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부대는 帝國大 인체실험장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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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 경도대 적극 참여…이시이부대, 연구비 · 실험자료 제공



 가나가와대의 쓰네이시 게이이치 교수(常石敬一)는 이시이 시로 중장 주도로 저질러진 생체실험은 당시 일본 의학계 핵심세력에 의해 고무되었고 또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 아래 진행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당시 의학계를 주도하던 동경제국대 의학부와 경도제국대 의학부 교수들이 이 과정에 조직적으로 참여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과학사를 전공한 쓰네이시 교수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과학자들이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던중 이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시이부대에서 촉탁교수로 통한 이 교수들은 동경 시내 육군군의학교 안의 방역 연구실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교수들과 이시이부대의 관계는, 이시이가 연구비와 생체실험한 자료를 넘겨주면 교수들은 이것을 바탕으로 백신을 개발해 이시이에 넘겨주는 것이었다.

 교수들이 한 역할 중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동경대와 경도대의 제자들을 이시이부대 부대원으로 공급하는 일이었다. 결국 이시이부대는 “동경제국대와 경도제국대 의학부 교수들의 인체실험 실습장이었다”고 쓰네이시 교수는 말했다.

 당시 이런 식의 촉탁교수로 활동했던 사람은 동경제국대에 10명, 경도제국대에 5명, 기타 대학에 5명 정도 있었다. 그중 중요한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일본 왕의 스키 선생이기도 했던 동경대 고지마 사부로(세균학 · 설사연구)를 비롯해서 야나기사와 켄(BCG연구) 호소야 쇼고(세균학 · 설사연구) 교토대 요시무라 히사토(동상연구) 등이다.

 교수들 중 일부는 인체실험을 바탕으로한 연구결과를 원숭이나 다른 동물을 대상으로 한 것인양 속여 의학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이 이처럼 공공연히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밝힐 수 있었던 것은“의학발전을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 이와 같은 비윤리적 행위를 용인한 당시 일본 의학계의 풍토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일본 의학계 내에서는 이시이의 인체실험이 더 이상 비밀도 아니었고 은근히 이를 고무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평화시라면 상상도 못할 인체실험을 전쟁 기간 동안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 의학계는 몇가지 주목할 만한 연구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이 가운데 페니실린 · 건조 BCG · 티퓨스 백신 등의 개발은 전후 일본 국민의 건강 증진에 상당히 기여했다. 문제는 이런 연구업적들이 조선인과 중국인의 목숨을 희생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조선인과 중국인은 일본인의 건강 증진을 위한 제물이 된 것이다.

 촉탁교수들은 전후 이시이부대에 파견됐던 제자들이 일반 대중의 지탄을 받았던 데 비해“직접 인체실험을 한 것은 아니다”라는 이유로 사회적 지탄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일본 의학계의 지도적 인물로 존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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