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벗은 민중과 어깨 겯고 ‘말씀’실천하는 종교단체들
  • 도경재(자유기고가) ()
  • 승인 1990.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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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救貧운동활발… 불교도 범종단적 대중활동 채비

서울 종로구 낙원동 낙원시장 안, 좁은 골목은 낮 12시가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꽤나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을 따라가면 '낙원노인정'이란 간판이 붙어 있는 허름한 건물과 마주친다. 이 건물 3충에 있는 낙원노인정은 입구의 "여기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라는 글귀에서부터 보통의 노인정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점심식사를 사먹을 능력이 없는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염가로 제공하는 노인식당이다. 

  가톨릭사회복지회의 재정지원으로 지난해 5월 문을 연 낙원노인정은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한 주5일 동안 노인들에게 한끼에 2백원씩을 받으며 식사를 제공하고 있는데 몇 개의 벽장식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종교색을 띠고있지 않다.

  "가끔 왜 종교선전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노인들도 계시죠. 그러나 우리의 식당운영은 끼니를 거르는 노인들에게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당장 먹을 게 없는 사람들에게 종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낙원노인정이 문을 열 때부터 상근봉사자로 일해온 정미카엘씨의 말이다. 정씨를 비롯한 3명의 상근봉사자 외에 서울시내 20여개 성당의 어머니회원들이 자원봉사자로 노인정을 찾는다. 동대문성당의 봉사자 7명이 일을 나온 3월17일, 오전 9시부터 시작한 점심준비가 끝난 11시30분경, 정씨는 식권 1백장을 들고 파고다공원으로 나갔다.

  "물론 식사를 무료로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짜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노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정신적인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식당운영에 큰 도움은 되지않지만 2백원씩 받고 있습니다. " 

  이곳에 와서 노인문제의 심각성을 체험했다는 정씨의 말이다.

  낙원노인정은 음식재료비를 제외하고라도 월세·전기세·수도세 등 적지 않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데 현재 몇몇 숨은 재정지원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날 근처의 복덕방에서 건물주의 대리인 자격으로 임대료인상통지서를 들고 온 것을 보면 세상 인심이 다 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철거민 이주시켜 '복음자리마을' 일구기도 

  가틀릭교회는 낙원노인정과 같은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지원말고도, 일찍부터 도시빈민·노동자·농민 등 우리사회에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고자 했다. 

  지난 77년 서울 양평동 철거민 1백62가구와 함께 집단이주해 경기도 소래시 신천동 일대에 '복음자리마을'을 이룬 제정구(46)씨와 정일우(55·미국사람으로 원래 이름은 존 빈센트 데일리)신부는 도시빈민의 이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의 철거민집단이주사업은 79년 사당동 철거민들과 87년 목동 철거민들을 복음자리마을과 이웃한 은행동으로 집단이주시켜 제2, 제3의 복음자리마을을 만드는 일로 연결되었다. 지난 88년 가을 상계동 철거민들이 부천시 도광동에 삶의 터를 마련할 때에도 이 두 사람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항상 두 분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분들의 노력으로 세 마을 주민들은 모두 한집안 식구처럼 가깝습니다. 이제는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신용협동조합도 운영해나가고, 복음장학회도 만들었습니다. 두 분이 없었다면 아직 떠돌이 생활을 면치 못했겠죠. " 

  복음자리마을에서 언제까지나 살겠다는 백형언(56)씨의 말처럼 모든 행사에는 3개 마을 주민들이 모두 참여한다. 마을 빈터에서 조금 떨어진 신용협동조합 건물과 그 옆의 붉은 벽돌건물 '작은자리'는 세 마을 주민들이 마을행사와 지역사업을 계획, 실행하는 보금자리이다. 작은자리의 한쪽에 자리한 쉼터 '사랑방'은 마을도서관의 역할도 하고 있다.

  제정구씨와 정일우 신부의 도시빈민 집단이주사업은 자신들의 의지와 함께 김수환 추기경과 국내외 가톨릭교회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톨릭의 도시빈민운동은 85년 3월에 천주교도시빈민회가 만들어지면서 이전의 개별적인 운동에서 더욱 체계화되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철거민협의회·전국노점상연합회등 개별적인 단체가 생겨 이들이 주도적으로 일을 해나가기에, 이제 천주교도시빈민회는 주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자 각 지역에서 탁아소·공부방 또는 주민들과의 만남의 장 등의 형태로 그 활동을 변모시켰다. 서울의 경우, 신부가 운영하는 재활원과 수녀가 돌보는 탁아소가 있으며 평신도들은 그들 나름대로 '푸른하늘 공부방', '꿈나무 공부방' '열림터' ‘사랑의 집' '뚝방아이네' '밤골공부방' 등을 운영, 곳곳에서 도시빈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가톨럭사회복지회에서는 천주교도시빈민회와는 별도로 많은 사회복지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후원 또는 지원하는 사회복지시설은 앞의 낙원노인정외에 탁아소·유아원 등 아동복지시설 22곳, 장애자복지시설 18곳, 청소년복지시설 21곳, 노인복지시설 11곳, 그리고 부녀복지·행려자복지·의료복지가 각각 7곳이며, 상담기관 9개소와 기타 2곳을 합치면 1백여 군데가 넘는다. 앞으로 이들 가톨릭교회 소속의 사회복지단체는 도시빈민후원회·도빈민민연구소·청년건축인협의회·빈민의료협의회·지역사회탁아소협의회·공부방연합회 등 사회 각 단체와도 사안별로 적극 협조해 '실천을 통해 사랑을' 전하고자 하고 있다.

