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살리는 '코리아코카'들
  • 곽영길 (서울경제신문기자) ()
  • 승인 1990.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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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善弘 기아회장 등 전문경영인 시대 열어 …성공비결은 "현장서 함께 뛰는 것"

“현장을 중시하는 전문경영인에게 기업경영을 맡겨라.“ 봉고神話를 연출해 '한국의 아이아코카'로 불리는 金善弘기아자동차회장이 마침내 실질적인 그룹총수 자리에 오르면서 우리나라에도 전문경영인시대의 막이 올랐다는 얘기가 재계 여기저기에서 쏟아져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중공업, 범양상선 등 대표적인 부실기업들이 安千學 · 吳培根이라는 두 전문경영인의 손에 맡겨져 내실을 다지고 있는 점도 전문경영인시대 개막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건설부문에서는 (주)대우의 張永壽사장이 건설공사의 기초타당성조사에서 설계→공사관리→자재조달→금융지원→유지보수까지를 일괄하는 종합건설업(일명 제네콘)체제 도입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전문경영인의 원조라면 누구보다도 김선홍회장을 꼽을 수 있다. 80년대초 자본금 1백50억원에 80~81년 2년 동안의 누적적자만도 5백억원에 달했던 기아자동차, 어느 누구도 회생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저었던 이 회사가 이제는 10대재벌그룹에 끼일 정도로 탄탄한 자동차전문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가 사장으로 취임했던 81년과 지난해의 사세를 비교하면 매출액은 1천9백억원에서 1조8천억원으로 뛰어올랐고 자동차판매대수는 3만6천대에서 31만대, 자본금은 1백50억원에서 2천71억원으로 각각 늘었다. 그리고 82년이후 연속 흑자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김회장은 적자기업을 소생시킨 비결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 그룹은 보통사람들이 모인 보통기업이다. 보통사람들이 단결해서 일한 결과 잘난 사람들의 집단보다 힘을 더 발휘할 수 있었다. 서로가 호흡을 가다듬고 救社하자는 마음을 꾸밈없이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부실기업의 대명사인 한국중공업도 전문경영인 안천학사장을 맞아들인 다음 재기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있다. 자천타천의 거물급 경쟁자들을 제치고 한국중공업의 총수 자리에 오른 안사장은 "컴퓨터부착형 불도저"라고 불린다. 강직한 성격과 왕성한 의욕을 소유, 추진력이 강하고 '예''아니오'가 분명한 전문경영인이다.

 이런 경쾌한 경영스타일로 83년 사장 취임후 3년만에 적자에 허덕이던 쌍용중공업을 흑자로 전환시켰다. 안사장은 사장에 취임한 다음 서울에는 발길을 끊고 공장에서 근로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전력투구해왔다. 근로자들과의 혼연일체는 그가 2천여 근로자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다는 데서도 그 단면을 볼 수 있다.

 그러면 6천8백여명의 식솔을 거느리고 지난해 수주고 9천7백억원에 매출액 4천6백억원을 기록하면서 3백여억원의 적자를 냈던 韓重號의 새선장은 어떠한 경영관을 갖고 있는가.

 "발전소 · 플랜트 · 엔진 등은 장치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을 중시해야 한다. 노사화합 측면에서도 사장이 현장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게 바람직하다. 근로자들과 함께 호흡하는 가운데 큰 힘이 생기는 법이다."

 

점심은 언제나 구내식당에서

 안사장의 이러한 경영관은 현장에서 어김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우선 불쑥불쑥 현장에 나타나 공정상의 문제점과 근로자들의 고충을 듣는다. 어떤 날은 출근하자마자 현장을 순시하고, 어떤 날은 자정에 근로자들과 야식을 나눈다. 그는 점심을 언제나 구내식당에서 근로자들과 함께 든다.

 韓重의 금년도 경영목표는 매출액 5천8백억원에 수주고 8천7백억원이다. 지난해 3백4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韓重이 올해적자를 벗어나긴 힘들지만 내년엔 경상수지 흑자전환이 예상된다. 근로자들은 안사장이 취임 직후 "머슴한테는 밥을 많이 주어야 한다"고 밝힌 임금관에 기대를 걸고 있다.

 오배근 범양상선사장은 朴健碩전회장과 韓相淵 전사장간의 피비린내 나는 집안싸움에 휘말려 부실의 나락에 빠져 있던 범양호를 흑자회사로 전환시킨 해운업계의 전문경영인. 지난 86년에 매출액 3천3백99억원에 6백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던 범양호는 87년 오사장 취임 이후 그해 적자규모를 4백23억원으로 줄였으며, 88년에는 1백5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지난해에도 당기순이익 1백21억원을 기록, 2년 연속 흑자경영의 위업을 달성했다.

 오사장은 지난 69년 예비역 공군중령으로 범양상선의 총무과장자리에 들어왔다. 이후 특유의 치밀하고 꼼꼼한 관리 능력을 보이면서 쾌속 승진가도를 달려 오늘에 이르렀다. 미국의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은 학구파이며 영어에 능통한 탓인지 국제해운업계에서 '오션(洋)吳'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노조와 격의없는 대화 나눠

 특히 현장을 중시하는 그의 경영관 때문인지 육상 및 해상노조와도 격의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일면을 갖고 있다.

 제네콘사장으로 불리는 장영수 (주)대우건설부문사장은 수면시간(6시간)을 빼고는 하루종일 일과 현장을 쫓아다니는 현장통. "1백만원을 훔친 사람이 잡히면 처벌을 받고 죄인의 멍에를 쓰게 된다. 1백억원짜리 건물공사를 맡아 제대로 지어내지 못한 건설회사의 죄도 막중하다"고 張사장은 말한다.

 미국의 벡텔과 같은 종합엔지니어링회사로 변신해야만 대우가 도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장사장이 사장에 취임한 83년 11월 이후 대우는 '3년 연속 해외수주고 1위' '국내건설공사수주고 3천억원 돌파'라는 성과를 이룩했다. 특히 87년에 2천8백59억원에 불과했던 국내수주고는 88년 3천6백65억원, 89년 5천6백26억원으로 늘어났고 올해엔 7천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지난 78년 개인건설업체 사장직을 때려치우고 대우의 공무담당이사로 첫발을 내디딘 장사장은 직원들의 신상은 물론 취미까지도 파악하고 있는 세심한 일면도 가지고 있다.

 이들 4인의 전문경영인들은 모두 '현장중시' '직원신상파악' '일벌레'라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범상치 않은 일면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상식에 순응하는 비범함이 이들이 경영권을 맡고 있는 회사의 응집력을 강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들 4인으로 대표되는 전문경영인의 경영능력은 한국생산성본부가 최근 3백18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기업의 경영력 평가'에서도 객관적으로 입증됐다. 기업의 사장이 창업자인 경우에는 업적은 높으나 생산성이 낮고, 전문경영인이 사장인 경우에는 생산성과 종업원의 사기가 모두 높았다. 이로 미루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기업공개념'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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