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핵전략 돌변할 수 있다”
  • 편집국 ()
  • 승인 1992.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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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헤이즈 박사 특별기고문 하…“日 핵능력이 핵무장 부추길 수도”


한국에서의 핵확산 문제는 핵전문가 스티븐 마이어가 지적했듯이 다양한 동기요인과 억지요인의 관계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핵무장으로 가는 동기요인에는 △주변국의 직접 또는 잠재적인 핵위협 △재래식 무기의 위협 △국내 정정의 불안 △방위비 감소 등이 있다. 반면에 억지 요인으로는 △강대국의 압력 △미국의 안보 공약 △기술적 한계 △남북통일 등을 들 수 있다. 이같은 요인들은 다음의 다섯가지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첫째 핵확산이다. 핵확산이란 그렇게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우선 한국은 중장기적으로 ‘핵옵션’(핵무기 보유의지를 갖기부터 무기개발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직접 핵무기를 실험 ? 배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도 있다. 또는 초보적 핵과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적대국에 대항할 수 있는 핵능력 보유국이 될 수도 있다.

둘째 지정학적 측면이다. 거시적으로 볼때 한반도에서의 핵확산문제와 관련된 이해당사국에는 중국 독립국가연합 미국 일본 남한 북한 등이 포함된다. 대만도 핵개발을 계속할 경우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셋째 남북통일이 핵확산에 끼칠 영향이다. 모든 한국인은 ‘강력한 통일한국’이란 이상과 분단이라는 엄연한 현실 사이에 살고 있다. 남북분단과 그에 따른 여파는 비무장지대 양쪽에 사는 사람들의 정치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분단상황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한반도 핵확산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 한국 내 좌파세력이 우파진영에 대해 북한과의 협상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도 고려되어야 한다.

넷째 시간적 개념이다. 앞에서 열거한 여러 변수들은 어떤 시간대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지낟. 예를 들어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확산 억지효과는 지금과는 달리 95년 이후에는 급속히 줄어들 것이다. 한국이 핵연료 구입 및 기술에서 전적으로 미국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이 한국의 핵능력을 통제할 수 있지만 이같은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통일한국’은 모든 변수들에 질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남북한은 핵무장으로 나가지 않고도 통일을 이뤄낼 수 있지만 이 경우 중국 ? 러시아의 직접적인 핵위협 또는 일본으로부터의 잠재적 핵위협에 봉착하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통일한국이 탄생하면 재역 내 비중이 커지기 때문에 스스로 핵무장으로 가는 것을 자제할 것이다. 그러나 중 ? 단기적으로는 통일에 관한 여러 가지 변덕스런 상황이 반대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가 핵보유 결정을 내릴 경우 영원히 통일을 막는 걸림돌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핵 잠재능력을 보유해야 하며 이를 가로막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상의 요소들을 종합하여 한국에서의 핵확산 가능성에 대해 알아보자.

직접적 핵위협: 외부의 핵위협에 대해 미국이 한국에 제공해온 핵억지력은 한국이 핵무장으로 가는 길을 막아온 주요 요인이다. 그러나 옛 소련의 붕괴와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개선으로 한국의 핵무장 욕구의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또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함으로써 핵위협이나 핵공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만일 강대국의 선제 핵공격 금지협약이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뒷받침해 줄 경우 한국은 확고한 안전보장을 얻을 수 있다.

요컨대 한국은 단기적으로는 ‘직접적 핵위협’을 이유로 핵무장을 서두를 것 같지는 않다. 장기적으로 중국이나 러시아의 핵위협에 맞서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만들기로 결정한다면 핵무기 생산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들 나라로부터 핵시설에 대한 공중 폭격을 받게 될 것이다. 이같은 가능성은 한국이 핵무기를 생산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핵무기고는 만일 한국이 어느 강대국의 적대국과 연계할 경우 언제든 그 나라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일본이 자체적으로 핵폭탄 개발을 자제해온 것은 이같은 이유때문이고 한국도 그런 선례를 따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기존의 안보협약 △국내 정치적 압력 △기술적 종속성이라는 세가지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러나 2000년쯤이면 기술적 장애는 상당 정도 극복할 수도 있다. 남북이 함께 비핵선언을 폐기할 수 있다. 반대로 통일한국은 분단되어 있을 때에 비해 핵무기가 없더라도 안전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북한의 잠재적 핵위협 : 북한의 핵위협은 단기적으로 여러 가지 상황적 요인 때문에 핵무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선 미국의 대한 대한 안보공약은 대단히 신뢰할 만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과거 주한미군 철수정책과 관련해 카터 행정부의 전철을 밟을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데 있어서 △유사시 아 ? 태지역에서 군사개입을 하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의 울타리 안에 완전히 들어올 때까지 핵확산 저지를 한다는 두가지 긴요한 이해를 갖고 있다. 또 미국은 주한 미 보병 2사단을 본토로 불러 들이는 것보다 한국에 주둔시키는 쪽이 훨씬 비용이 덜 먹힌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이 가장 저렴하게 미군을 주둔시킬 수 있는 나라이다. 적어도 2000년까지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안보공약에 대한 신뢰 상실로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할 가능성도 별로 없다.

