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회 ‘곁가지치기’팽창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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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종교는 분열 부산물”…경제적 이해관계 개입도 있어

  오대양사건의 종교적 배경이 구원파인지 혹은 구원파에서 제명된 통용파인지. 그것도 아니면 오대양교라고 이름할 수 있는 그들 스스로의 사교인지는 좀더 시간이 지나야 분명히 밝혀질 것 같다. 어느 것이 됐든 오대양사건은 이른바 신흥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점을 다른 예에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장기간, 집중적으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신흥종교의 폐해를 걱정하는 목소리 가운데는 기성종교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많다. 종교전문가들의 주장은 대강 이런 것이다. “신흥종교의 발생은 기성종교가 제기능을 하지 못한 탓이 크다. 교회가 갈수록 세속화하고 분열만 거듭하면서 중산층의 사교장으로 변할 때, 병들고 가난하고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은 그 교회에서 다시한번 소외를 당할 뿐이다. 위안받을 곳을 갈망하는 이들 가운데 일부가 찾는 곳이 신흥종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흥종교를 이단이나 사이비종교, 충남 계룡산 또는 전북 모악산에 숨어 잇는 밀교 집단으로 간단히 정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위의 지적이 쉽게 수긍할 수 없는 말일 것이다. 일부 신흥종교가 일으키는 사회적 물의가 선입견으로 굳어 있어 그 신도들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일 뿐, ‘소외된 사람들’ 운운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려대 노길명 교수(사회학) 같은 이는 이러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신흥종교의 정의를 객관적이고도 과학적으로 내릴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즉, 어려운 말이긴 하지만 “주어진 현실의 상황에서 自我正體혼미와 狀況定義의 어려움을 겪는 자들이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 기존의 종교와는 다른 형태로 전개하는 종교운동”으로 신흥종교를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교수는 신흥종교에 대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시각이 혹시 있다면 그것은 경계돼야 한다면서 “조선후기 정치권력이 한국 가톨릭교회를 박해할 때 그 명분은 邪門亂道, 즉 사교라는 것이었다”고 상기시킨다.

  쉽게 말해 신흥종교란 신이 아닌 자신(인간)의 문제가 더 절박한 사람들이 모여 그 해결을 구하고자 하는 집단이란 것이다. 따라서 신흥종교에서는 가난 질병 소외 등 갖가지 ‘결핍’을 해소하기 위한 과정에서 경제적·성적 문란행위가 노출되기도 하고 기존 제도·사회가 더 이상 존속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관계로 말세론 같은, “모순으로 가득찬 지금의 세상은 곧 엎어진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서울지역. 다방보다 교회수가 더 많다.
  요즘의 기성종교가 이들을 끌어안을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의 기성종교는 대부분의 서구사회와 제3세계와는 달리 급속한 양적 성장을 하고 있다. 개신교의 경우 89년 조사 결과 교회수가 2만9천8백20개, 신도수 1천31만여명으로 총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몇 년 전의 한 조사에서는 서울지역의 다방이 5천3백여개인데 교회는 5천6백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져 두집 건너 교회라는 말을 실감케 하기도 했다. 1884년 전래된 이래 선교 1세기만에 범아시아 개신교도의 7분의 1을 차지할 만큼 급속한 성장을 이룬 것이다.

