 북한이 먼너 행동으로 관계개선에 나서면 거기에 따른 응분의 대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핵개발문제만 하더라도 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전협정을 무조건 전면 수락하고 이를 이행하는 경우에만 미국은 거기에 알맞은 대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최소한 미국은 지금 북경서 이루어지고 있는 미 · 북한 참사관급 접촉을 고위급으로 격상하는 정도를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대북한정책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핵무장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까요?
 모든 나라들이 끈질기게 집중적으로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정협정을 모조건 전면 수락, 이행할 것을 촉구해야만 하고 또 의례적인 사찰로 그칠 게 아니라 재처리시설 같은 것도 샅샅이 살펴보는 철저한 검증이 뒤따르도록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핵개발과 다른 문제르 연계하지 못한다는 원칙을 다소 유연하게 적용해서라도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막을 수만 있다면 일단 그런 방향에서 노력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일본과의 정상화가 이뤄지고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있으려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워싱턴과 서울이 비밀리에 합의해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정협정을 무조건 전면 수락하는 것을 조건으로 미국이 주한미국의 핵무기를 철수한다고 약속하고.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 검증을 받은 뒤에 핵무기를 철수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만…
 나는 미국이 군사동원 및 무기배치 등 군사문제를 놓고 북한과 비밀흥정을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를 놓고 서로 토의하고 의견을 나누는 일은 있어야 합니다. 비밀약속이란 항상 밝혀지기 십상이니까요. 나는 ‘흥정 아닌 흥정’ 또는 ‘연계 아닌 연계’로 미국이 나오지 ㅇ낳겠느냐 하는 질문에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북한의 비핵지대화 선언 제의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남북한이 직접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구축을 위한 제안을 토의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라는 내용의 논평을 했습니다. 만약 남북한이 이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 답을 가지고 나온다면 미국이 이를 지지한다는 뜻입니까?
 질문이 매우 추상적입니다만 일반론을 말한다면, 남북한이 서로 합의한 일을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안보문제로 남북한이 협상할 때 남한이 미국을 따돌리고 혼자 나가는 일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미국과 긴밀히 협의해 나가리라고 봅니다. 한반도 문제를 남북한이 해결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에 대해 안보공약을 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일종의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인의 생명이 걸려 있다는 말입니다. ?라서 안보상의 문제에는 미국이 이해당사국이 됩니다. 남북대화의 진전에 미국이 주목하고 있고 또 협조를 하고 있는 것도 다 이런 측면에서 입니다.

미국 정부의 비핵지대 설치에 대한 7개 항목 기준(《시사저널》96호 44쪽 참조)이란 것을 알고 계시리라고 봅니다. 이것을 보면 비핵지대 설치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아마도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새 세계질서를 말하는 지금 사정과는 거리가 먼 것은 아닌지?
 비핵지대를 못 만든다고 하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과거 남미에서의 비핵지대 설정에 미국이 찬성한 일도 있습니다. 물론 서태평양 비핵지대화 문제에는 반대했지만…. 미국이 따지는 대목은 기존의 국제법상 보장된 항해권이나 통과권 같은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있나 없나를 보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도 이미 한반도 비핵지대화 가능성에 대해 태도를 밝힌 일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주변국가들이 핵무기를 갖고 있고 한반도에 핵무기가 존재하고 있는 한 비핵지대화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납북한, 미 · 북한 간의 상호신뢰가 구축되고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훨씬 좋아진다면 통일이 되든 안되든 간에 비핵지대화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어떤 일이든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새로운 조처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런 상황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직전 리처드 체니 국방장관이 한반도 상황에 대해 언급하는 가운데 “밤에 자다가도 그것만 생각하면 잠이 달아날 정도”라고 했는데 과연 한반도의 상황이 그 만큼 위험했다고 보십니까?
 상황이 그렇게 나빴다기보다는 다른 뜻으로 새겨봄 직합니다.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전면전쟁이 다시 일어난다고는 생각한 일이 없는데, 그것은 한 · 미 간에 유지해온 강력한 방위력을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랑군 암살이나 KAL기 폭파 같은 테러를 매우 조심스럽게 저지른 것입니다. 만약 전쟁이 났다간 잿더미가 된다는 사실을 북한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 때문에 예기치 않은 문제가 야기됩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남한이 또 핵무기를 만들 수도 있고, 이런저런 일로 공포감이 연쇄적으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한반도가 다시 핵무기개발 같은 일로 떠들썩해진다면 이것은 매우 심상치 않은 상태가 됩니다.

동유럽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아직도 이렇다 할 뚜렷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들 설명대로라면 북한은 동유럽과는 그 생성과정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 아닙니까. 동유럽의 제도는 소련이 만들었고 그 지도자들도 소련이 앉혀놓은 것이지만, 북한은 제도가 자생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기초가 단단하다고 말들을 합니다. 김일성 주체사상이 마르크스 · 레닌사상보다 중요하게 학습되는 사회이고 철저한 정보통제로 사상의 오염ㅇ르 차단하는 그런 곳으로 알려졌지만, 실상 북한 중간과료급 이상 지배층은 바깥세상 돌아가는 일을 훤히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보수적인 프롤레타리아 정권이 북한 사람들에게 전혀 이질적인 것 같지는 않고 전통적인 조선문화와도 어느 정도 융합되고 있다는 사실이 지적되기도 합니다.

김일성 이후의 북한은 어떻게 달리지리라고 보십니까?
 지구상 모든 나라가 개방과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로 볼 때, 그리고 진화론에 입각해서 판단할 때 북한도 변화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미 · 북한 국교정상화는 언제쯤 이뤄질 것으로 보십니까?
 나름대로의 각본이 있습니다만 그것대로라면 멀지 않아 되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 형편으로는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아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 협정을 받아들이고 이행을 하더라도 미국은 당당 어떤 조처를 취하기보다는 북한과의 대화를 좀더 활발하게 하는 정도의 매우 신중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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