중기적 판단(1995~2000년)은 좀더 불확실하다. 북한의 핵개발계획이 1995년까지 차단된다면 논란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주한 미 지상군의 계속적인 주둔 여부는 미군 병력의 전진배치에 수반되는 비용 문제에 달려있다. 그렇지만 2000년 경 지상군이 철수하더라도 공군과 첩보부대는 잔류할 것이고 한국도 핵확산금지조약상의 의무나 국내 정치적 압력, 평화적 이미지를 쉽사리 깰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의 핵위협을 명분으로 핵무장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2000년 이후의 장기적 관측은 별개의 문제이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새로운 대립과 북한의 잠재적 핵위협은 남한 내 핵무장 반대파들에게 커다란 압력요인이 될 것이다. 이때쯤 한국이 핵무장을 결정한다면 그것은 일본의 핵위협 때문일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아직은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많은 한국인은 핵선택권을 갖게 되면 이웃 나라를 자극하기 때문에 국익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일본의 플루토늄 과잉보유나 재빠른 핵무장 가능성 때문에 한국이 핵무장을 하기로 마음 먹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장 가능성과 함께 일본의 핵능력은 한국이 2000년 이후 핵무장쪽으로 기울이도록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강대국 지향성 :  한국이 핵무장쪽으로 갈 수 있는 또 다른 동기는 지역 내 강국이 되고자 하는 한국의 열망이다. 강대국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대개 군사비 규모 ? 병력 수 ? 국민총생산 (GNP ? 무역량을 든다. 각 항목에서 적어도 4위 이내에 들어야 그 나라는 지역 내 강국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한국은 군사강국도 경제강국도 아니다. 설령 앞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한다 해도 이같은 순위는 2000년 까지 변할 것 같지 않다.

남북한이 통일되더라고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통일한국은 군비지출면에서 4위, 병력수에서 3위, GNP에서 5위, 무역량에서 3위를 차지한다. 앞으로 10년 동안 가속화될 이같은 결과는 한국 혼자서, 또는 통일한국이 핵무기 생산을 통해 지역강국 대열에 뛰어들려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른 지역 강국도 ‘핵이 없는’통일한국을 심각한 군사적 또는 경제적 위협세력으로 볼 것 같지는 않다. 통일한국이 어느 지역강국과 제휴한다 하더라도 핵무장까지 함께 하지 않는 한 군사능력이나 국민총생산 서열에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한국이 지역강국으로 부상하고자 하는 욕망에는 국내 정치적 요인이 영향을 끼친다. 통일한국 정부는 현재처럼 ‘통일을 위해 핵보유를 포기하라’는 식의 국내 정치세력의 반대에 부딪히지 않을 것이다. 민족감정으로 고무된 국내 여론은 통일한국의 핵능력 보유를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통일한국은 핵보유를 반대하는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외세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자주적 정부를 원할 것이다.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한국은 2000년 내에는 핵무장의 길로 치달을 것 같지 않다. 이같은 결론은 다른 모든 요인을 배제하더라고 두가지 요인 때문에 그러하다. 한국의 핵능력 보유를 가로막는 가장 뚜렷한 억제요인은 핵재처리 시설 ? 우라늄 농축시설과 기타 핵무기 관련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점이다. 이같은 장애가 오래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지만 한국의 핵무장을 억제하는 △안보공약 △우라늄 공급 중단 △핵위협으로부터의 보호 등의 변수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그 다음에는 한국이 공개시장이나 합법적 암시장을 통해 핵교역을 하거나 국내에서 연구개발 하는 것을 주시할 것이다.

둘째는 이 지역의 비핵지대화가 (통일)한국에 대한 외부의 공격을 억지하는 지역안보기구 구실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남북한은 올해 초 한국판 ‘비핵지대화’를 이룩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이 정치력을 발휘하지 않는 한 이 제안은 유산될 가능성이 크다. 한가지 해결책은 한반도 비핵지대화의 범위에 중국 ? 러시아의 극동부 ? 일본 ? 괌 ? 알래스카 ? 알류산열도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비핵지대화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재처리계획의 꿈에 부풀어 있는 일본,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군축을 요구하면서도 막상 자기네는 빠지겠다는 중국, 괌 ? 일본 ? 오키나와 ? 알류산 지역에서의 핵무기 철수를 고려하는 미국, 극동과 북태평양에서 핵무기 철수를 고려하는 러시아에게 압력을 가할 기회를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핵확산 잠재력은 다음의 경구를 생각나게 한다. “능력은 서서히 변한다. 그러나 의도는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다.” 비핵지대화는 남북한이 비핵국으로 남아있을 개연성을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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