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토환경칼럼
  • 장 미셸 쿠스토 (쿠스토협회 수석부회장)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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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새롭게 하는 물



 “물은 은혜를 한방울씩 나누어주는 신이며 그것을 기다리는 것이 삶이다”라고 노벨 문학상을 받은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는 말했다.

 북부지역에서 여름이 끝나면 물은 곧 얼음과 눈으로 변하지만 인간의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물의 역할은 변하지 않는다. 미국이 해마다 노동절 기념하지만 미국의 산업을 일으킨 진짜 일꾼은 수차와 발전용 물레방아를 돌이던 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은 공동의 자원이다. 우리는 삶에서 겪는 기적에서 놀라듯이 물분자를 보고 놀란다.

 해마다 9월이 되면 티베트에서는 사람들이 강둑으로 몰려나와 함께 목욕하는 축제가 벌어진다. 스스로를 정화하려는 그들의 의식이다. 이즈음은 강물에 마력을 불어넣어준다고 믿는 금성이 밤하늘 높이 떠 있을 때이다. 이 축제는 겨울의 찬바람에 강물이 얼어붙기 전에 멱을 감는 마지막 기회를 농민들이 축하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겨울에도 순례자들은 물을 경배하러 모인다. 갠지스강과 야무나강이 만나는 지점인 사라스와티 부근의 신비한 물줄기는 겨울에도 얼지 않고 흐른다고 한다. 1월에도 남녀노소가 몸과 마음을 씻어내기 위해 얼음이 둥둥 떠있는 물 속으로 뛰어든다. 신성한 정화수와 영원한 생명이 함께 흐르는 곳으로 믿는 이 곳으로 3천만 신자들이 몰려든다.

 최근 메콩강 지역을 조사하던 쿠스토탐사대는 태국에서 전통적인 송크란 축제를 보게 되었다. 이 의식에서 불교도들은 물로 승려를 축복함으로써 공덕을 쌓는다.

 

물에 대한 인류의 존중에서 희망을 찾는다.

 비하라라 불리는 회합장에 승려들이 모여들면 신도들은 밖으로 나간다. 긴 파이프가 홀 안으로 연결되고 신호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그릇의 물을 파이프 안으로 퍼붓는다. 안의 승려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신도들이 붓는 물을 뒤집어쓴다. 화려한 오렌지색 법복이 흠뻑 젖는다. 완전히 젖게 되면 승려들은 군중 속으로 나와 찬송가를 부르면 사람들을 이끈다. 승려가 걷기 시작하면 사람들을 그들의 앞길에 물을 뿌린다. 물은 모든 사람을 성스럽게 만든다. 우리 탐사대까지 그 축제를 보며 물에 대해 진지해졌다.

 카메라맨은 등 뒤로 물을 뒤집어썼고 음향담당자는 마이크를 거의 다 적셨으며 사진사까지 흠뻑 젖어버렸다. 나중에 탐사대는 아예 물한동이를 그냥 뒤집어썼다. 이 모든 것들이 신성함과 거듭남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우리는 이 의식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의식에 뒤이어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에서 온 팀이 참가하는 보트 경기가 열린다. 메콩강은 세계에서 열두번째로 긴 강이며 아직 미개발된 곳이기도 하다. 강은 히말라야산맥에서 시작하여 여섯 나라를 거치며 2천6백마일을 달려 중국해로 흘러든다. 그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는 다리 하나와 댐 하나가 전부이다.

 비가 집중되는 몬순철이면 강물의 수위는 9m나 올라가고 이 철이 지나면 배가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메마른다. 산맥에서 시작되어 티베트와 중국의 수려한 협곡을 흐르다가 태국과 라오스에 이르면 이 강에는 ‘매남콩’ 즉 ‘물의 어머니’라는 존칭이 붙는다.

 송크란 축제는 태국 북쪽 변방 미얀마·라오스와 국경을 이루는 지역에서 벌어진다. 그러나 강에는 국경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지역의 문화는 강물의 흐름만큼이나 다양하고 풍부하다.

 물의 축제는 다른 곳에서도 벌어진다. 아이티의 화려한 소도 축제는 대표적이다. 여기서는 85년에 이곳을 조사하던 나의 아버지가 멱감는 사람들과 함께했다. 그 강이 이제는 말라붙었다고 한다. 물은 이제 더 이상 바위 위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숲의 황폐와 가뭄이 이 섬을 괴롭히고 있다. 국민들이 아직은 축제에 쓰일 값비싼 음식과 화려한 음식을 마련할 만큼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아이티의 정치적 상황이 축제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역시 노벨상을 받은 미국의 시인 요셉 브로드스키는 “퇴화되는 강물은 눈물이 된다”라고 썼다. 아이티는 무자비한 정치 때문에 퇴화하고 있다.

 전세계 사람들이 어려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인류가 보여주는 물에 대한 보편적인 존중에서 희망을 찾는다. 물은 곧 삶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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