 

"실천 없는 이론은 쓸모없다" 

  가톨릭이 비교적 체계적으로 활동을 하는 데 비해 불교계에서는 사회복지활동이 각 사찰별로 승려나 신도들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 대림동 전철역 부근에는 "대중과 함께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고자 하는 삼화포교원이 자리잡고 있다. 소외받는 공단지역의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고자 귀원스님이 83년에 문을 열었다.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을 운영하는 한편 탈선 청소년들을 선도하던 삼화포교원은 5공시절 경찰의 요주의 대상이 된 적도 있었다. 요즘은 노동자들과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기타 연주와 사물놀이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또 자신들의 삶에 관한 문제로부터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많은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해줌으로써 여가시간을 바람직하게 활용하고 각자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대학생 신도들은 방학을 이용해 공단지역의 중·고등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삼화신행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고아원과 양로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기도 한다. 

  "이제 불교도 깨어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을 많이 아는 사람보다 하나를 알아도 실천하는 신자가 필요합니다. 있는 사람들에 대한 포교도 중요하지만 자비사상을 어떻게 풀어야하는가가 오늘의 불교계에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

  산중불교·기복불교에서 참된 민중불교로 내려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귀원스님의 말이다.

  그동안 거의 황무지이다시피 한 불교계의 사회복지활동이 최근 들어 장애자를 비롯, 공단· 탄광촌· 교도소 등을 대상으로 특수·현장포교로 점진적인 확산을 보이고 있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 낙상리 구암산 기슭에 있는 법흥사(주지 정안스님)는 지난 84년부터 무의탁노인들과 고아들을 수용, 돌보아왔다. 지난해 4월 정식으로 양로원과 보육원을 설립한 이곳은 법흥사라는 절 이름보다는 '연꽃마을'로 알려져 있다.

  현재 무의탁노인 15명과 고아 17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연꽃마을은 전국에서 보내오는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의 세곡동에 있는 법수선원(김시현스님)에서도 용인과 이천에 연꽃마을을 조성, 무의탁노인들을 들보고 있는데 현재 시설 확충공사를 하고 있다.

  연꽃마을 외에 장애자 복지시설로는 강릉의 자비갱생원(이진철스님)과 부산 성우원(원광스님) 그리고 서울 노친구의 45세대 판자촌 장애자 세대주들의 자립을 목표로 하고 있는 대한신체장애자자립회(나경선법사) 등이 있으며, 또한 정신박약아를 위한 부산 천마재활원 (박근련보살), 청각장애자를 위한 원심회(덕진스님), 맹아교육기관인 대전 대명학교, 경남 산청의 결핵요양소 성양원(영혜스님) 등이 있고 육바라밀회 (박오공스님)는 이천 나환자촌에서 나환자를 돌보고 있다. 또 진주에서는 황산스님이 심장병환자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달동네와 공단주변의 노동자 거주지역에 소규모의 포교당을 개설하고 현장포교를 하는 경우도 점차 늘고 있다. 서울 정릉의 정토사(목우스님)는 빈민촌을 대상으로 포교하고 있으며 해원사(해원스님) 역시 지난 84년부터 태백 · 장성· 화순 등지의 탄광촌에 포교사를 파견했다. 이밖에 삼화포교원을 비롯 '우리법당'등 몇몇 소규모 포교원이 구로지역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 

  "실천을 앞세우지 않는 이론은 그야말로 밝은 고서에 지나지 않지요. 이제 특수포교는 불교복지사업으로 연결이 돼 못가진자들의 편에서 불교가 실질적인 활동을 해야 합니다." 

  조계종 상임포교사인 방귀희법사의 말은 신도수만 늘리는 것이 현대포교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18개 종단으로 나뉘어 있는 불교계의 사회복지활동은 아직까지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말부터 범종단적으로 준비중인 불교사회복지회(회장 시현스님)는 이런 한계를 극복, 대중활동을 시작하고자 하고 있다. 앞으로 종합복지시설로서의 역할과 연구활동, 그리고 자원봉사요원의 양성을 통한 교육기관역할까지 맡게 된다. 불교사회복지회는 전국에 흩어져 개별적으로 운영되는 각종 특수현장포교를 체계화할 예정이다. 

  소외된 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공동체의식으로 시작된 종교계의 사회복지활동. 그것의 시작이 '사랑'이든 '자비'이든 앞으로 더욱 다양한 형태로 민중과 가깝고 함께 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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