  다방보다 많은 교회가 지금 하는 일은 무엇인가. 수백억원을 들여 교회를 짓고 먼곳에서도 신자를 수송해올 수 있도록 여러대의 버스를 구입하는 일 등에 주력하는 교회가 적지않은 것으로 일반인의 눈에는 비치기도 한다. 한참 오래 전의 통계이지만 1년 동안 개신교신자들이 교회에 바치는 각종 헌금의 액수는 1조4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적 성장의 폭은 농촌보다 중소도시, 중소도시보다 대도시 지역이 훨씬 크며 점차 중산층 중심의 종교로 변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모든 활동과 규모가 중산층을 기준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물질주의 물량주의 경쟁주의
  소위 재벌교회가 아니더라도 교회 앞에 늘어선 자가용 행렬은 이같은 현상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교회가 중산층의 사교장으로 변할 때 여기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이 邪敎(신흥종교)에 빠져들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신흥종교 신자들의 대부분이 현실 사회 속에서 고통받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고, 기성종교 여러 곳을 전전한 사람들이며, 기성종교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때로 공격적이기도 한데 그것은 서로가 마찬가지다)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좋은 일은 밖에 잘 알려지지 않는 속성 탓이기도 하지만 우리 개신교는 물질주의 물량주의 경쟁주의 등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불교 등 다른 기성종교도 이러한 비판에서 예외일 수는 없으나 그 정도가 심하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개신교가 특히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중에서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개신교계의 극심한 분열이다. 분열의 원인이 교리나 신학적 차이만은 아닌 경제적 이해관계가 대부분 개입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주요 교단만 70개, 군소종파까지 합하면 1백여개가 훨씬 넘는 개신교 각 교파의 이름을 일별해보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갈라져 있는지 의문이 앞선다(22~23쪽 표 참조). 또 각 신도들이 자기 교회가 속한 교파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떨어져 나오게 됐는지를 정확히 알고 다니는지 궁금해진다. “목사님을 따라서” 옮겨온 신도들도 있겠지만 순수하게 신앙생활을 해보고 싶어 집 가까이에 있는 교회를 찾아온 사람들 또한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도들 가운데 일부는 나중에 자기 교회의 ‘탄생과정’을 알고서 더 좋다는 교회로 옮겨가는 사례도 있다.

  표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 개신교의 역사를 대변하는 장로교는 그 분열양상이 특히 심하다. 전체 개신교 신도 가운데 6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돼 있는 장로교는 현재 45개파로 분열돼 있다. 합동 통합 개혁 합동보수 고신(이상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과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 등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가지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교파의 초기 분열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요즘 입시부정사건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고신대 병원을 운영하는 고려파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과정에서 분리 독립한 것이다. 독립하기 전의 한상동 목사 등 고려파는 고려신학교를 운영하면서 신학노선 문제로 기성교회측과 대립했고 총회에서 축출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엿한 기성교파가 돼 있다. 이는 자리잡기 전까지는 쉽게 인정받지 못했던(때로 이단으로 간주) 우리 교파분열의 역사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요즘의 현상을 의미있게 바라보게 하는 대목이다.

  기장의 분리독립도 조선신학교(현 한신대) 교수였던 우리나라 진보신학의 탸두 김재준 목사와 교단간 대립에 의해 파생된 것이었다. 김교수는 당시 한국교회에서 주류를 형성했고 건드릴 수 없는 교리였던 ‘성서축자영감설’을 비판하고 안식일에도 노동을 촉구, 교단으로부터 “비복음적” “한국교회를 능욕하는” 목사라고 비난받았다. 한국개신교의 양대 교파인 대한예수교장로회와 대한기독교장로회는 그 무렵인 54년 ‘역사적인’ 분립을 하게 됐다.

  이후 59년 예장(대한예수교장로회)은 다시 합동과 통합으로 갈라졌다. 신학교 증축기금 운용과 관련된 이른바 ‘3천만환사건’이 계기가 돼 WCC(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를 지지하는 통합측과 이를 반대하는 WEF(세계복음동지회)파가 분리된 것으로 교리적인 문제와는 관계가 없다.

  6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는 개신교의 분열상은 너무 복잡하여 분열요인을 한가지로 단언하기 어렵다. 명분이 뚜렷지 않은 분열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학자들은 신학적 요인과 비신학적 요인으로 크게 나누고 있다. 현대사회연구소가 지난 82년 목회자와 평신도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첫째가 교회지도자들의 이해관계, 둘째 신학노선이 달라, 셋째 선교사들의 영향, 넷째 자연적인 결속(지방색) 등이었다.

  교리상으로 장로교는 칼빈주의에 입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의한 장로교 헌법을 기본교리로 하고 있어 신앙관이 동일한데도 분열을 계속하고 서로 갈등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갈등 유형은 정치·사회 참여문제와 관련된 대립, 해방신학·민중신학에 대한 찬반논쟁, 통일논의 접근방식의 차이 등인데 이는 보수와 진보간의 대립과 KNCC 가입교단 대 비 KNCC 그룹간의 마찰에 따라 빚어지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현재 교계에서는 기장을 진보적, 합동과 고신은 보수적, 통합은 중도적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 KNCC 가입교단인 기장과 통합은 대외적인 활동이 활발한 반면 KNCC 비가입교단인 합동은 개체교회 활동이 뚜렷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밖에 비신앙적 요인으로 정치적·지역적·개인적 이유에 따른 분열과 갈등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선거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한다든가 교회재단 운영과 관련된 이권문제로 다투다 서로 갈라서고 반목하는 현상이 여기에 해당된다.

