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비 사회는 문화가 지배한다.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2.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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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론’등 문화이론 국내에 소개돼 우리나라 현실 분석에 적용 시도



戰勢와 ‘지형’은 달라졌다. 현실 사회주의는 맥도널도 햄버거와 코카콜라 앞에 무릎을 꿇었고 자본주의 승전가가 지구를 뒤덮고 있다. 마르크스의 후예들은 개선행진곡이 울려퍼지는 동안에도 전 지구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자본주의 내부문제를 꿰뚫어 보며 고심하고 있다. 이들이 현미경과 망원경을 들이대는 영역은 다름아닌 문화이다. 대중소비사회의 대중문화 현실과 구조를 비판적으로 파헤침으로써 변화의 실마리를 풀어가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진행과 더불어 놀라운 가속도가 붙고 있는 대중문화는 현란함과 세련미, 그리고 속도감 대문에 그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대중소비사회 문화는 그래서 좌파 이론가드에게 “비본질적인 지엽말단”이었다. 거들떠볼 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경제결정주의 ? 계급토쟁론만이 세계인식과 변혁의 이론틀이었다. 좌파 이론가들이 마르크스 이론의 정통성에만 매달리고 있을 때, 자본주의는 대중문화를 거점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 심화시켰다. 자본주의의 내용과 형식이 문화라고 비판적 문화이론가들은 보고 있다.

30여년 전, 프랑스 낭테르대학(현 파리10대학)의 사회학과 교슈였던 앙리 르페브르는 자본주의의 품에서 태어난 일상성, 일상적 삶을 통해 현대사회를 탐사하기 시작했다. 르페브르와 함께 유럽의 대표적 좌파 이론가였던 알튀세는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이데올리기론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 두 이론가들의 일상이론과 이데올로기론은, 그때까지 마르크스에의 맹목적 신앙에 빠져 있던 유럽 좌파진영을 향해 던진 중요한 문제제기였다. 그들을 긴 잠에서 깨어나게 한 르페브르와 알튀세의 이론은 다름아닌 문화영역에서의 비판이론-마르크시즘의 현대적 전개였다.

두 사람이 문화현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고전적 마르크시즘의 묵묵부답 때문이었다. 즉 2차세계대전이후 급속하게 후기산업사회로 이행하고 있던 유럽사회를 기왕의 마르크시즘으로는 설명해 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경희대 도정일 교수(영문과 ? 비평이론)가 최근 창간된 《문화과학》지에 기고한 명쾌한 논문 <문화, 상징질서, 일상의 삶>에 의하면 비판이론의 일부인 문화이론은 두 개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첫째, 왜 자본주의는 명백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계속 발전하는가였고, 두 번째는 생산력의 증대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생산관계가 왜 무너지지 않는가였다.

르페브르의 제자인 장 보드리야르는 스승이 《현대세계의 일상성》을 내놓은 2년 뒤 《소비의 사회》(1970)를 펴냈고, 당시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조교수이던 볼프강 F. 하우크는 《상품미학비판》(1971)을 발간했다. 이 문화이론서들이 20여년이 지난 최근 국내에 번역 소개됐다. 이 저작들에 대한 관심은 알튀세에 대한 국내 진보진영의 재조명 작업과 겹쳐졌고, 지난 여름 계간 《문화과학》(발행?편집인인 강내희 중앙대 영문과 교수)이 창간되면서 일단 한정점을 이루었다(《시사저널》140호 참조).

유럽 좌파이론가들의 문화이론서가 비슷한 시기에 소개되고 진보적 학자들이 모여 문화이론 전문 계간지를 묶어내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목록 참조). 르페브르와 알튀세 등이 그러했듯, 80년대를 변혁이론에 투신했던 국내 진보진영은 세계와 국내 현실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기증을 느껴야 했다. 80년대의 변혁이론으로는 90년대의 한국사회를 해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포스트~주의’논의도 진보진영으로 하여금 문화현실을 주시하게끔 부추겼다.

왜 문화영역을 비판적으로 보아야 하는가

최근에 속속 번역된 문화이론서와 《문화과학》에 실린 논문들을 따라가면서 지금 여기서 왜 문화가 문제인지, 문화의 구조와 운동법칙을 드러내는 분석틀은 무엇인지, 문화이론의 임무의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알튀세는 우선 이데올리와 과학을 분리시켰다. 도정일 교수의 위 논문에 따르면, 알튀세는 사회구조를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 이론(과학)의 네 층위로 분할하고 각 층위는 서로 긴밀하게게 연결되면서도 동시에 상호 환원되지 않는 독자성과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알튀세는 “이데돌로기란 현실의 잘못된 표현, 몽상, 허위의식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개인들의 상상적 관계가 뒤틀림 없이 그대로 표현된 것”이라며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적 이데올로기론을 부정했다.

