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 진통 시작됐다
  • 김방희.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1.08.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중국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가한 정부의 한 인사는 뜻밖의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사석에서 술이 몇순배 돌자 북한측의 학자가 자신도 모르는 최신 자본주의 경제이론을 들먹이며 토론을 청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마르크스 · 레닌의 원전조차 읽지 않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미국의 경제학 교과서를 연구한다는 말을 듣고 북한의 고민과 변화를 실감했다고 전했다.

 요즘 북한전문가들은 모두들 북한이 지금 심각한 식량 및 에너지난에 처해 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북한의 개방은 이같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안간힘아라고 말한다. 그러나 70년대이래 역대정권이 입이 닳도록 말해온 ‘북한위기론’에 익숙한 국민들은, 그동안 미동도 않던 북한이 왜 갑자기 개방이라는 ‘악수’를 둬야만 했는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최근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북한이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은, 더욱이 경제가 정치에 철저히 종속된 체제라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북한은 소련과 마찬가지로 생산력의 충분한 발달이 전제되지 않은 채 ‘혁명기지의 수호’와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아왔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원칙을 무시한 ‘자력갱생주의’는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가로막았고 군산복합체 우선주의는 ‘민생경제’를 뒷전으로 밀어냈다. 특별한 이윤동기 없이 ‘사회주의 건설과 조국통일’이라는 이데올로기만으로 경제를 건설해보려는 시도는 한계에 다다랐다. 바닥난 외화와 심화되는 민생고, 전력부족으로 40% 수준에 있는 공장가동률, 제자리걸음인 기술수준, 남한의 13일분에 불과한 전체 경제규모 등은 북한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식 사회주의’의 대차대조표인 셈이다. 특히 그간 북한경제를 지탱해주던 소련이 원유판매 대금을 달러로 요구해옴에 따라 북한은 외환 및 에너지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보수냐 개방이냐를 놓고 심각한 내부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북한군부의 쿠데타설, 민중봉기설이 많이 떠돌았다. 곤경에 천한 북한에 중국은 이상적인 모델이 돼주었다. 통일원 통일정책실 李鳳祚 과장은 “북한은 선 정치개혁, 후 경제개방이라는 소련식 모델보다는 엄격한 정경분리 아래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면서 제한적으로 개방경제를 허용하는 중국식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라 북한은 남한과의 직 · 간접교역과 경제특구 · 합작 등을 차례로 실험해보고 있다.

 북한의 경제정책 변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후계체제 문제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咸澤英성 교수는 “김정일은 김일성과 같은 카리스마가 없기 때문에 관료엘리트로서의 지도력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또 이데올로기 조작보다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인민의 생활수준 향상 등을 통해 정권의 정통성을 찾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분석은 김정일이 개혁파의 기수로 꼽히고 있다는 점과 최근 북한의 외교노선 변화가 후계체제 강화와 시기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북한의 개방 움직임이 곧 체제붕괴로 이어질 것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북한문제전문가 金南植씨는 “일찍부터 개방정책을 실시한 중국경제도 사회주의 영영기 80~90%에 달한다. 개방은 보완적 차원이지 기본노선의 수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한독상공회의 슈프너 사무총장은 “소련도 처음에는 막연한 대안으로 시장경제 도입을 주장했다가 혼란에 빠졌다. 북한도 그런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정과 형태는 분명하지 않지만 북한이 동유럽 붕괴와 탈냉전의 험난한 파도를 최대한 역이용하여 정치 · 군사 · 외교노선의 총체적 재편을 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는 ‘김정일 후계체제’라는 사회주의 권력의 재창출로 귀결될 것이다. 앞서 말한 북한의 경제학자는 개방의 진통을 겪고 있는 북한 지배엘리트의 한 전형일는지도 모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