  지난 87년 9월 개혁파가 ‘나라와 민족지도자를 위한 기도회’를 개최, 당시 평민당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자 합동보수파가 이를 비난하기도 했다. 지역적 원인이 분열을 가져온 예로는 개혁파(I)의 합동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이 있다. 개혁파는 주로 호남지역 목회자를 중심으로 교파를 형성한 것이다. 진보적인 기장 역시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데 반해 합동과 합동개혁은 호남지역 교세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로교 분열 비해 감리교·성결교 안정
  장로교와 함께 한국개신교 3대 교파에 속하는 감리교와 성결교는 장로교에 비해 매우 안정돼 있다. 감리표도 해방 직후에는 부흥파와 재건파가 대립해 수없이 분열과 통합을 되풀이한 적이 있으나 76년 영구통합에 성공, 이름을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로 바꾼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수교대한감리회(예감)는 62년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 교단이나 현재 3개파로 나뉘어 있다. 성결교는 60년대 초 교리해석 문제와 교권싸움으로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로 양분돼 있다.

  이처럼 장로교에서 주로 나타난 현상이긴 하지만 개신교단의 교권이나 이권에 얽힌 명분없는 분열, 그에 따른 물량적인 경쟁과 갈등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계층간·지역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데 여기에 종교적 갈등까지 겹치고 있다고 우려하는 의견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자기 교단의 명맥유지와 교세확장에만 관심이 있어 강한 배타성과 공격성을 보이는 종교계야말로 집단이기주의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인권운동 등 지난 시절 일부 개신교단이 보여줬던 긍정적인 활동이 갈수록 쇠퇴하는 대신 개체교회 확장에만 열을 쏟고 있는 현재와 같은 경향이 계속된다면 신흥종교 등의 문제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특정교파의 일탈현상이 문제될 경우 집단으로 가하는 무차별저긴 공격은 있어도 기성종교로서의 자체 반성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고 꼬집는 사람들도 있다.

  개신교단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통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회간 연합행사, 신학교 통폐합과 기존 목회자의 통합 재교육 등의 방안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이는 야권통합보다 더욱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그러면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서울대 윤이흠 교수가 지난해 ‘한국종교와 문화발전’이란 세미나에서 밝힌 ‘종교대화’란 말을 옮겨본다.

“교회통합은 야권통합보다 더 어렵다”
  윤교수는 이 종교대화가 “사회의 마지막 대화이며 그 대화가 이뤄질 때 다원주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자기신앙이, 많은 종교 가운데 하나라는 역사적 상대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자기 신앙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는 태도를 요구하는 것이 종교대화라는 얘기다. 이렇게 될 때 각 종교들은 자기 교파만의 물적 팽창이 아닌 사회가 바라는 활동, 예컨대 향락추방 범죄퇴치 등 도덕운동을 공동으로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난망의 과제인 것이 현실이다.

  개신교를 비롯한 기성종교의 중산층 중심적 사교장화,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권집단화의 과정에서 신흥종교는 파생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한 현상이 분명히 건전한 것이 아니라고 할 때 기성교단의 책임은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종교기업이라는 비판을 듣는 곳이 많고 솔선수범하지 않는 종교인들의 위선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종교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만큼 일부 교단은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는 것이다.

  동국대 정병조 교수는 “종교단체의 상업화는 철저히 봉쇄돼야 한다”며 그 일환으로 교단의 재정공개가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보인다. 이것이 “앞으로 반드시 야기될 수밖에 없는 ‘종교세’등에 대한 도전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정교수는 주장한다.

  흔히 한국개신교의 비약적인 양적 성장을 두고 ‘폭발적’이라고 말한다. 그 교회들 가운데 일부가 앓고 있는 터질 듯한 비만증 역시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만하다. 이 비만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에어로빅’을 해야 하는데, 종교전문가들은 “신앙의 순수성, 가르침과 생활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바로 그 에어로빅의 주요한 내용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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