알튀세는 바로 이 이데올로기가 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시키고 재생산한다고 분석했다. 개인들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사회적 주체’로 태어나는 것(호출)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정부 경찰 등 국가적 장치와, 학교 종교 대중매체 문화로 이루어지는 사적 ? 이차적 국가장치로 움직인다.

르페브르는 일상적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 왜냐하면 일상성은 자본주의에서 나온 새로운 현실이고, 자본주의와 다국적기업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기 때문이다. 또한 일상성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확장양태이자 사회관리 양태이고, 광고와 대중매체 등을 통한 일상적 삶의 조작과 프로그래밍이 변혁을 좌절시키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일상성의 특징은 반복성이다. 일상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현대의 비극과 모순을 은폐시킨다고 지적한 르페브르는, 그러나 현대의 일상성은 극히 모순적이어서 만족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대중들에게 모호한 불만과 불안을 동반시킨다. 이때 대중들은 지금의 일상과는 다른 어떤 상태를 꿈꾼다. 르페브르는 이 변화에의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었다. “르페브르의 일상성이론은, 일상성을 수락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도정일 교수는 지적했다.

보드리야르가 《소비의 사회》를 쓸 때 그는 르페브르와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 좌파이론가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이 책을 쓰고 난 뒤인 1973년,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계급과 생산양식 개념으로는 전체적인 사회적 실천이 해명될 수 없다며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론가로 나선다.

“이제 소비는 하나의 신화”라고 선언한 보드리야르는, 상품을 사고 파는 소비메커니즘이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막는다고 진단했다. 대중소비시대에서 평등은 정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상품 소비 차원에서 ‘실현’된다. 정치 ? 사회 모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갈수록 희박해지고 대중은 에너지를 소비에 퍼붓는다. 이 소비메커니즘은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를 부각시킨다. 사물은 더이상 물체가 아니라 기호와 이미지인 것이다.

일상의 반복성이 현실모순을 은폐시킨다

르페브르, 보드리야르 그리고 상품미학을 주창한 하우크(73쪽 관련기사 참조)등 문화이론가들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를 장악한 광고와 대중매체, 그리고 광고와 대중매체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의 작용방식을 추적한 것이다. 이 지배 이데올로기는 대중을 욕구(필요)에서 이미지와 기호로 조작되는 무한대한 욕망의 세계로 몰아간다.

물론 문화이론은 이들 유럽의 좌파 이론가들에게서 돌출된 것은 아니다. 이미 1940년대 아도르노 마르쿠제 프롬 등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의해 출발된 것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첫째 파시즘의 대두를 경계하고 둘째 마르크시즘의 전통적 개념을 재검토하며 셋째는 자유주의 내부의 권위주의적 전체주의적 요소를 비판하는 것을 ‘존재이유’로 삼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 이외에도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문화유물론’ 또한 문화이론의 물줄기를 이루었다.

국내 문화이론의 현단계는 이제 그 출발선상에 있다. 《문화과학》을 비롯 《상품미학과 문화이론》을 엮은 미술비평연구회 대중시각매체 연구분과, 그리고 도시사화학계의 일부의 도력들이 문화이론 논의를 이끌어가고 있다. 신문방송학계에서도 대중매체와 문화현실을 언급하지만 이영준씨(미술비평연구회 회원)에 따르면, 대중시각매체에 대한 사회적 윤리적 측면에서의 검토와 비판은 자주 제기되고 있지만 미적 문화적 측면의 검토는 거의 없었다.

도정일 교수는 “개입과 대응이 필요한 지점들을 자본의 논리에 방치함으로써 그 지점들이 식민화의 대상으로 포획되는 상황을 거부하는 작업이 비판이론의 현대적 전개”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개입과 대응이 필요한 지점들은 다름아닌 문화의 영역이다. 현대의 문화형성은 욕구와 소비, 환경과 쓰레기, 광고와 매체, 욕망과 무의식, 육제와 여성과 상품, 여기와 관광, 모방과 유행 등을 포함하는 일상적 삶의 지평 안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도시공간이다.

30여년 전의 유럽과 오늘의 한국 문화현실은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겐 전통문화의 요소가 엄연하게 잔존하고 있으며, 여기에 대중소비사회와 천민자본주의가 몰고다니는 탐욕문화의 요소가 서로 뒤엉키고 갈등하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보다 세밀한 문화이론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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